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가에 '범선 돛' 닮은 아파트를 짓는다면..

한겨레 2021. 9. 2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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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유현준의 아파트의 미래][한겨레S] 유현준의 아파트의 미래
뉴욕 비아 57 웨스트
범선의 돛처럼 우아한 삼각의 형태
개성·기능 함께 추구한 건축가 지혜
전국 어디나 똑같은 우리의 아파트
집값밖에 남지 않는 몰개성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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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의 특징을 나타내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주로 사용되는 재료의 색깔, 건물의 높이, 도로망 패턴, 땅의 기울기, 산이나 강 같은 특별한 자연, 하다못해 택시의 색깔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도시의 건축적인 특징을 직관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 도시의 스카이라인일 것이다. 넓은 면적에 여러 개의 건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그 모양과 크기와 높이가 정해진다. 그리고 그 무수한 건축물의 군집이 이루어내는 옆얼굴이 스카이라인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돌 위에 돌을 쌓는 고인돌을 만들면서 고층 건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5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르’에서는 벽돌을 구워서 쌓은 50미터 높이의 신전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로마시대에 이르자 8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 건물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당시 교회 같은 특별한 건축물은 둥그런 지붕을 가진 돔 건축을 했다. 이러한 돔 건축은 이후로도 2천년 가까이 가장 중요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건축에 철을 사용하게 되자 에펠탑이라는 높이 324미터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철근콘크리트라는 건축 재료가 상용화되면서 단단한 암반을 가진 뉴욕 맨해튼 같은 도시에 수십층 높이의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게 되었다. 스카이라인은 중력을 이기려는 인간 노력의 산물로 수천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높아졌고 그 모양도 독특하게 발전해왔다. 스카이라인은 중력이라는 힘을 가진 자연과 건축기술이라는 지혜를 가진 인간이 줄다리기하면서 만들어낸 힘겨루기의 흔적이다.

전망, 남향, 중정을 가진 아파트

모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카이라인을 찾는다면 아마도 뉴욕일 것이다. 뉴욕은 맨해튼섬의 땅이 평평하고 주변 강물도 수평으로 평평하다. 여기에 엘리베이터 덕분에 수직으로 성장한 건축물은 강한 수직선을 구성하면서 인상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건물들은 지역에 따라서 높이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지평선에 수직으로 자라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그 어느 도시의 스카이라인보다도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준다.

건물들은 공통적으로 수직성을 가지지만 건물 꼭대기의 첨두 모양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로마의 돔 건축은 둥그런 모양, 에펠탑은 좌우대칭의 뾰족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뉴욕 고층건물은 대부분 평평한 지붕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크라이슬러 빌딩 같은 아르데코 시절의 건축물은 뾰족한 탑 모양을 가지고 있다. 오일쇼크가 있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시티코프 타워 같은 경우에는 지붕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기 위해 남향으로 경사진 첨두를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던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절에 지어진 건물은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측 허드슨강에 마치 범선의 돛처럼 우아한 삼각형 곡선의 형태를 가진 파격적인 건물이 하나 들어섰는데 놀랍게도 그 건물이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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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가 이러한 모양을 가진 이유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맨해튼의 격자형 도로망에서 나타나는 주거의 특징은 중정형의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그러한 뉴욕의 전통적인 중정형 집합주거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블록의 주변으로 세대가 배치된 네모난 중정형 건물을 배치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사업성을 위해서 층수를 높여야 한다. 문제는 층수를 높이면 남측의 높아진 아파트가 그림자를 드리워서 중정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남측의 세대를 낮추고 대신 북측의 아파트는 그만큼 높였다. 그

런데 허드슨강가에 위치한 이 건물은 서측으로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측에만 남향으로 세대를 배치하면 서측에 위치한 전망을 즐길 수 없게 된다. 건축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측에도 세대를 배치하고 전체적으로 건물이 북동측이 가장 높고 남서측으로 점차 낮아지는 형태를 가지게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의 모든 세대가 남향이면서도 서측의 허드슨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게다가 중정에는 햇볕도 잘 드는 아파트가 완성되었다. 전망·남향·중정,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대지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제약은 세 가지 손이 되어 건물의 형태를 주물러서 완성시킨 것이다. 훌륭한 건축가는 이렇게 제약을 개성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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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아파트가 가져올 미래

한강가의 아파트 풍경과 이 아파트가 위치한 뉴욕의 풍경을 비교해보자. 둘의 차이는 다양성의 차이다.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불규칙과 다양성으로 만들어진다. 자연이 그렇다. 숲은 복잡한 나뭇가지 모양을 가지지만 녹색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적당한 불규칙이다.

단순히 아름다움 때문에 다양한 건축물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의 창의적인 지혜가 만들어낸 독특한 형태의 아파트가 사회에 던지는 영향은 크다. 우아하면서도 개성 있는 아파트들은 집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뛰어넘어서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모든 입주자는 나만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개성이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현재 우리는 경제성만 생각하고 똑같은 아파트를 대량생산하고 있다. 전국 어디 가나 똑같이 생긴 아파트는 환금성이 좋고, 따라서 화폐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똑같이 생겼기에 가치판단의 기준은 ‘집값’밖에 남지 않는 문화가 생겨난다. 우리는 각기 다양한 개성이 있는 아파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큰 아파트 단지에는 30개가 넘는 동이 들어선다. 이들을 한 사무실에서 마스터플랜을 한 후 서너 동씩 묶어서 각기 다른 건축가들에게 맡긴다면 개성 있는 건물들이 나올 것이다. 분양하면 어차피 오르게 되는 아파트 가격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처음에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제대로 된 건물을 짓고 나만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주거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세상에는 내가 얼마짜리 집에 사느냐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가치를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다. 우리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을 뿐이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아파트를 꿈꾸며 어떻게 지을 것인가, 어떻게 자연을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해외 사례를 통해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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