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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원어치 홍삼 7t 탔다는데, 잿더미 속엔 홍삼 성분 없었다

안효성 입력 2021. 09. 25. 08:00 수정 2021. 09.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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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보험사기]

A씨에게 화재보험금 청구서를 받은 보험사들은 처음부터 보험사기 냄새를 맡았다. 충남 금산군에서 창고임대업을 하는 A씨는 2018년 3월 초 저온창고에 불이 나면서 보관 중인 홍삼미(홍삼 뿌리) 7200㎏이 모두 불에 타 9억2400만원의 손해를 봤다며 사고 5일 뒤 보험금을 청구했다.

충남 금산에서 창고임대업을 하는 A씨는 홍삼제조업자 B씨와 짜고 보험사기를 저질렀다 법원에서 각각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중앙포토

A씨가 화재 두 달 전부터 여러 보험사에 화재 보험을 든 게 의심의 시작이었다. 창고임대업을 하는 A씨는 2017년 12월 29일~2018년 1월 12일까지 6개 손해보험사에서 총 16억원의 화재보험에 가입했다. 보장금액은 적게는 6300만원에서 많게는 5억원이었다.

각 보험사의 보험사기 특별조사팀(SIU)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보험사기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A씨의 보험사기를 밝힌 스모킹건은 화재 현장에 남은 ‘재’였다.

A씨는 보험금을 청구하며 홍삼미 매매계약서와 매매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증문서, 홍삼미가 담겼다는 종이박스 사진 등을 증빙 자료로 첨부했다. 첨부한 계약서는 A씨가 2018년 2월 19일 홍삼제조업자 B씨에게 홍삼미 7200㎏을 9억2400만원에 사들이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계약금 3300만원을 주고, 잔금은 3개월 뒤 갚겠다는 채무변제계약 공정증서도 작성했다.

A씨는 자신이 소유한 창고에 랩으로 포장된 종이상자 150개를 입고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종이상자 150개는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화재 후 남은 재에서 홍삼성분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셔터스톡

A씨의 보험사기를 밝힌 첫 번째 단서는 현장에 남은 재였다. 홍삼미 7200㎏이 탔는데도 현장에는 유독 재가 남지 않았다. 창고는 밀폐된 구조라 재가 바람에 날리기도 쉽지 않다. 당시 화재를 조사한 경찰과 소방관 모두 법정에서 “다른 화재 현장보다 재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나마 남은 재에서도 홍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홍삼은 종이박스보다 상대적으로 불에 덜 탄다. 타나 남은 홍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화재보험협회 방재시험연구원은 “종이박스의 연소잔류물이 상당 부분 남아있었음에도 홍삼미의 연소잔류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은 화재 현장에서 홍삼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했다. 타다 남은 식물류 뿌리 1개가 발견됐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해당 뿌리에는 홍삼 뿌리에서 발견되는 테르펜계 화합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두 번째 단서는 A씨와 홍삼제조업자 B씨의 수상한 계약관계였다. 두 사람은 과거에 별다른 거래를 하지 않았는데도 9억원이 넘는 홍삼미를 사들이는 계약을 덜컥 맺었다. A씨가 홍삼미를 사들인 가격도 수상했다. 홍삼미는 1근(600g)에 보통 6만2000원~6만3000원에 거래되는데, A씨는 1근당 7만7000원을 줬다.

게다가 A씨가 산 홍삼미는 검증기관의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검사받지 않은 홍삼미는 유통이 불법이라, 1근당 추가로 검사비용도 1만5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재판부는 A씨가 적어도 3억4000만원 이상의 웃돈을 주고 홍삼을 샀다고 판단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B씨도 수상하긴 마찬가지였다. B씨는 2015년부터 3년 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만든 홍삼미를 A씨에게 팔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7200㎏ 홍삼미를 만들려면 96~360t의 수삼이 필요하다. 수삼 가격만 15억~52억원가량 들어간다. B씨는 10년 전 2억원의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돼 이만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해당 화재를 두 사람이 공모해 홍삼 매매계약을 허위로 체결한 뒤 창고에 불을 내 허위로 보험금을 청구한 보험사기로 결론 내렸다. 지난해 5월 대전지방법원은 보험사기 혐의 등을 인정해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보험회사를 속였다고 보기에 충분하고, 피고인들이 창고에 방화했는지 여부를 더 살필 필요가 없다"며 "범행 방법과 수단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불법이 중하다"고 했다.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며 A씨와 B씨의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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