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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요? 간식이 전부"..중소기업 다녀 '중송'합니다"

이종화 입력 2021. 10. 13. 16:57 수정 2021. 10. 1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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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직원들의 현실과 애환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중소기업은 다녀봤자 아무 희망이 없어요. 문제나 불만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의견을 낼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변화나 발전이 없습니다. 무능한 상사는 덤이죠."

서울 소재 정보기술(IT) 계열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여성 직원 A씨가 갖고 있는 '일터'로서의 중소기업에 대한 생각이다. A씨는 올해 초 큰 충격을 받았다. SK하이닉스의 한 4년 차 직원이 이석희 대표이사에게 공개 이메일로 성과급 산정 방식 공개를 요구했던 사건 때문이다. 이메일엔 경쟁사 대비 성과급이 절반도 안 되는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결국 논란이 커졌고 이런 움직임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다른 대기업 직원들에게도 확대됐다. 결국 기업들은 MZ세대 직원들에게 백기투항하며 임직원 보상 체계 보완에 나섰다.

A씨는 "당당하게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면서도 너무 부러웠다"며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나로선 상상도 못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은 조직이 작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면 바로 추적당할 수밖에 없다"며 "임금과 관련된 불만은커녕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을 때도 가해자가 사장님과 친해 2차 가해가 두려워 어디에 얘기도 못 했다"고 호소했다.

A씨와 같은 중소기업 직원들은 대기업 직원들을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사회적 관심을 덜 받아 문제 제기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 어렵다. 또 중소기업은 조직이 작고 문제 제기에 대한 소통 창구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사건 이후 상여금, 성과급 제도를 개편했다는 대기업의 소식은 무수히 들려왔지만 중소기업에는 '딴 세상' 얘기였다. 오히려 밀려드는 박탈감으로 인해 그런 뉴스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는 직원들도 부지기수다. 대기업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성과급 논란'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로 이어져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소외감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에서 지출한 상여금·성과급은 대기업의 25.9% 수준에 불과했다.

한 소재 개발 관련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남성 직원 B씨는 "사실 대기업 직원들이 불만을 느꼈던 성과급이 내가 받는 연봉보다 많다"며 "이젠 너무 익숙해서 박탈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경영 실적이 좋아 조금이라도 성과급을 받았지만 올해는 기대도 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D 프린팅 기기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C씨는 "성과급은 아직 받은 적이 없고 상여금의 경우엔 백화점 상품권 10만원 정도만 받는 게 현실"이라며 "야근을 해도 수당은 당연히 없고 4시간 이상 일해야 식비만 간신히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제공하는 가장 큰 복지는 간식"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직원 간 복지 격차도 크다. 이는 백신 휴가를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주로 백신 접종 다음날까지 휴가를 보장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선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 하거나 그마저도 못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소기업 직원 D씨는 "뉴스에서 백신 휴가가 지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은근히 기대했지만 결국 대기업만의 얘기였다"며 "아파도 회사에서 아파야 한다고 하면서, 백신을 맞은 당일에도 개인 연차조차 못 쓰게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제조업 중소기업 직원 E씨도 "개인 연차를 사용하면 백신 휴가를 쓸 수 있었지만 눈치가 보여 결국 못 썼다"며 "아플 때 제대로 쉬고 회복된 상태로 잘 일할 수 있는 대기업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물론 젊은 중소기업 직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일터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이들은 중소기업이 일을 배우고 업무 역량을 쌓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호소한다. 열심히 일을 해서 경쟁력을 갖춰 이직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란 의미다. 중소기업 직원들은 배울 것 없는 무능한 상사, 직무와 무관한 업무,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업 지원 등 여러 이유를 들었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F씨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 출시된 지 3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계산기로 숫자를 더해 합계를 구하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이런 상사들은 보고자료부터 대본까지 모두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도대체 그들로부터 뭘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 중간관리자는 대부분 대기업에서 내쳐진 사람이거나 회사에 다닌 기간이 길어 사장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라며 "경력이 길다고 항상 강조하지만 배울 것도 없고 존중하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A씨는 "프로그램 개발자로 입사했지만 내 주 업무는 다른 팀 컴퓨터를 고치거나 불만 전화를 받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이라며 "인력을 추가할 생각은 없고 있는 사람들을 돌려 막기해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고안하라고 지시해 열심히 준비했지만 돌아온 답은 실패하면 책임질 거냐는 말뿐이었다"며 "결국 초기 자본이나 인력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갖춘 시스템과 체계도 중소기업 직원들이 부러워하는 점이다. B씨는 "중소기업엔 교육 체계가 아예 없고 직무교육을 활용하라고 말은 하면서 막상 수강을 신청하면 눈치만 준다"며 "이런저런 혜택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이런 걸 정리해주는 게시판 등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물론 중소기업에 다니는 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조직이 작은 만큼 회사 내부에서 인정받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B씨는 "현재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지만 원하는 직무를 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며 "일이 많아도 더 많이 배우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실력을 키워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다는 꿈도 중소기업 직장인만이 꿀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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