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한 편의 영화 같은 '대장동' 주인공들의 각자도생

이상언 입력 2021. 10.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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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대장동 '대박' 사건 주인공들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 전 기자. 지난 12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나이쯤 되니까 사람이 사는 게 말이야, 오해는 풀고, 상처는 치료하고, 감정은 씻으면 돼. 근데 이 돈은 말이야, 그렇지가 않더라고.”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김 선생(백윤식 분)이 배신자 최창혁(박신양 분)에게 던진 대사입니다. 결국 돈 때문에 범죄자들의 동업이 파국으로 향하는 결말을 예고합니다.

두 사람은 영화 초반에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50개짜리라고? 영화배우 몇 명이 필요한데?” “주인공 5명. 뭐… 기술자는 우리 휘발유형이 해줄 거고… IQ 뭐 그렇다 치고, EQ 조금 되는 애들로.” 그렇게 해서 은행을 터는 위조ㆍ사기 등의 ‘기술자’ 5명이 모입니다. 범죄는 성공했는데, 사이좋게 돈을 나눠 갖고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 엔딩은 아닙니다.

영화 ‘도둑들’도 비슷합니다. ‘범죄의 재구성’과 감독(최동훈)이 같습니다. 마카오의 호텔에 있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보석을 훔치기 위해 다방면의 범죄 전문가들이 모여 범행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서로 뒤통수를 쳐 모두가 위험에 빠집니다. 영화 중간에 이런 대사들이 나옵니다. “몰랐나? 원래 인격이라는 게 지갑에서 나오는 법이지.” “아이고∼, 씨X 도둑놈들하고 일하려니까 불안 불안하네.”

집단 범죄의 모의ㆍ진행ㆍ결말을 상세히 묘사하는 ‘케이퍼(caper) 무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깔끔하게 각자의 몫을 챙기고 평화롭게 헤어지는 게 있고, ‘범죄의 재구성’이나 ‘도둑들’처럼 내분과 배신으로 주연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있습니다.

영화 ‘대장동’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해피엔딩 쪽으로 흘렀습니다. 주인공들이 최소 수백억원씩 조용히 벌고 즐겁에 여생을 즐기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주목하면서 시나리오 급변침이 이뤄졌습니다. 그 바람에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렸던 형, 동생들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설계’를 한 회계사는 녹취록을 들고 검찰로 갔습니다. 자금 조달을 맡았던 변호사는 미국에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관청을 움직이는 일을 맡았던 전직 기자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가더라도 짧게 가기 위해 모두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전직 기자는 회계사를 향해 “동업자 저승사자”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과거에도 동업자를 감옥에 보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에 있는 변호사는 전직 기자를 겨냥해 “그가 진짜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한동안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에 사업 계획을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개의 ‘케이퍼 무비’에는 범죄를 추적하는 경찰관이나 검사가 등장합니다. 무능하거나 부패해서 범죄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치며 주연급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대장동’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연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 전 기자를 중앙일보가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오늘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습니다.

■ [단독]김만배 "정영학은 동업자 저승사자…감방 많이 보냈다"

「 검찰이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56)씨에 대해 1100억원대 배임과 55억원 횡령,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52·구속)에 대한 700억원 뇌물공여 약속과 5억원 뇌물공여, 곽상도(62) 무소속 의원에 대한 50억원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2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출신인 김씨는 구속영장 청구 당일인 12일 밤 중앙일보와 만나 단독 인터뷰를 하며 배임·횡령·뇌물공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이 객관적인 자금흐름 추적을 통한 입증도 하지 않은 채 주주끼리 이익 배분을 놓고 다투며 허위·과장 발언을 한 걸 녹음한 정영학 회계사(52·천화동인 5호 소유주)의 녹취록만을 근거로 영장을 청구했다”라고 하면서다. 특히 정 회계사를 겨냥해 “정영학은 동업자 저승사자”라며 “옛날부터 관여한 사업마다 동업자를 감방에 보냈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후배 기자였던 배성준(52·천화동인 7호 소유주)씨의 소개로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던 남욱 변호사(48·천화동인 4호 소유주), 정 회계사를 만났다”며 “돈 욕심 때문이 아니라 후배들 부탁에 앞장섰는데 후회가 많다”고 하기도 했다.

