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청년들 목숨이 낙엽처럼"..김용균 전과 후, 얼마나 달라졌나?

이경원 기자 입력 2021. 10. 14. 10:06 수정 2021. 10. 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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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전남 여수에서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닷속을 잠수해 요트를 청소하는 현장 실습 중이었습니다. 12kg짜리 납덩이가 달린 허리 벨트를 풀지 못해 밑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홍 군은 잠수 자격증도 없었고, 물을 무서워해 수영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실습 계획서에는 홍 군의 임무가 승선 보조, 고객 응대 서비스로 적혀 있었습니다. 잠수 작업은 실습 대상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사고 나흘 뒤 업체가 운항을 재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지난달 27일에는 인천에서 아파트 외벽을 청소하던 20대 남성이 1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첫 출근 날이었습니다. 안전 장비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때마침 사고 전날에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한 대학에서는 "누군가 50억 원을 챙겨가는 동안 청년들은 첫 출근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경제난에 시달려 고독사를 당했다"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2019년 12월,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우리 사회는 분노했고 법도 손질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계속되는 걸 보면, 과연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는지 질문이 생깁니다. 김용균 씨 사망 이전과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업재해 통계'를 통해 팩트체크 했습니다.


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희생된 고(故) 김용균.

고(故)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 씨는 도급 업체 직원이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논란이 일었습니다. 참사를 계기로 안전 규제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같은 달 27일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위험 작업 떠넘기기에 큰 제약을 둔 법이 아니라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2018년 12월 김 씨의 희생과 법 제정 시간을 감안해, 통계 기준점은 2019년 1월 1일로 잡았습니다. 최근 공개된 산업재해 통계는 2021년 6월까지 입니다. 2019년 1월 1월을 기준으로 최근 통계인 지난 6월까지 2년 6개월, 2016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2년 6개월, 동일한 기간을 기준으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노동자들의 통계를 비교했습니다.

먼저 사망자 전체 통계 비교입니다. 업무로 인한 질병 사망은 제외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추락이나 끼임, 부딪힘과 같은 이유로 갑자기 사망한 경우만 따로 집계했습니다.


김용균 이전 2년 6개월은 2,403명, 이후 2년 6개월은 2,211명이 사망했습니다. 하루로 계산하면, 김용균 이전에는 하루에 2.6명이, 이후에는 하루에 2.4명이 사망했습니다. 김용균 이후는 이전에 비해 8%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왔습니다.

사망 원인 별로도 살폈습니다.


김용균 전과 후, 사망 원인은 떨어짐, 끼임, 부딪힘 순으로 거의 같습니다. 떨어짐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건설 현장에 추락 사고가 많은 게 그 이유로 분석됐습니다. 추락 사망은 김용균 이전 927명, 이후 885명이 사망했습니다. 하루 한 명 꼴이 추락으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세대 별로도 따져봤습니다. 


고령일수록 사망 사고가 많았습니다. 주로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슈가 되곤 하지만, 고령 층이 안전 사고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5년 간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추이도 정리했습니다.


어쨌든 김용균 이후는 이전에 비해 사망자가 8% 정도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다친 사람'을 기준으로도 비교했는데, 오히려 증가한 걸로 나왔습니다.


사망은 8% 정도 감소했지만, 다친 사람은 9.7% 정도 늘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유리창 청소를 하다 숨진 청년을 추모하며 놓은 꽃다발.

여수에서 사망한 홍정운 군이나 인천 아파트에서 숨진 20대 남성 같이, 청년을 기준으로도 분석했습니다. 10대와 20대 청년을 기준으로 죽거나 다친 경우입니다.


김용균 이후 청년의 사망은 이전에 비해 12%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전체 감소율이 8% 정도니,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치는 청년들은 되레 많아졌습니다. 17%나 증가했습니다. 다친 사람들의 전체 증가율 9.7%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청년들의 사망 사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해서 노동 조건이 좋아지고 있다고 볼 수 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여수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홍정운 군 추모객들.

이번 팩트체크는 저희 사실은팀이 분석한 통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 드리자는 취지입니다. 이 통계를 통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기자는 "김용균 이후 사망율 감소하고 있다"며 낙관적인 문장을 쓸 수 있고, 또 어떤 기자는 "사망율 감소했지만 부상은 되레 증가하고 있다"라며 비관적인 분석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안을 보는 망원경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용균 이전이든 이후든, 마치 데칼코마니같은 모양으로, -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작가 김훈의 문장처럼 - 이틀에 5명 꼴로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용균 이후 청년 노동자의 현실에 공감과 지지를 얻었고 넘치든 부족하든 제도도 정비됐지만, 우리 사회가 해결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일 겁니다. 내년 큰 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뉴스가 선거 이슈로 빨려 들어가는 요즘, 이런 죽음들에 대해 정치가 좀 더 관심 갖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은팀이 국제노동기구(ILO)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에서 제출받은 '인구 10만 명당 재해 사고 사망률', 이른바 '치명률'을 살펴봤더니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4~5명이었습니다. 국가 별로 집계 방식이 달라 순위를 정확히 매기는 건 어렵지만, 한국과 비슷하거나 많은 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콜롬비아, 멕시코, 터키, 미국 정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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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권민선, 송해연)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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