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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⑨ "고향에서 농사나 지을걸"..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정주영의 후회

고성민 기자 입력 2021. 10. 13. 14:03 수정 2021. 10. 1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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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

1958년. 한국산(産) 첫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세워졌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로 지어진다. 고급 맨션이 유행하고 ‘건설 붐’으로 여의도·반포·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며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아파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기술까지 담긴 셈이다. [편집자주]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냥 고향에서 농사나 지을걸 괜히 서울에 와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진심으로 후회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펴낸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2015년)’에서 압구정현대아파트와 관련해 이같이 회고했다.

1978년 촉발된 ‘압구정현대 특혜분양 사건’으로 둘째 아들이자 당시 한국도시개발(現 HDC현대산업개발) 사장이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구속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체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봐, 해봤어?’라는 도전정신으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이 ‘농사나 지을걸’하며 후회한 역사가 압구정현대아파트에 담겨 있다.

우리나라를 뒤흔든 이 대형 스캔들은 압구정현대를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각인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후 건설회사의 이름을 딴 단지명이 국내에 유행처럼 번진다.

◇택지개발부터 현대건설이 맡아…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

1978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앞에서 농부가 소로 밭갈이를 하는 모습. 농부가 밭을 갈던 곳은 현재 압구정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강남구청 아카이브강남

압구정은 과거 시민들이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던 논밭이었다. 압구정현대아파트가 준공될 때에도 바로 옆에서 농부가 소로 밭을 갈던 사진이 유명하다.

압구정 택지 조성사업은 여의도와 반포처럼 한강변에 제방을 두르고 매립하는 공유수면매립사업으로 추진됐다. 여의도·반포와 달리 압구정은 민간기업인 현대건설이 택지 조성부터 아파트 분양까지 맡았다. 여의도는 서울시가 택지를 개발해 직접 아파트를 짓거나 민간에 필지를 쪼개 매각했고, 반포는 3개 건설사(삼부, 현대, 대림)가 택지를 개발했으나, 대한주택공사가 땅을 일괄 매수해 반포주공아파트를 지은 사례였다.

주인 없는 한강변을 민간이 매립해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은 상당한 특혜였다.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한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공유수면매립사업을 ‘이권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월간 ‘국토’ 1999년 3월호에 “대규모 건설회사들에 매립공사라는 것은 정말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라면서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이 없는 이권 사업”이라고 적었다. 그는 정부가 민간에 이런 사업권을 쥐여준 이유가 ‘정치자금과의 바꿔치기’였다고 설명했다. 기업에 정치자금을 요구한 대신 이권을 줬다는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 전반에 걸쳐 한강 연안은 마치 이권 쟁탈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중략) 1969년 9월 14일에 국회 제3별관에서 대통령 3선을 인정하는 개헌안이 전격 가결되었고, 그해 10월 17일에는 개헌안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또 이 개헌안에 따라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 것은 1971년 4월과 5월이었다. 아마 1969~1971년은 대통령 정치자금이 특별히 많이 필요했을 것.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월간 ‘국토’ 1999년 3월호

현대건설은 1970년 매립공사를 착공했고, 1972년말 완료했다. 총 4만8027평 택지 가운데 도로 6657평과 제방용지 1412평이 국가에 귀속됐고, 나머지 4만여평을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이곳에 압구정 현대아파트 6148가구가 들어섰다. 뒤이어 진행된 잠실지구도 5개 건설사(현대, 대림, 극동, 삼부, 동아)가 공유수면매립사업으로 택지를 조성하고, 도로 등을 제외한 대부분 필지를 아파트로 분양한 사례였다.

현대건설은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 다목적댐 등 1960년대 ‘2대 토목공사’로 불리는 사업을 펼친 건설의 주역이었다. 이런 현대건설이 주택 사업에 뛰어드는 데 대해 정주영 회장은 부정적 반응을 보여, 당시 부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득했다고 한다. 현대건설이 압구정현대(1976년)를 짓기 직전 이촌현대아파트(1974년)를 지을 당시 상황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이렇게 기억했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1995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정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제안했다. “장차 아파트 사업이 유망할 것 같습니다. 현대건설도 아파트 사업으로 업종을 넓혀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 사장은 이 무슨 쩨쩨한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뭐, 아파트? 우리가 아파트를 짓는다고? 에이, 아파트는 무슨 놈의 아파트. 우리가 아파트 사업을 하면 사람들이 웃지 않겠나?”