“유동규 2014년 ‘몰래 위례 지분 가졌냐’ 남욱·정영학 뺨 때렸다”

우선 김씨는 “2000년대 후반 개발 소문이 퍼질 때 땅을 좀 샀다”라며 대장동 개발에 참여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 그러다 2012년 대장동 민영개발을 추진하던 구사업자인 남욱·정영학을 후배 소개로 만났고, 2014년 7월 화천대유의 전신인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경제지 법조기자 신분이었는데 어떻게 부동산 개발에 참여했나.

2012년 (당시 방송사 법조팀장이던) 배성준이 남욱과 정영학을 소개했다. 남욱과 외가쪽 친척이라더라. 나중에 이들의 권유로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 지분도 인수했다. 2014년 7월경이다.

위례신도시 개발에도 관여했나.

아니다. 남욱과 정영학이 위례에 참여한 것도 뒤늦게 알았다. 2014년 3~4월 신문사에서 야근하고 있는데 남욱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술집으로 불러서 갔더니 잠시 뒤 이미 술에 취한 유동규가 들어와 ‘정영학, 이 XX야 도와달라고 했더니 지분을 가지냐’라며 뺨을 때리고 패더라. 이후 남욱도 한 대인가 맞았다. 공사가 위례신도시 사업 공모를 하면서 이들의 자문을 받았는데, 몰래 지분을 넣은 걸 나중에 알고 ‘배신했다’며 때린 거다. 이후 유동규가 갑자기 자기 왼쪽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져서 119 불러 응급실에 보내고 난리가 났다.

대장동 민관합동개발은 그럼 위례신도시를 모델로 했나.

아니다. 2010년 시작한 의왕·백운 지구가 모델이었다. 백운지구는 리스크 관리가 안 돼서 적자가 나다가 최근에야 이익이 나고 있다. 위례는 건설사가 주도했는데 성남시 입장에선 건설사 비용을 빼면 이익이 적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대장동은 민간사업자를 금융 중심으로 갔다. 1830억원을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우선 배당했고, 1공단 공원과 제반 시설까지 완공해 기부채납하면 6000억원 가까이 순이익을 얻은 거다. 이재명 시장 말대로 ‘단군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이다.

“대장동 개발하며 이재명 한 번도 안 만나…나와 ‘케미’ 안 맞다”

김씨 설명은 남욱 변호사가 JTBC와 인터뷰에서 “배씨 소개로 2011년 말경 만났다”고 한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당시 배씨가 구 사업자들에게 김씨를 두고 ‘이재명 시장 마크맨’이라고 소개했다”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선 부인했다. 배씨는 2019년 머니투데이로 이직했다가 지난달 대장동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김씨와 함께 퇴사했다.

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배씨가 남욱 등 사업자들에게 ‘이재명 마크맨’이라고 소개했다는데.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법조기자인데 이재명에 대해 뭘 아느냐.

2014년 7월 법조팀장일 때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인터뷰했다.

당시 회사에 성남 라인 기자가 없다고 해서 내가 한 거다. 변호사 출신 시장이 재선했고 성남시가 모라토리엄 졸업을 한 게 계기였다. 화천대유는 인터뷰 7개월 뒤 설립됐다. (※2014년 7월 28일 자 인터뷰 “법률가에서 정치가로…정치하겠다 마음먹은 날짜도 기억”)

그 뒤에는 이 시장을 만난 적은 없나.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나. 나를 만나주나.

대장동 개발이 이재명 시장의 주요 공약이었지 않나.

진짜 한 번도 안 만났다. 혹시 우연히 공석에서 섞여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적으로 둘이나 셋이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재명 시장과 그렇게 ‘케미’가 맞는 사람이 아니다.

‘정영학 녹취록’에 “천화동인 1호 절반은 ‘그분 것’”이 나온다고 한다.

반대로 내가 물어보자. 만일 이재명 시장이 우리를 봐주려고 했으면 단순하게 민영개발을 하게 해서 떼돈 벌도록 하고 진짜 뇌물을 받으면 되지, 왜 어렵게 민관 합동 개발을 했겠나.

