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판매 1위' 500만원 전기차의 비밀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입력 2021. 10. 14. 11:19 수정 2021. 10.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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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올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의 성격을 보면 전기차 볼륨마켓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일부 예측해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초저가와 고급차로의 시장 양극화, 그리고 전기차 전 부문에서 일어날 가격 경쟁입니다.

중국 전기차 판매 1위는 울링자동차의 ‘홍광 미니 EV’였는데요. 1~8월 누적으로 22만2000대나 팔렸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전체 전기차 판매는 164만대였습니다. 홍광 미니 EV 한 개 차종이 전체의 14%를 차지했을만큼 대단한 인기였죠. 4인승이면서도 압도적으로 저렴한게 장점입니다. 기본형은 530만원(2만8800위안)이고요. 최고급형도 720만원(3만8800위안)에 불과합니다.

초저가 전기차 '홍광 미니 EV'. 4인승이고 최고시속 100km, 한번 충전하면 120km를 달릴 수 있는 기본형이 530만원(2만8800위안), 편의·안전장비를 추가한 모델이 600만원(3만2800위안),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70km로 늘어난 최고급형이 720만원(3만8800위안)이다. /울링자동차

같은 기간에 테슬라 ‘모델3′(9만2631대)와 ‘모델Y’(5만9900대)가 각각 중국 전기차 판매 2·3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중국 상하이공장에서 현지 생산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경쟁이 매우 치열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프리미엄급인 이 두 차종이 톱3 안에 전부 들었다는 것은 전기차 시장이 당분간 양극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성능·고가격·첨단이거나, 아니면 초저가·가성비인 것이죠. 둘 중 하나여야 볼륨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도저도 아닌 경우엔 성공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홍광 미니 EV, 올해 1~8월 중국에서 22만2000대 팔려 전기차 판매 1위

홍광 미니 EV는 이미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를 이기고 판매 1위에 오른 전기차’라는 타이틀로 꽤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홍광 미니 EV와 테슬라 차량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격이 다르거든요. 홍광 미니 EV는 시내 위주로 타는 경차이고, 모델3·Y는 더 크고 더 빠르고 1회 충전 주행거리도 훨씬 더 길죠. 차량 가격도 테슬라가 10배쯤 비쌉니다. 따라서 판매가격으로 비교하면, 홍광 미니 EV를 10대쯤 팔아야 테슬라 1대 파는 것과 비슷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겠죠. 게다가 홍광 미니 EV는 기존의 내연기관차를 완벽히 대체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이 차를 타고 장거리 고속도로 여행을 가는 이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면 홍광 미니 EV가 시장이나 산업에서 갖는 의미가 적은 것일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차량이 중국에서 이토록 많이 팔렸다는 것은 앞으로 전기차의 볼륨 확대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자동차전문잡지 닛케이오토모티브가 10월호에서 홍광 미니 EV의 인기 비결을 분석했는데요. 이 매체가 꼽은 비결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저렴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어필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값이 가격 파괴 수준이죠. 4인승에 최고시속 100km, 한번 충전하면 120km를 달리는 기본형이 530만원(2만8800위안), 편의·안전장비를 추가한 중간 트림이 600만원(3만2800위안),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70km로 늘어난 최고급 모델이 720만원(3만8800위안)입니다.

가격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한국에도 초소형 전기차가 있지만 시판가격이 1500만원 전후.(보조금을 받으면 1000만원 전후로 구입 가능)이고요. 게다가 2인승이죠. 홍광 미니 EV의 경우 한국으로 수입될 예정은 아직 없지만, 만약 수입된다면 편의·안전 사양 등을 강화해 값이 올라가긴 할텐데요. 그래도 시판가격 1000만원 이내, 실 구입가격 500만원 이내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광 미니 EV는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2917×1493×1621mm입니다. 한국의 경차보다 작습니다. 일본 경차와 비교하면, 길이는 짧지만 폭이 20mm 더 넓기 때문에 좌우 공간은 의외로 그리 비좁지 않은 편입니다.

