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아름답지만 너무 슬픈 제주 여행지

노시경 2021. 9. 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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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과 삶] 너른 들판에 남은 다크 투어리즘, 알뜨르 비행장 여행기

제주의 마을, 오름, 폭포와 그 안에 깃든 제주의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노시경 기자]

제주 서귀포시 송악산과 대정읍 사이엔 일제 강점기 시절 남겨진 흉물스러운 현장, '알뜨르 비행장'이 펼쳐져 있다. 그 이름 참 예쁜 '알뜨르'는 아래 벌판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어다. 제주도에서는 상대적으로 해안과 가깝고, 넓고 평평한 곳을 '알뜨르'라고 한다.

가을비 그친 다음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아침에 알뜨르 비행장을 찾았다. 알뜨르 비행장 앞 주차장에는 평화와 인권을 되새겨보는 역사교훈 여행,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으로서 알뜨르 비행장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전시돼 있었다. 
 
▲ 알뜨르 벌판 알뜨르 벌판 일제 격납고 뒤로 산방산과 한라산이 펼쳐진다.
ⓒ 노시경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로 사용되던 시멘트 구조물은 밭 한복판의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눈에 들어오는 한 격납고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 다양한 색깔의 천조각이 나부끼고 있는 이 격납고를 향해 걸어갔다. 격납고 주변에서는 제주에서 흔치 않은,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푸른 줄기가 잘 자란 밭 한복판에는 튼실한 감자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검은 역사의 질곡 속으로
 
▲ 알뜨르의 검은 밭 검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사람들은 굳세게 살아나가고 있다.
ⓒ 노시경
   
제주를 상징하는 검은 흙이 밭 전체에 퍼져 있는 모습이 무척 이국적이었다. 격납고까지의 진입로는 꽤 돌아가야 해서, 빠르게 가기 위해 밭이랑 사이를 걸어 들어갔다.

밭 이랑 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조금씩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어제 비가 내려서 땅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것이다. 밭과 밭이 만나는 곳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질척거리는 곳에 그만 운동화가 빠져버렸다. 마치 검은 역사의 질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알뜨르 곳곳에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흉물스러운 구조물들이 입을 벌린 채 밀집돼 놓여 있었다. 알뜨르의 시원스럽게 넓은 벌판은 일제강점기 때 대표적인 군사시설인 일본군 비행장이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1920년대 중반부터 인근 모슬포 지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고, 인근 바닷가의 자갈과 모래를 시멘트, 철근과 혼합해 만들었다. 활주로, 전투기 격납고와 탄약고 등이 무려 10년에 걸쳐 세워졌고, 비행장은 전쟁을 치르면서 계속 확장됐다. 
 
▲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국가등록문화재로 관리되는 격납고 안에 제로센 모형이 자리한다.
ⓒ 노시경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알뜨르 비행장을 중국 본토 폭격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일본에서 날아온 폭격기는 알뜨르에서 주유를 하고, 상하이, 난징을 공습했다.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제주도 남부 해안을 군사기지화하고, 알뜨르 비행장을 본격적으로 요새화하고 확장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가미카제를 위한 조종 훈련을 이곳 알뜨르 비행장에서 했다고 하니 섬찟하기까지 하다.

전투기 격납고 안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널리 알려진 전투기인 '제로센'이 실물 크기로 형상화돼 전시돼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열심히 조립모형으로 만들었던 함상전투기 중 별 생각 없이 만들었던 일본제국 전투기다. 
   

박경훈과 강문석 작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전투기 모형은 실감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전투기 위에서 휘날리는 다양한 색상의 천조각은 마치 평화를 갈구하는 듯했다. 이 천조각에는 여러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일제 전투기 위에 남겨진 '대한민국 파이팅'이었다.

역설적인 풍경
 
▲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1943년에 만들어진 격납고는 현재 19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 노시경
 
1943년에 20기가 만들어진 전투기 격납고는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밀집된 방향으로 잘 보존된 10기는 국가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었다. 나는 밭 한가운데의 격납고들을 하나씩 천천히 둘러보면서 걸었다. 모든 격납고를 보려고 했으나 전날 내린 비로 격납고 접근로인 농로가 잠겨 있어서, 일부 격납고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내 운동화는 이미 밭에서 묻은 진흙탕 흙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제주에서 만나는 비와 빗물은 역시 숙명이다. 
 
▲ 비행장 관제탑 태평양 전쟁 당시 활주로에 들어선 전투기들을 통제하던 탑이다.
ⓒ 노시경
 
나는 발길을 돌려 알뜨르 비행장 관제탑으로 향했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볼 수 있는 관제탑은 원형의 시멘트 골격만이 남아 있었다. 이 시멘트 구조물에 아슬아슬 남은 계단을 오르니 알뜨르 너른 벌판과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제의 난징 폭격 거점 위에 올라서서 보는 풍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름과 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비행장 활주로 너른 들판의 활주로는 이제 제주도민의 삶을 일구는 밭이 되어 있다.
ⓒ 노시경
 
나의 다크 투어리즘 마지막 목적지는 알뜨르 비행장 방어용 진지로 만들어진 인근 섯알오름의 고사포 진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최전선 방어선으로 만든 동굴진지와 함께 구축된 진지이다. 무성한 오름의 풀을 헤치며 제주 올레길 10코스인 숲길을 걸어갔다.  
 
▲ 고사포 진지 전쟁 막바지에 건설된 고사포 진지는 미군 폭격에 대비한 군사시설이었다.
ⓒ 노시경
 
일제의 고사포는 모두 철거되고 없지만 고사포를 설치했던 시멘트 진지가 그대로 남아 가을의 아침 햇빛을 받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 속에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전쟁과 인간의 역사는 무상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알뜨르 비행장의 역사 현장을 찾아온 여행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불과 몇 십년 전에 이렇게 국토를 유린당하고 살았다는 사실은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1945년에 일본군이 수립한 '결7호작전'은 제주도를 '옥쇄형(玉碎形) 요새기지'로 만든다는 것이었으니, 태평양전쟁이 일찍 끝나지 않았으면 제주도민들은 엄청난 살상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응축된 제주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뼈가 저릴 정도로 충격적인 역사다.

이 힘든 역사를 보낸 오늘 제주의 하늘은 비 갠 후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검은 밭에서 밭을 일구고 계신 할아버지의 어깨를 보니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 알뜨르 밭과 농부 비 갠 검은 밭 위에서 노부부가 열심히 밭을 일구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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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은 9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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