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송혜교처럼 '속초 바다향기로' 걸어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입력 2021. 9.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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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노래하던 속초 동명항 영금정 바다/늦여름 즐기는 가족들 평화로운 풍경/속초해변 한쪽은 바다 한쪽은 해송/연인들은 ‘폴링 인 러브’/드라마 ‘남자친구’ 촬영지 외옹치 바다향기로/65년 베일벗고 신비로운 풍경 선물

속초 영금정 바다
이글거리던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이제 식었다. 파도와 맞서는 힘찬 수영으로 바다를 가르고 모래사장에 앉아 왁자지껄 떠들던 젊음도 추억을 부여안고 떠난 지 오래. 철 지난 쓸쓸한 해변에는 푸른 파도만 무심하게 밀려왔다 사라진다. 그래도 외롭지만은 않다. 바다는 그 거대한 크기만큼 언제나 넉넉하고 푸근하게 안아주니까. 속초바다 향기 따라 거닐며 심란한 기억 다 놓아주고 그 자리에 신선한 초가을 들인다.
영금정 
동명항
#파도가 노래하던 영금정에 서다

계절은 늘 신비롭다. 가는 여름 아쉬워 심술부리던 더위도 추석 때가 되면 어김없이 풀이 죽어 긴소매 옷을 찾게 만든다. 추석연휴가 지나면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데 올여름 휴가 때도 바닷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지긋지긋하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이놈 때문에 전국의 해수욕장도 서둘러 폐장하고 말았다. 즐기지 못한 여름 바다 못내 아쉬워 발이라도 담가볼 요량으로 강원 속초 바다로 달린다.

속초 하면 대포항이 유명하지만 너무 번잡할 듯해 북쪽의 동명항을 찾았다. 속초시 수협에서 운영하는 동명활어센터 건물 외벽에 ‘동해안 순수 자연산만 취급합니다’라는 글자가 큼직하다. 싱싱한 자연산 활어를 맛볼 수 있기에 속초를 찾는 식객을 불러모은다. 러시아와 중국행 여객선이 출항하는 속초국제여객터미널도 동명항에 있다. 늘 아담하고 정겨운 항구였는데 오랜만에 보니 너무 많이 달라졌다. 주변에 초고층 아파트가 대거 지어지고 있는 풍경이 많이 낯설다. 고즈넉한 어촌 풍경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아쉽다.

영금정에서 내려다 본 해돋이 정자
동명해교
동명항은 이름처럼 동해에서 밝은 해가 떠오르는 곳. 새해면 어김없이 장엄한 일출과 함께 한해를 설계하려는 여행자들로 새벽부터 붐빈다. 바로 영금정이다. 가파른 계단을 조금 오르자 고풍스러운 정자가 여행자를 맞는다. 이미 많은 이들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멍 때리며 아름다운 속초바다를 즐긴다. 영금정 아래 커다란 바위를 때리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눈을 감고 귓불을 스치는 바람을 즐기며 청각세포를 온전히 파도소리에 집중하자 바다는 귓가에 신비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파도의 연주 따라 가슴을 짓누르던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시원하게 씻겨 사라지는 기분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오기 잘했다.
영금정과 해돋이정자
속초전망대 아래 영금정 바다
영금정(靈琴亭). 이름 그대로 ‘신령스러운 거문고를 타는 정자’라는 뜻. 바다 안에 우뚝 솟은 돌산 꼭대기에 정자를 닮은 기암괴석이 있었다. 날이 맑을 때면 마치 솜씨 좋은 연주자가 돌산에 앉아 거문고를 타듯, 파도는 돌산을 악기삼아 신비롭고 오묘한 연주를 들려줬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선녀들도 신비로운 풍경과 파도의 연주에 반해 자주 놀다간 모양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 조선시대 문헌에 영금정 일대를 ‘비선대(秘仙臺)’라 불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선녀들이 밤이면 몰래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신비한 노래를 부르며 즐겼다는 얘기도 담겼다. 그만큼 영금정 풍경이 매혹적이었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돌산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는 속초항을 만들면서 돌산을 마구 깨 석재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우뚝한 돌산은 지금처럼 원형을 찾을 수 없는 평평한 바위가 되고 말았다. 옛 추억을 기억하는 속초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1998년 바위 위에 지금의 정자를 지은 덕분에 그나마 이런 영금정의 슬픈 역사가 살아남아 전해진다. 다행이다.
속초전망대 아래 영금정 바다
영금정에 오르면 발아래 또 다른 정자가 보인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동명해교 끝에 아찔하게 매달린 해돋이 정자로 역시 1997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지었다. 영금정 정자를 더 근사하게 즐기려면 북쪽 해변으로 가면 된다. 신기하게도 해변에서 10m가량 떨어진 바다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바위가 펼쳐져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투명한 바다를 가뒀다. 반석 같은 너른 바위가 펼쳐지고 수심이 얕아 여름에 아이들과 물놀이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바위에 간이 의자를 놓은 한 가족이 아이들과 발을 담그고 푸른 바다와 하늘을 즐기는 풍경이 평화롭다. 하지만 너른 바위 너머는 파도가 거칠어 너무 멀리 나가면 위험하다. 바위 위에 서면 영금정의 두 정자와 동명해교가 모두 보이고 포말로 부서지는 거대한 파도가 잊지 못할 속초 바다 풍경을 완성한다.
속초해변
이철희 작가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 부제 키스’
#박보검·송혜교처럼 외옹치 바다향기로 걸어볼까

