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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폭군처럼 구는 고등학생 딸, 부모로서 무력합니다

송옥진 입력 2021. 09. 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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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사는 40대 직장인입니다. 말과 행동이 거친 고등학생 딸과의 갈등이 극심해 괴롭습니다. 딸은 부모와 오빠에게 무시, 조롱, 욕설은 기본이고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집니다.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아동학대, 가정폭력 혐의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요. 이럴 때마다 부모로서 너무 무력감이 듭니다.

딸은 평상시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해요. 딸과 제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들어줄 때까지 저를 계속 들들 볶아요. 제가 보기에는 노래, 춤이 뛰어나지도 않고 평범한데 연예인을 하고 싶다며 학원 등록을 원하거나 성형 수술을 시켜달라고 조르는 식이에요. 돌아보면 처음엔 반대했다가도 아이한테 시달리다 지쳐 결국 다 들어줬던 것 같아요. 보컬 학원도 보내 주고 얼마 전에는 쌍꺼풀 수술을 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다음 요구 사항을 들이밉니다. 그러면 다시 '안 된다'는 저와 논쟁을 하는 일이 반복돼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났더니 요즘에는 피부과 시술 운을 띄웁니다. 저한테 하는 말도 '○○○을 사야 하니 카드 줘요' 같은 말 뿐이에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은 6세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어요. 그러다 10세쯤 본인이 강하게 거부해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작년에는 적대적반항장애, 우울증 진단을 받아 현재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딸은 매번 학교, 학원에 지각하고 숙제를 제때 내지 못하지만 특목고에 입학한 것을 보면 공부를 아주 놓아버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집에서 난폭하게 군다는 점이에요. 딸은 두 살 많은 오빠와 부모에게 욕을 하고 격분하면 아령, 유리컵 등 물건도 던집니다. 아직 부모를 때린 적은 없지만 오빠를 자주 공격해요. 얼마 전에도 저와 딸의 싸움을 말리던 오빠의 안경을 낚아 채 내동댕이쳐서 실랑이가 붙었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이 코피가 나자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바로 신고를 했어요.

어느 날은 남편이 '공부 못하는 오빠 지원해주는 것보다 자기 지원해주는 게 투자 가치가 더 나아서 그런데 뭐가 아깝냐'는 딸의 말에 뺨을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습니다. 저희도 이후 반성을 하고 아이 앞에서 울면서 사과했습니다. '반항장애가 있으니 우리가 이해하자'며 아이와 부딪히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막말이 심해지고 점점 더 폭군처럼 굽니다. 법원에서 아동학대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약 6개월 동안 아이는 이런 상황에 민망해하기보다 '나 잘못 건드리면 알지?' 하는 식으로 행동했어요.

아이는 집 밖에서도 갈등이 많아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친구 관계가 늘 원만하지 않아 제가 친구 엄마나 선생님을 통해 화해시키며 노심초사 키웠습니다. 보컬학원에서도 멤버들과 갈등이 생겨 쫓겨나듯이 그만뒀어요.

딸은 항상 반성이 없고 남 탓만 해요. 상담도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센터만 찾아다닙니다. 반대로 얼마 전 아동학대전담기관에서 소개시켜준 상담은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지 '상담사가 아는 것도 없고 해주는 것도 없다'며 그만두고 싶다고 합니다.

폭주하는 딸을 볼 때마다 너무 무력감을 느껴요. 딸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기엔 너무 힘에 부치고, 요구를 거절하면 가족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며 괴롭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박주연(가명ㆍ48ㆍ직장인)

주연씨, 어린 자식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우실까요.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자세한 사연을 읽으면서 부모로서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누군가는 이런 아이가 있냐고, 부모가 잘못한 게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임상 현장에서 비슷한 일을 숱하게 봤기 때문에 주연씨가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사연을 보냈을지 너무나도 이해가 됩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의 흠을 남에게 보이고 싶겠습니까. 아마도 정확한 사실을 알려줘서 하나라도 더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이셨을 거예요.

그러니 독자 분들도 어린 학생이나 부모에 대해 비난의 말은 부디 자제하시고 주연씨에게 용기를 주는 마음으로 칼럼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연씨 딸은 왜 이럴까, 그리고 이런 아이를 대할 때 부모의 태도와 역할은 어때야 할까를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의 출발은 ADHD예요. ADHD는 흔히 알고 계신 것처럼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공부를 할 때 집중을 못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기 연령에 맞는 적절한 자기조절 능력, 억제할 것을 억제하는 능력을 획득하는데요, ADHD를 앓는 아이들은 이 능력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주연씨 딸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사람이 화가 난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지지 않아요. 행동 조절이 안 되는 거죠.

