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왕' 논란 윤석열에 신문들 "생각없다" "자질 문제"
보수·진보 언론 사설 일제히 비판
한국일보 주필 "역대 최악의 대선"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 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또 논란이다.
지난 1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5차 TV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 손바닥에는 '임금 왕(王)'자가 적혀 있었다.
윤 후보 측은 무속인 개입설에 “후보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신 열성 지지자 할머니가 토론회에서 힘내라고 써 줬다”고 했지만 앞선 토론회에서도 같은 문자가 손바닥에 적힌 사실이 확인돼 거짓말 논란에까지 휩싸였다.
그러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지자들이 토론이 있을 때마다 응원하는 뜻에서 손바닥에 적어준다”고 해명했지만, 국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4일자 주요 종합일간지는 한 목소리로 윤 후보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윤 전 총장이 최근 열린 당 경선 TV토론회에 세 차례나 '왕'자 손바닥으로 참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당내에서조차 '무속인이 개입했다' '주술 대선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윤 전 총장의 손바닥 '왕'자는 그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낱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없다”며 “그가 손바닥에 적힌 '왕'자의 의미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가벼운 처신도, 그런 어설픈 해명도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제1의 공복'이다. 그런 자리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백성 위에 군림하던 지배자를 뜻하는 글자를 공개석상에 나와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며 “그 '생각 없음'이야말로 과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식과 자질이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손바닥 '왕'자는 과거 정부의 '오방색' 논란까지 소환하며 가뜩이나 비웃음을 사는 우리 정치를 더욱 희화화했다”면서 “윤 전 총장은 뒤늦게 '깊이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이제라도 대통령직에 대한 '깊은 생각'을 밝히고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충고했다.
서울신문 사설도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당내 경선에 나선 후보가 손바닥의 '왕' 자를 일종의 축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난센스”라며 “'왕'의 권력을 가진 통치자를 그리며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것인지 윤 전 총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무속이든, 부적이든 그것이 개인적 종교 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최소한의 존중은 받아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역시 같은 당 경선 상대인 유승민 전 의원 캠프 대변인의 지적처럼 해명 과정에서 계속 말을 바꾸며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대선 경선 후보 손바닥의 '왕' 자는 전통 종교인 무속을 거론하기도 어려운 치기(稚氣)”라며 “그럼에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유아적 행동에 의존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면 기가 막힌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윤 전 총장 쪽 해명이 오락가락하고 상식과 맞지 않는다”며 “문제가 불거지자 처음에는 최근 5차 토론회에서만 벌어진 일인 것처럼 해명하더니 3·4차 토론회에서도 같은 글자가 손바닥에 쓰인 장면이 나오자 말을 바꿨다. '글자를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아 그냥 토론회에 나섰다'는 해명도 손바닥 글자가 토론회 때마다 나타났다 지워졌다를 반복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대통령 선거에서 무속과 관련한 구설이 자꾸 나오는 것 자체가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도 비판했다. 이어 “전근대적 통치를 상징하는 '임금 왕' 자를 손바닥에 써 반복적으로 노출한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없다”며 “윤 전 총장 쪽은 과도한 논란이라는 입장이지만, 본인은 물론 선거 과정 자체를 희화화하는 결과를 낳은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 “윤 후보 측 해명대로 지지자가 써준 글이라 하더라도 손바닥에 '왕' 자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진흙탕 싸움으로 물타기를 할 게 아니라 성실한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이충재 한국일보 주필은 4일 뉴스레터를 통해 “과거에도 선거 때면 후보들이 잘못된 무속적 믿음과 풍수 사상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용하다는 점집에는 정치인과 정당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조상 묘를 이장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진 가운데 온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에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 벌어진 것은 해프닝으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 주필은 “무속인에게 부탁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유력 대선 후보가 주술적 의미에 경도돼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며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는 말이 그리 과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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