영금정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속초해변을 만난다. 차로 10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다. 속초 대표 해수욕장으로 입구에 로맨틱한 대형 조각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철희 작가의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 부제: 키스’다. 땅에 끌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녀의 허리를 한껏 휘어 받치고 영화처럼 입을 맞추는 남자는 사랑에 제대로 빠진 모습이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해변에 잘 어울리는 근사한 작품이다. 세계 여러 도시까지 거리와 방향을 표시한 조형물도 보이고 2020년대를 하트를 넣어 표시한 ‘2♡2’ 조형물도 재미있다. 오른쪽 끝에 ‘1’자처럼 똑바로 서면 ‘2021년’이 완성된다. 매년 우스꽝스런 포즈로 숫자를 만들어 인증샷을 찍는 여행자들을 볼 수 있겠다.

속초해변 서핑
속초해변 해송솦길
액자 조형물과, 속초 초성을 딴 ‘ㅅㅊ’ 조형물 등 다양한 포토존이 설치돼 지루할 틈이 없다. 조도 전망대를 리뉴얼한 120m 길이 방파제에도 홍게 조형물 등 다양한 포토존이 설치돼 예쁜 사진 남기기 좋다. 방파제 왼쪽 바다에선 한무리의 청춘들이 저 멀리 영금정과 그 뒤 높은 언덕에 세워진 속초등대전망대를 배경으로 서핑을 즐긴다. 부럽다. 그들에겐 아직 속초해변은 여름인가 보다. 해변에는 연인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바다 위 홀로 떠 있는 조도를 쓰다듬으면서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속초해변은 해송숲이 있어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좋다. 멋대로 휘어지며 운치 있게 자란 소나무가 빽빽해 깊은 숲속에 온 듯하다.
외옹치해변 바다향기로
외옹치해변 바다향기로 마당바우
속초해변 남쪽 끝자락에서 만나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는 비교적 ‘신상’ 여행지. 65년 동안 꽁꽁 감춰졌던 비경이 2018년에야 베일을 벗었다. 외옹치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따라 남쪽 외옹치항까지 데크와 흙길이 이어져 속초 바다의 아름다움에 풍덩 빠지게 된다. 속초해수욕장을 포함한 바다향기로 모든 구간은 1.74km이며 그중 외옹치 구간은 900m 정도다.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던 외옹치해변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해안경계 철책까지 설치되면서 완전하게 고립됐다.
외옹치해변 바다향기로 ‘남자친구’ 전망대
드라마 ‘남자친구’ 포토존
덕분에 천혜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옹치해변~암석관찰길∼안보체험길∼하늘데크길∼대나무명상길을 지나 외옹치항으로 이어지며 왕복 40여분 정도 걸린다. 지난해 태풍으로 일부 구간이 유실되면서 현재는 절반 정도인 외옹치해변~제1전망대 구간만 둘러볼 수 있다. ‘속초 외옹치’란 글자가 적힌 아치형 하얀벽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아치 안으로 아담한 외옹치해변과 조도를 모두 담을 수 있으니 사진 한장 남기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해변의 다양한 기암괴석과 파도가 어우러지며 매우 낭만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바다 풍경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걸으며 가슴 가득 바다를 품을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이다.
외옹치해변 바다향기로 전망대
물개들이 자주 와서 놀던 해구바위를 지나면 안보철책이 등장한다. 슬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철책을 일부 남겨 놓았는데 철책에 하트 조형물을 설치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녹슨 철책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도 이채롭다. 연인들은 하트 옆에서 손하트를 그리며 사진 찍느라 바쁘다. 안보체험길 언덕을 넘으면 계단 아래로 벤치가 하나 설치된 간이 전망대가 등장한다. 끝에 서자 손에 닿을 듯 가까운 푸른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벤치 앞 바닥에는 ‘남자친구 촬영 장소’라 적혔다. 드라마에서 박보검과 송혜교가 걷던 길이 바다향기로다.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바다 풍경을 즐기는 연인들. 드라마 주인공이 따로 없다. 

속초=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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