게티이미지뱅크

ADHD 환자들은 또 충동성이 매우 높습니다. 외부 자극으로 감정 또는 생각이 유발되면 이에 대한 반응이 너무 빠르게 나오는 거예요. 반응을 가다듬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요. 어떤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면 상대가 누구든 바로 욕이 튀어나오는 거죠. 오랜 시간 간절히 원했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 당장 사야 하고, 먹어야 하고, 해야 합니다. 아이는 이처럼 자기 조절이 안 되는 상태에서 반응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까 언제, 어느 곳에서나 물의를 빚거나 굉장히 사소한 일이 큰 싸움이 되거나 윗사람들로부터 아니면 또래로부터 질타를 받는 일이 많을 거예요.

특히 '역지사지' 하는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져요. '나도 기분 나빴지만 저 사람 입장에서도 힘들었겠다' 같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자기 마음 안에 나의 마음과 남의 마음이 같이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자기 마음 밖에는 없어요.

엄마와의 관계를 대표적으로 볼게요. 시작은 언제나 요구를 해요. 요구를 들어 줄 때까지 엄마를 들들 볶습니다. 기어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을 또 내놓거든요. 보편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서로 즐거웠던 하루 이야기도 하고, 의논도 해야 하지만 주연씨 딸과는 이런 게 힘듭니다. 딸은 다른 사람이 별로 궁금하지 않고, 자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아이는 타인을 자기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사주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모든 ADHD가 이렇지는 않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잘 지내는 아이들이 많아요. 문제의 시작은 ADHD였지만 딸의 지금 문제는 ADHD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을 때 동반되는 질환들, 적대적반항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 더 커보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혹자는 딸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집 밖에서도 인간관계에 갈등이 많습니다. 지금은 의식주를 함께 하는 가족과 갈등이 가장 크지만, 이대로라면 살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문제가 빚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도움이 필요한 상태예요.

저는 주연씨에게 앞으로 딸과 관련된 일의 결정권과 책임을 아이에게 넘겨주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연씨 딸은 부모가 타이르고 설득하는 식의 훈육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요. 훈육으로 시작해도 논쟁이 말싸움이 되고, 몸싸움이 되고,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여요. 그보다는 아이가 특정 요구를 할 때, 현실과 한계를 분명하게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시고요, 상식에 반하는 무리한 요구라면 '돈은 있지만 못 들어준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예를 들면, 아이가 '성형을 해달라'고 했을 때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고 하거나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까 네가 나중에 돈 벌어서 해'라고 아이에게 '공'을 넘기세요. 물론 아이는 난리가 나겠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시고, 설득하려고도 하지 마시고, 거기서 선을 긋고 딱 끝내세요. '성형 안 한 얼굴이 더 예쁘다'거나 '고등학생이 무슨 성형이냐' 하는 말로 아이의 가치관을 뜯어 고쳐주려고 해 왔던 것이 오히려 갈등만 키웠던 것 같아요.

부모이기를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연씨 사연의 경우, 부모 자식 관계의 방향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그간은 공을 아이에게 넘기지 않고 부모가 가진 채로 최종 결정을 하다 보니, 아이는 부모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부모는 반대하고 갈등하다 끝내 들어주는 패턴이 반복돼 온 경향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만일 '학교를 한 학기 휴학하고 해외로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할 때, 경제적인 여건상 불가능하다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오빠와 너를 같이 교육하기에 부담이 커서 안 된다. 나중에 네가 돈 벌어서 가면 보태주든지 할게'라고 아이한테 공을 넘기세요. 아이가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다' '부모가 무능하다'고 나오더라도 논쟁하지 마시고, 아이를 앉혀 놓고 '학교 휴학이 안 좋다'며 설득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아이가 받아들이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겁니다.

공을 넘긴다는 건 주연씨 딸이 자신의 인생에 책임감을 갖도록,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겁니다. 아주 작은 결정이라도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가급적 딸이 의료진과 이야기해 직접 날짜를 정하도록 하는 겁니다. 부모님은 딸이 요청할 때 데려다주시기만 하시고요. 너무 걱정이 되시겠지만 아이의 인생을 뜯어 고쳐주려고 하지 마시고 한 발 물러서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겁니다. 주연씨 딸 같은 경우 꾸준한 치료도 중요한데요, 당부하자면 부모가 '너 그러니까 약 먹어'라든가 '너 그러니까 병원가라는 거야'라는 말은 피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병원이나 치료에 처벌적 의미를 부여해 거부감을 갖게 될 수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주연씨 부부도 아마 딸을 보며 마음 한 곳에 '내가 잘못 키워서 그런가'라는 죄책감이 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주연씨가 부모로서 아이한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아직 어리고 부모로서 해줄 역할이 있습니다. 아이가 미래에 만나는 사람들과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부모님이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딸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족과의 관계가 '열쇠'가 되는 순간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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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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