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아니, 이상한 제도와 결혼했다!

한겨레 2021. 9.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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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가 '완벽한 추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한국 사회에서 몇명이나 될까.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선호빈, 2018)의 주인공 진영씨는 추석에 시가에 가지 않는 것을 남편(감독)과 합의하고 행복해한다.

다큐멘터리는 비(B)급도 안 되는 에프(F)급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전사 같은 진영씨와 며느리의 의무를 강하게 말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자신은 이상한 여자랑 결혼했다며 괴로워하는 감독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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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B급 며느리' '박강아름 결혼하다'
〈B급 며느리〉. 와이제이코마드 제공

지난 연휴가 ‘완벽한 추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한국 사회에서 몇명이나 될까.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선호빈, 2018)의 주인공 진영씨는 추석에 시가에 가지 않는 것을 남편(감독)과 합의하고 행복해한다. 가부장제 속 남성은 쏙 빠진 채, 여자들만이 반목하고 있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인 ‘고부갈등’이 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다큐멘터리는 비(B)급도 안 되는 에프(F)급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전사 같은 진영씨와 며느리의 의무를 강하게 말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자신은 이상한 여자랑 결혼했다며 괴로워하는 감독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는 식구지만, 그 의무가 따로 있다고 단언한다. 집안 대소사에 참석할 것, 시동생에게 존댓말을 할 것 등 모든 기준은 부계 가족 중심이다. 진영씨는 기울어진 이 의무 앞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 자신이 가족으로서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무만을 강요받는지. 둘의 갈등이 깊어지자 감독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이에 감독의 친가 가족은 감독에게 중립을 잘 지켜서 둘 사이를 원활하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아내 몰래 부모에게서 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던 감독은 자신의 부모에게 성평등한 가족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하지 못한다. 그저 양쪽의 분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다. 그러던 감독은 자신의 ‘불행을 팔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결혼 전 해맑았던 진영씨는 이 결혼 생활에서 자신이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 심리적 우울함을 토로한다. 지금 그에겐 남편이 감독으로 유명해지는 건 관심 밖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결혼 제도의 모순을 다룬 〈박강아름 결혼하다〉(박강아름, 2019)에도 유사하게 ‘주부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등장한다. 다만 아내인 박강아름이 아니라 남편인 정성만씨가 그 우울증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다. 두 사람은 프랑스 유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성별 역할 분담이 역전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알기에 돈을 벌고 공부를 하는 등 외부 활동을 하고, 프랑스어를 못하는 남편은 스스로를 ‘식모’라고 부르며 독박 가사, 육아를 한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끊임없이 남편이 자신을 내조할 것을 원하며, 가부장적인 남성처럼 비춰진다. 이 결혼 생활을 보면서 관객들은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남편 정성만이 이상한 여자인 박강아름과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두 다큐멘터리는 감독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결혼 제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성애 결혼 제도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와 주거 정책 또한 가족 단위를 기반으로 설계된다. 이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성역할 통념으로 결혼 제도 내 가사와 육아는 누군가의 무급 노동으로 유지된다. 이때의 ‘누군가’는 주로 여성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계중심 문화의 불합리성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두 영화에서 이상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상한 것은 영화에 등장한 개개인들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제와 결혼 제도일 것이다.

영화감독

▶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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