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송된 명품 입고선 "선물인 줄 알았다"는 이웃, 처벌 못 하나요?

이가영 기자 2021. 10.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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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 매장에 전시된 패딩 점퍼. /조선일보DB

불어오는 바람 속 찬 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미리 저렴하게 겨울옷을 준비하려는 이들이 늘어난다. 고가의 제품을 택배로 전달받기로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골치 아픈 상황, 법적인 해결 방법을 알아보자.

지난해 10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내 생일 선물로 온라인에서 명품 패딩 점퍼를 구매했다가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이 게재됐다. A씨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약 260만원에 결제한 화면을 올리고는 “택배기사도 아닌 배달대행기사가 옆 동에 물품을 잘못 배송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A씨는 해당 집에 찾아갔다. 그집에 사는 이웃 여성은 “택배를 뜯어서 옷을 몇 번 입었다”며 “정품박스와 더스트백(가방 보관 주머니) 모두 버렸다. 옷은 쇼핑백에 넣어서 문앞에 놔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택배가 잘못 갔는데 왜 옷을 입었느냐고 묻자 이웃은 “선물 온 건 줄 알았다”고 답했다고 A씨는 전했다. 아내에게 남이 입은 옷을 선물로 줄 수도 없어서 그냥 저렴하게 팔까 싶어 만나자고 했지만 이웃은 만남도 거절했다고 한다. A씨는 “택배기사, 배달대행기사, 저 모두 혼란 상태”라며 “법적으로 접근은 안 되겠냐”고 물었다.

◇잘못 배달된 택배를 뜯어서 사용했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나요?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택배 물품은 운송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지금 그 물품을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배송을 요청한 사람의 점유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점유가 인정되는 물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면 절도죄 성립이 가능합니다.

◇'선물인 줄 알았다’면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우겨도 마찬가지인가요?

물건을 훔치려는 고의, 즉 타인 소유 물건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었다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과실 절도’는 처벌규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택배 물건이 타인 소유라는 점에 대해 인식했을만한 사정이 충분합니다. 택배 상자에 적힌 배달지 주소를 보면 자신에게 배달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는 점, 택배를 열어봤을 때 오배송된 것을 알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칙과 경험칙에 들어맞습니다. 선물인 줄 알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물건을 돌려준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래도 죄를 물을 수 있나요?

물건을 돌려주는 건 절도죄 성립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택배 상자를 열고 타인 옷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입는 순간 절도죄가 성립합니다.

◇이웃 여성이 처벌받는 것과 별개로, 금전적으로 보상받을 방법은 없을까요?

패딩 점퍼를 마음대로 입은 사람에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해결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형사 처분을 위해 절도죄로 고소하시고요, 민사로는 이웃 여성이 패딩을 사용해서 얻은 이익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타인 물건인 줄 알고도 사용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택배회사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민법상 운송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택배회사가 그 물품이 고가의 패딩이라는 점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다면 패딩 가격을 완전히 배상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보상 한도는 운송장에 기재된 금액 이내로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운송장에 따로 기재된 금액이 없다면 50만원까지만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고가품을 배송할 때 반드시 금액을 기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웃 여성, 택배회사, 택배기사, 배달대행기사 중 누가 배상책임을 물게 될까요?

민사상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주체는 패딩 점퍼를 마음대로 사용한 사람입니다. 또 계약상 손해배상 책임의 주체는 택배회사입니다.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다르므로 모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이웃 여성에게는 형사상 고소를, 택배회사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게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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