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목욕했다는 이곳..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전망

정명조 입력 2021. 9. 25. 14:30 수정 2021. 9. 2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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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머물다 가는 곳, 충북 영동 월류봉 둘레길을 걷다

[정명조 기자]

▲ 월류봉  높이 약 400m 되는 산봉우리 6개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 정명조
충북 영동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백두대간 삼도봉 서쪽에 있는 민주지산에서 시작한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여러 곳에서 생긴 물이 골짜기를 따라 굽이쳐 흘러 금강 물줄기를 이룬다. 그곳에 월류봉(月留峰)이 있다. 달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월류봉이 보이고 초강천이 흐르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잠시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그곳에 한천서원을 짓고, 우암 선생의 제사를 지냈다. 조선 시대 끝 무렵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10년 한천정사(寒泉精舍)로 다시 세워졌다. 이를 본떠서 월류봉의 여러 모습 가운데 여덟 곳을 골라 한천팔경이라 이름 지었다.

어느 해보다도 지루하게 느껴졌던 여름이 지났다. 들녘에는 여문 과일과 곡식이 가을임을 알리고 있었다. 얼마 전 추석이 다가올 무렵, 영동을 찾았다. 월류봉을 오르고, 월류봉 둘레길을 걸었다.

월류봉

월류봉 광장에 섰다. 높이 약 400m 되는 산봉우리 6개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월류봉 아래로 초강천이 흐른다. 삼도봉과 석기봉과 민주지산에서 생긴 물이 물한계곡을 지나 흐르는 물줄기다. 월류봉을 휘감고 영동을 돌고 돌아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월류봉에서 초강천으로 뻗은 낭떠러지 위에 2006년에 세운 월류정이 있다.
 
▲ 한반도 지형  월류 1봉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이다. 오른쪽 들녘은 옛날에 물이 돌아가던 길이다.
ⓒ 정명조
월류봉 광장에서 왼쪽으로 돌아가 초강천을 건너면 등산로 들머리다. 오르는 길은 몹시 가파르다. 끊임없이 계단이다. 도토리가 수북이 쌓였다.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추락주의 푯말이 섬뜩하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20여 분 뒤 정상이다. 해발 365m다. 조금 더 가면 월류 1봉이다. 전망대가 있다.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 오른쪽 들녘은 옛날에 물이 돌아가던 길이다. 길쭉한 모양의 산은 마치 한반도 옆에 있는 섬나라 같다.

월류 2봉에는 산불초소가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방으로 산이 빙 둘려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설렁설렁 걸으면 월류 3봉이다. 여기서부터는 봉우리 사이 거리가 멀다. 월류 4봉을 지나 가파른 바윗길을 걸어 마지막 봉우리 월류 5봉에 올랐다. 해발 405m로 최고봉이다.

멀리 백화산 줄기가 보이고,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첫 촬영지인 솔티마을도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몹시 가파르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한다. 하산 갈림길에서 하산쉼터 쪽으로 가면 초강천이다.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건너 월류봉 광장으로 돌아왔다.
 
▲ 월류정  월류봉 아래 월류정이 있고, 그 밑에는 초강천이 흐른다.
ⓒ 정명조
짧은 산행이었다. 들머리에서 오르는 길과 날머리로 내려가는 길을 빼고는, 산등성이를 걷는 재미가 솔솔 났다.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이 한몫했다. 아래에서 월류봉을 바라보는 것도 멋졌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좋았다.

월류봉 둘레길

월류봉 둘레길은 여울소리길과 산새소리길과 풍경소리길로 나뉘어 있다. 월류봉 광장을 출발하여 반야사에 이르는 8.4km 길이다. '우암송선생유허비'를 지나 초강천을 따라가면 석천과 만난다.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여울소리길이라고 한다.
 
▲ 여울소리길  데크길과 흙길로 쉽게 걸을 수 있다. 초강천과 석천을 이어서 걷는다.
ⓒ 정명조
월류봉을 뒤로하고 석천을 따라 걸었다. 데크길이 이어지다 흙길이 나온다. 야자 매트가 깔려 있다. 오르락내리락한다. 좋을 때 웃으며 같이 걷자고 하는 글귀가 곳곳에 걸려 있다. 손잡고 걸으라고도 한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함께한다.
 
▲ 산새소리길  물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삼대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휠체어나 유모차로 완정교에서 우매리까지 데크길과 아스팔트 포장길을 오갈 수 있다.
ⓒ 정명조
산새소리길은 물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새소리는 가끔 들린다. 삼대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낭떠러지 아래 석천 물길 가장자리에 만든 데크길이 목교까지 굽이굽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물속에서 하나씩 줍는 것이 아니라 작은 뜰채로 긁어 담고 있다. 가까운 식당에 다슬기로 만든 먹을거리가 많은 이유다.

목교를 지나면 백화마을 앞길이다.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길가에 사과와 감과 대추와 호두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제발 조용히 해 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산 중턱에는 40여 채 전원주택도 있다. 친환경 공동체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백화산을 뒤로 하고 앞에는 석천이 흐르는 전망 좋은 마을이다.

풍경소리길은 숲길이다. 반야교를 건너 관음전을 거쳐 영천까지 가는 길이 월류봉 둘레길 가운데 최고의 구간이다. 벤치에 앉았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잘 어울렸다. 공사판에서 나는 굴착기 소리조차도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들렸다. 한참 쉬었다. 풍경 소리가 그윽하게 들릴 것 같은 곳에 반야사가 있었다.

반야사
 
▲ 산신령 호랑이  백화산 호랑이가 산신령이 되어 절을 지키고 있다. 너덜겅이 만든 작품이다.
ⓒ 정명조
반야사는 백화산 호랑이가 산신령이 되어 지키고 있는 절이다. 옆으로 석천이 흐르고, 그 너머는 백화산 줄기가 가로막고 있다. 앞마당에서 왼쪽을 보면 요사채 지붕 위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다. 집채보다 더 크다. 고개를 들고, 꼬리를 산 중턱까지 길게 치켜세우고 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모습이다. 너덜겅이 만든 작품이다.
 
▲ 문수전과 영천  문수바위 낭떠러지 꼭대기에 문수전이 있다. 까마득한 아래쪽 물이 고인 곳이 영천이다. 세조가 목욕했다는 곳이다.
ⓒ 정명조
지장전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망경대다. 100m 정도 되는 문수바위 낭떠러지 꼭대기에 문수전이 있다. 암자 둘레는 한두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다. 마루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석천이 푸른 숲에 둘러싸여 굽이돌아 흐른다. 최고의 전망이다. 까마득한 아래쪽에는 흐르던 물이 잠시 머무르며 고여 있다. 영천이다.

조선 세조가 목욕하고, 피부병을 고쳤다는 곳이다. 망경대 아래 영천에서 목욕하라는 문수보살의 말대로 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 세조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나타내는 반야(般若)를 어필로 남겼다. 절 이름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어필은 남아 있지 않다.

월류봉 둘레길은 여기서 끝난다. 초강천과 석천을 이어서 걸었다. 여울 소리와 산새 소리와 풍경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파란 하늘과 푸른 숲과 은빛 물길이 눈을 즐겁게 했다. 이른 저녁으로 올뱅이 국밥을 먹었다. 영동에서는 다슬기를 올뱅이라고 한다. 국밥과 부침개와 무침이 맛있다. 입도 즐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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