홍광 미니 EV의 실내. 외형의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2917×1493×1621mm로, 국내 경차보다도 훨씬 작지만, 4인승을 구현했다. 일본 경차보다 차폭은 20mm 넓다. /울링자동차

◇저렴하고, 운전 쉽고, 깨끗한 이미지로 90년대생 여성층에 어필

홍광 미니 EV의 또다른 성공 요인은 처음부터 젊은층을 타깃으로 했다는 것, 초소형차임에도 4인승을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울링자동차는 홍광 미니 EV를 내놓기 전에 바오준E100, E200이라는 초저가 EV를 내놓았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울링자동차는 그 이유가 2인승이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시행 착오를 겪고 새로 내놓은 것이 바로 ‘최저가의 4인승 전기차’라는 컨셉의 홍광 미니 EV였다는 것이죠.

이 차량은 젊은층 가운데에서도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워낙 작기 때문에 운전이 능숙하지 않은 여성도 좁은 골목에서 운전하거나 주차하는게 쉽다는게 어필했습니다. 애초에 시내 주행에 특화된 차이기 때문에 최고 시속은 높이지 않아도 됐습니다. 시속 100km면 충분했던거죠. 내연기관차에 비해 조용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준 것도 주효했습니다. 가정용 콘센트로 어디서나 충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초저가이면서도 4명이 탈 수 있고, 운전이 쉽고, 차가 조용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어필되면서 대박이 난 것이죠. 울링자동차도 이렇게까지 폭발적으로 팔릴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생산능력을 계속 늘리고 있지만 주문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지금까지는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여성 구매자는10~20%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홍광 미니 EV는 젊은 여성층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울링자동차에 따르면, 올해 3 월 시점에서 홍광 미니 EV 구입자는1990년 이후 출생자가 전체의 72%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 여성 비율은 60%를 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벤츠의 중국 내 구입자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인데요. 고급차와 저가차 양쪽에서 여성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중국 자동차 소비의 주류가 아직은 남자이지만, 앞으로 고가·저가 양쪽 모두에서 여성 고객이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겠죠.

홍광 미니 EV의 판매에서도 또하나 눈여겨 볼 점은 지방·소도시 위주 판매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이 차종의 지역별 판매비율을 보면 이른바 시골이라 불리는 3급 이하 작은 도시가 63%를 차지하고, 상하이·베이징·선전·광저우 등 1급 도시는 3% 미만입니다. 고소득층이 많은 대도시보다는 지방·소도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그 지역에서도 가처분 소득이 적은 젊은층 위주로 많이 팔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광 미니 EV의 운전석과 대시보드. /autohome.com.cn

◇'최저가 4인승 전기차’에 집중, 이외의 것은 과감히 생략해 원가 절감

그럼 홍광 미니 EV는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값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최저가 4인승 전기차라는 컨셉에만 집중하고, 불필요하다 싶은 것은 과감히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차체 강도나 충돌 안전성은 일반 자동차만큼 높지 않습니다. 시내주행용으로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를 타거나 고속으로 달리지 않으니, 안전장비를 기본화하지 않고 옵션으로 뺐습니다. 기본형에는 에어백·에어컨도 빠져 있습니다. 고속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차음재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플랫폼은 이전 모델인 E100이나 E200과 공유해 저비용화를 추구했습니다. 블루투스, 스마트폰 연계, 내비게이션 음성조작을 쓰려면 윗급을 사야 합니다. 최고등급이라고 해도 720만원이긴 하지만, 기본형보다는 190만원 더 비쌉니다.

차량 판매에서 이익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신에너지차(NEV) 규제 시스템에서 크레디트를 팔아 돈을 버는 전략도 저가격화에 기여했습니다. 중국도 유럽과 비슷하게 자동차회사가 일정 비율의 전기차를 팔도록 강제하고 있는데요. 비율을 못 맞추면 벌금을 내거나 다른 회사로부터 전기차 크레디트를 사와야 합니다.

