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치료를 보라는 건지, 가슴을 보라는 건지

채제우 기자 2021. 10. 11. 22: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인 인증 없는 유튜브 '19금 콘텐츠'
조회 수 높이거나 광고 수익 노린 낯뜨거운 영상 마구 쏟아내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이모(여·58)씨는 최근 유튜브에서 ‘당신은 예쁜 여자가 입으로 주는 치킨을 참을 수 있습니까?’란 제목의 영상을 봤다. 교복을 입은 남성을 앉혀 놓고, 몸에 딱 달라붙는 야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 뒤에서 포옹을 하는 등 신체 접촉이나 유혹하는 말을 하면서 치킨을 먹이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아들에게 ‘요즘은 이런 것도 다 있다’고 떠보듯 물어봤더니, ‘저런 건 요즘 흔해’라고 답하더라”며 “교복 입은 학생을 앉혀 놓고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유튜브⋅틱톡 등 온라인 서비스들이 조회 수를 높이거나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선정적인 영상을 무차별적으로 노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10대 청소년들도 ‘성인 인증’ 없이 이런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엔 아예 선정적인 영상에 교복 차림의 학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경우도 많다.

위 사진은 지난달 한 도수치료 업체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한 장면. 이 업체는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성이 도수치료를 받는 장면을 카메라로 밀착해 찍어 논란이 일었다. 아래 사진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에게 레깅스 차림의 여성 중 ‘마음에 드는 몸매’를 고르라고 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실제로 구독자 수 182만명의 한 채널은 ‘10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는 명목으로, 교복 차림 학생들을 성(性)적인 콘텐츠에 대거 등장시키고 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의 여성이 등장해 학생들을 유혹하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여성들을 세워놓고 학생에게 고르게 하는 식이다. 다른 유튜브 채널은 교복 차림 남녀 학생들을 등장시켜 입맞춤을 유도하는 커플 게임을 시키기도 한다. 유튜브에 ‘10대’로 검색하면 이 같은 연출 영상이 다수 나타난다. 해당 영상들은 대부분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도수치료⋅요가 등 운동·건강 콘텐츠를 빙자한 노골적인 성적 영상들도 성행하고 있다. 도수치료 모습을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가슴골이 드러나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성의 몸을 도수치료사가 만지고 이를 카메라로 가까이 비추는 식이다. 이런 영상들에는 “몸매가 너무 좋다” “눈이 교정되는 것 같다” 등 성희롱성 댓글이 다수 달려있다. 게시자는 이런 영상을 올려 업체를 홍보하고 광고 수익도 얻는다. 여성 중심 커뮤니티에선 “의료를 빙자해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유해한 콘텐츠”라는 비판이 나온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은 피가 튀는 총살 장면이나 노골적인 성관계 영상이 등장하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다. 하지만 틱톡⋅인스타그램에는 이를 ‘짧은 영상’으로 편집한 소위 ‘짤’들이 연령 제한 없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인 조모(25)씨는 “요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오징어게임 속 게임을 하는데, 총으로 쏘는 시늉을 하는 등 드라마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한다”며 “이걸 어떻게 봤냐고 물어보니 부모님 넷플릭스 계정으로 몰래 봤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을 봤다고 하더라”고 했다.

문제는 유튜브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에 이 같은 콘텐츠의 시청 연령을 제한할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유튜브 영상을 게시할 때는, 게시자가 스스로 ‘만 18세 이상’ 등 시청자 연령 제한을 걸도록 돼 있다. 많이 노출될수록 수익을 얻는 구조상 게시자가 이 같은 제한을 직접 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튜브 관계자는 “부적절한 콘텐츠가 사용된 영상은 수익 창출을 막거나, 시청자 연령 제한을 설정하는 등 자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도 부모 한 명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가족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구조라 따로 자녀 계정을 만들고 일일이 시청 가능 연령, 비밀번호 등을 설정하지 않으면 유해물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공중파나 영화 등 전통 미디어들은 심의를 통해 내용을 규제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뉴미디어는 생산량이 방대해 완전한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폭력성·선정성이 강조된 유해 콘텐츠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플랫폼 업체들이 기술적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시민 사회에서도 자체적으로 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