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방울이면 다 된다더니"..희대의 사기꾼 '여자 잡스'의 추락 [그 who]
[편집자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화제의 인물, 그 후를 조명합니다.
지난 2012년 미국은 실리콘밸리 총아로 떠오른 테라노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즈에게 홀려있었다. 피 한 방울만 있으면 200여개 질병 진단이 가능한 획기적인 기기 '에디슨'을 개발한 28세(당시 나이) 미모의 여성.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바이오 유니콘 업체 CEO이자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던 홈즈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WSJ) 탐사보도 전문기자 존 캐리루가 전·현직 직원 160명을 인터뷰해 테라노스의 기술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실리콘밸리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벗겨졌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판 황우석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학교를 그만두고 19세에 창업에 뛰어 들었다. 싱가프로 게놈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2003년 약물 전달 패치 관련 특허를 출원했는데 이 때부터 홈즈는 바이오 관련 특허에 집착했다. 창업 당시 회사 이름은 '리얼타임 큐어'였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인근 쇼핑몰 지하 창고를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직후 600만달러 투자를 받은 홈즈는 2004년 회사 이름을 테라노스로 바꿨고 손 쉽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테라노스는 창업 후 10년 가까이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2년 한 방울의 피로 20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문제의 에디슨을 공개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세의 스탠퍼드대 학생이 중퇴와 창업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는 대목에서 대중들의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피 한방울이면 200여가지 질병 여부를 검사할 수 있고 비용도 종전의 10% 수준으로 저렴한 테라노스의 획기적인 기술에 미국 전체가 열광했다.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물밀듯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홈즈를 '여자 스티브 잡스'라고 불렀다.
정치인과 기업인도 경쟁적으로 테라노스와 손을 잡았다. 전설적인 외교관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홈즈의 은사였던 채닝 로버트슨 스탠퍼드대 화학공학과 교수 등이 테라노스 이사진으로 합류했다.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테라노스 연구실에 방문해 극찬하기도 했다.
테라노스가 획기적인 기기라고 했던 에디슨은 16가지 질병 외에는 진단이 불가능했다. 이는 동네 병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검사였고 나머지 200여개 질병은 기존의 대규모 의학 장비로 확인한 것이었다. 당연히 암 등 주요 질환은 전혀 진단하지 못했다. 심지어 원본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샘플을 조작하기도 했다.
2015년 10월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홈즈는 "우리는 언젠가 그 많은 질병을 검사할 기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망언을 했다. 이는 지난 2005년 줄기세포 복제기술 연구결과가 허구라고 밝혀진 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겐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이 있다"고 말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테라노스에 시험 축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테라노스의 투자자와 파트너가 모든 거래를 중단했다. 유통매장에 설치됐던 테라노스 테스트센터도 폐쇄됐다.
37세가 된 홈즈는 현재 인터넷뱅킹 사기 혐의 10건과 공모 혐의 2건 등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홈즈의 임신 등으로 3년간 미뤄졌던 재판이 지난 8월말부터 재개돼 공개진술 등이 이뤄지고 있다. 홈즈는 공개진술에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테라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라메시 발와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며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홈즈의 변호인단은 "실패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전해졌다. 법원은 13주간 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며 유죄가 확정되면 홈즈는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최근 미 경제매체 CNBC가 단독 입수한 홈즈의 수첩에는 2015년 4월 2일 '스티븐 잡스 되기(Becoming Steve Jobs)'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는 잡스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줄곧 말해 왔고, 사무실에 잡스 사진을 걸어놨을 정도로 잡스에 집착했다. 심지어 잡스의 식단과 생활방식까지 따라했다. 홈즈는 진정으로 잡스처럼 되고 싶은 꿈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끝내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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