홍광 미니 EV가 충돌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허술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울링자동차의 정식 명칭은 상하이·GM·울링자동차, 영어로는 SGMW(SAIC·GM·Wuling Automobile)인데요. 2002년 설립돼 19년이 된 회사이고, 상하이자동차가 50.1%, 미국 GM이 44%, 울링자동차가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는 3사 합작회사입니다. 중국 최대의 경차 회사로 연간 100만대 이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GM과 협력해 오랫동안 경차를 대량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에, 저렴하지만 내구성 높은 경차를 만드는 노하우가 축적돼 있습니다.

홍광 미니 EV의 뒷모습. /울링자동차

◇중국 1~9월 전기차 판매 182만대... 내수경쟁과 규모의 경제로 원가절감 능력 계속 올라

한편 중국의 지난 9월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월보다 33%, 전년 동월보다 202% 증가한 33만 4000대였습니다. 1~9월 누적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203% 증가한 181만 8000대였습니다. 전체 신차에서 전기차 비중은 올해 1~9월 누적으로 11%에 이르렀습니다. 중국판 테슬라라 불리는 두 업체, 샤오펑과 니오도 지난 8월 기준으로 각각 7214대와 5880대를 판매해 전년 8월 대비 각각 172%, 48% 성장했습니다.

현재 중국은 전기차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단계로 진입 중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전기차가 나와 치열히 경쟁하면서 가격도 점차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아직까지는 보조금 덕분에 더 많이 팔리는 시장이지만, 몇 년 안에 보조금 없이도 판매가 가능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홍광 미니 EV이외에도 창안자동차의 ‘Benni’, 창청자동차의 ‘ORA’, 치루이자동차의 eQ 등의 초저가 전기차도 인기입니다. 특히 창청자동차는 여성 소비자들을 대거 끌어들여 2025년에 전기차 300만대를 판매할 계획입니다.

중국 전기차의 성장은 수출 확대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미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2020년에 22만2000대로, 2018년 대비 50% 성장했습니다. BYD, 니오 등은 이미 노르웨이로의 수출을 개시했고, 울링자동차도 홍광 미니 EV의 유럽 버전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13%에서 2020년 21%로 늘었습니다. 특히 유럽용의 수출 대수가 전년 대비 110% 증가한 7만4000대가 됐습니다.

중국 전기차 메이커는 유럽 만이 아니라 동남아 시장도 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0년 2월 GM태국 공장 매수를 발표한 창청자동차는 2024년까지 총 9개 차종의 전기차를 투입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에서의 판매 확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국 전기차, 중국산 대비 원가경쟁력 확보 못하면 전기차 확대전략에 차질 빚을 수도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해 유럽과 아태 지역으로 수출하는 양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2021년 1~8월 누적 수출 대수는 10만대, 연말까지 20만대에 이를 전망입니다. 상하이 공장이 세계적인 수출 거점이 되면, 중국 내 전기차 공급망도 함께 성장할 것이고, 중국 전기차 경쟁력 전체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중국산 테슬라를 시작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 전기차’의 선진시장 공략도 가속화하겠지요.

더 위협적인 것은 홍광 미니 EV 같은 가격파괴형 전기차, 규모의 경제와 치열한 내수시장 싸움을 통해 축적된 원가경쟁력을 무기로 한 중국 전기차가 한국에 대량으로 들어오게 될 경우입니다.

한국 국내 메이커에서도 경형 전기차를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판다면 좋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현재 나와 있는 경차들은 내연기관 전용인데다, 연비마저 경차급에 맞지 않을만큼 나쁜 상황이죠. 적당한 가격의 경형 전기차가 국내 시장에도 나온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되고, 소비자에게도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시장도 고액의 보조금을 지급해 전기차 시장을 키우고는 있지만, 그래봤자 연간 몇만대를 소화할 수준입니다. 앞으로 전기차가 연간 10만대, 20만대 수준으로 팔리게 된다면 보조금이 기능하기 어려워지겠죠.

이 때 중요한 것이 보조금 없이도 팔릴 수 있는 진짜 가격경쟁력일텐데요. 이 부분에서 충분히 대비가 가능할 것인지, 전기차 시장이 국내외적으로 점점 커지게 될 때, 한국산 전기차가 제조 원가로 승부할 수 있을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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