◇초대형 비리 스캔들… 정주영 “농사나 지을걸”

압구정현대는 1976년 준공된 1·2차부터 1987년 준공된 현대14차까지 11년에 걸쳐 총 6148가구로 준공됐다. 강남은 허허벌판이고 강북 선호가 짙던 시기라 4차까지 미분양이었다. “정주영 사장도 압구정현대에 살 것”이라는 말이 돌았는데도 수요가 없었다고 한다. 5차부턴 현대건설 주택사업부가 독립한 한국도시개발이 공급했다. 그런데 1977년 5차를 100% 사원용으로 승인받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언론인 등에 분양한 사실이 밝혀지며 이 특혜분양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든다.

검찰 수사 결과, 5차 사원용 아파트 952가구 중 291가구만 사원들에게 분양되고 600여가구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에게 돌아간 사실이 밝혀졌다. 정몽구 회장은 뇌물 혐의 등으로 수사 초기 75일간 구금됐다. 수년이 지난 1981년 4월 대법원은 당시 압구정현대에 프리미엄(웃돈)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정몽구 회장의 뇌물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건축허가 이전에 공사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건축법 위반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내렸다.

정주영 회장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서전에서 “분양이 잘 안 돼 애먹다가 희망자가 있다는 게 반가웠고,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는 원하는 사람한테 분양가를 받고 파는 게 사업이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면서 “한국 사람들의 인정이 다 그렇듯이 집이든 물건이든 어차피 팔 바에는 아는 사람한테 팔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던 것”이라고 했다. 또 “어느 누구에게도 단돈 10만원도 할인해준 사실이 없었다”면서 “5년 분할 상환조건으로 팔았던 아파트가 갑작스러운 가격 폭등으로 인해 굉장한 특혜분양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도시개발(HDC현대산업개발)은 해체 직전까지 내몰렸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사정보좌관에게 사정해 해체를 막았다는 일화가 있다. 건설부 장관이 ‘각하 지시사항’이라며 한국도시개발의 해체를 지시했으나, 이 전 대통령이 사정보좌관실에 건의해 해체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같이 회고했다.

건설부에서 나와 자동차에 오르면서 나는 정주영 회장에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라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논리에 맞질 않아요. 사정보좌관실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중략) 회사에 돌아와 기자회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정보좌관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각하께 말씀드렸더니 기업을 해체할 필요는 없다고 방침을 바꾸셨습니다.’

◇건설사명 붙은 아파트 유행돼… 80억 최고가

지난 9월 12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현대 전경. /고성민 기자

이 특혜분양 스캔들은 역설적으로 압구정현대를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특혜분양 사건 이후 압구정현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함께 들어선 백화점과 명문학교, 행정기관 등은 압구정현대의 사회적 위상을 더 높였다. 1981년 1월 9일자 조선일보는 ‘계속될 압구정동 아파트지역 인기’ 기사에서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 5일 추첨을 끝낸 현대 9차분은 추첨률도 높았을 뿐 아니라 추첨 당일부터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현대 9차분에 몰려든 청약자는 35평형이 432가구 분양에 6880명이 몰려 16대 1, 50평형은 168가구 분양에 2944명이 신청, 17.5대 1의 경쟁을 보였다. 이 중 6회 이상 낙첨한 ‘0순위자’ 만도 분양가구의 3배가량이나 몰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압구정현대 이후 국내에선 건설사명을 단지명에 붙이는 사례가 유행처럼 번진다. 2000년대 들어 HDC현대산업개발은 단지명을 ‘압구정 아이파크’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며 무산된 적도 있다. 주민들은 ‘압구정현대’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도 압구정 현대는 최고급 주거지로 유명하다. 기업인과 정계 고위직, 유명 연예인 등이 이 아파트를 보유했거나 보유 중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김진태 전 검찰총장, 문무일 전 검찰총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고승범 금융위원장, 유재석, 강호동, 차태현, 김희애, 이순재씨 등이다. 특히 부동산 상승세와 재건축 기대감을 타고 최근 집값도 고공행진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압구정현대는 7차 전용면적 245㎡(80평형)가 지난 4월 80억원에 거래됐다. 3.3㎡(1평)당 1억원이다.

압구정현대 주민이자 한송온라인리걸앤컨설팅센터 대표인 김승열(60) 변호사는 “단지 내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서 푸름을 느낄 수 있고 강변에 접해 고수부지에서 운동하기 편하다”면서 “강남과 강북 시내로의 진입이 편리하고, 단지 내에는 의외로 전통시장이 있어 특색이 있고 단지내 상가는 외국의 상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가 오래돼 보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대부분 가구가 리노베이션을 했기 때문에 각 아파트 내 실내는 쾌적하다”면서 “다만 재건축은 되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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