김씨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뿐만 아니라 측근인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 김용 전 경기도 대변인과 “밥 한 번 먹어본 적 없다”라고 했다.

두 사람과 안면 정도는 있다는 건가.

성남시 근무 때 가면 일부러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지. 경기도에 간 다음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다. (※김용 전 대변인은 2010년 7월부터 성남시의회 의원 등으로 일하다 2018년 8월 경기도 대변인 자리로 옮겼고 2019년 11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씨와 김 전 대변인, 정 전 실장,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대장동 개발사업 구조를 짰다”라며 “도원결의를 맺고 끝까지 비밀을 지키자고 결의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지난해 7월 대법원의 이재명 지사의 선거법 사건 무죄 선고와 관련해 청탁했다는 의혹에 대해 “무슨 일개 법조팀장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를 움직일 수 있냐”며 “대한민국의 가장 근간인 사법부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또 “말 같지 않은 소리로 논리 자체가 아주 후지다”라고 덧붙였다.

“곽상도 아들 병명 알면 퇴직금 등 50억 상식이라 생각될 것”

그는 서울중앙지검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청구한 1100억원대 배임 혐의에 “이게 어떻게 배임이 되겠느냐”라고 반박했다. 그는 배임 혐의와 유 전 본부장에 대한 705억원(700억원 약속 포함)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해 “민간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없애 달라고 청탁한 일도 없고 700억을 약속하거나 5억원을 준 적 없다”라고 부인했다.

김씨는 성균관대 선배인 곽상도 의원 아들에게 퇴직금으로 50억원을 준 것과 관련해 “곽 의원 아들은 내 아들 같은 조카”라며 길게 해명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구속영장 혐의


곽 의원 아들에게 50억원이나 왜 줬나.

곽 의원 아들 병채는 내 아들 같은 조카다. 그래서 회사 일을 하다 병을 얻은 게 너무 안쓰러웠다. 나중에 병명을 알면 상식에 부합할 거다. 내 혐의를 벗을 목적으로 곽 의원 아들의 구체적인 병명을 밝히고 싶진 않다. 조카를 지켜주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앞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곽 의원 아들이 산업재해를 당해 퇴직금과 상여금 등으로 50억원을 준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간 수익 규모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주장도 했다. 화천대유 주주들이 지난해 연말 기준 배당금 4040억원뿐만 아니라 아파트 분양 수익 3000억원가량을 추가로 거뒀다는 분석에 대해 “실제 우리 몫은 세전 420억원가량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유동규 전 본부장 등에게 뇌물 700억원을 약속하고 ‘50억 클럽’에 거론된 정·관계 인사들에게 350억원을 전달하는 등의 일이 가능하냐는 게 김씨 반박이다.

또 “화천대유가 배당수익 4040억원 외에 대장동 15개 필지 중 5개 필지를 수의계약으로 매입해 직접 아파트 분양 사업을 벌여 3035억원의 분양이익을 거뒀다”는 지적에 대해 김씨는 “3개 필지는 투자자들 몫”이라고 반박했다. “화천대유 투자자인 킨앤파트너스가 2개 필지(A1·A2) 수익 800억~900억원을 가져갔고 엠에스비티가 1개 필지(A11) 수익 400억원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킨앤파트너스는 화천대유에 450여억원을 대여한 뒤 이 가운데 350여억원을 투자금으로 변경한 법인인데,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가 킨앤파트너스에 400억원을 빌려줬다. 엠에스비티는 화천대유에 60억원을 대여하고 이후 투자금 130여억원으로 전환한 법인인데, 영화배우 박중훈씨 측이 엠에스비티에 260여억원을 빌려줬다.

10월 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 도시개발구역 전경. 연합뉴스

“돈 욕심 때문 아냐…후배 부탁받고 앞장섰는데 후회 많다”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후회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돈 욕심 때문에 대장동 사업을 한 건 아니다”라며 “배성준 등 후배들이 맨날 ‘우리 이름으로 하면 안 되니 앞장서 달라’고 부탁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후회가 많다”라고 밝혔다.

김민중·이영근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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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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