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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이 없네"..판결문에 드러난 조재범 성범죄 유죄 정황

강영훈 입력 2021. 10. 14. 16:47 수정 2021. 10. 1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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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앞두고 피고인 요구 거절하자 "그렇게 해봐라" 협박
선고에 심석희 피해 진술 뒷받침할 문자 등 주요 증거로 작용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3년여간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1·2심에서 전부 유죄를 선고받은 배경에는 그가 심 선수에게 보낸 협박성 문자메시지 등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재범 [연합뉴스 자료사진]

14일 연합뉴스가 확인한 이 사건 1심 판결문을 보면 조씨는 심 선수가 만 17세, 즉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8월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인 2017년 12월까지 총 29차례에 걸쳐 성폭행, 강제추행, 협박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조씨는 2014년 8월 29일 밤 심 선수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을 알고 스킨십 여부 등을 자세히 물어보면서 화를 내고, 집으로 부른 뒤 주먹과 발로 온몸을 때렸다.

이어 조씨는 심 선수를 무릎 꿇게 만들고 뺨을 여러 차례 때리면서 "네가 (선수 생활 지속이) 절실하다면 나와 (성관계) 하자"면서 강제추행을 했다.

심 선수는 훈련일지 등을 토대로 당시 캐나다 전지 훈련을 다녀온 지 일주일가량 지난 시점에서 처음으로 조씨에게 피해를 봤다면서 당시 머리부터 세게 맞아 벽에 부딪힌 상황 등 당시의 사정을 자세하게 진술했다.

심 선수는 이를 비롯해 3년간의 피해 사실에 관해 세계선수권 등 대회 일정, 국가대표 공식 훈련 일정, 출입국 기록, 그리고 카카오톡 및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참고해 진술을 구체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은 심 선수가 날짜와 장소, 조씨의 행위, 당시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해 명확히 구분해 진술한 만큼, 신빙성을 의심할 별다른 사정이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두 사람 간의 문자메시지 등 증거를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포렌식 결과를 보면 조씨는 2015년 12월 12일 밤 심 선수에게 "너 오면 쌤(선생님)한테 너 자신을 내놔라", 2016년 1월 2일 "절실함이 없네 역시. 넌 너 자신을 버릴 준비가 안 되어 있네. (중략) 쌤은 버릴 수 있는데"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법원은 이에 대해 통상적인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로 보기 어렵고, 일부 문자메시지는 문언 자체만으로도 조씨가 심 선수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음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또 조씨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포렌식 결과에 관해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다가 검찰에 가서는 단순한 장난이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는데, 이는 평균인의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조씨는 1심에서 "범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혐의 자체를 부인하다가 2심에서 돌연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을 바꿔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아울러 법원은 심 선수가 조씨를 고소하게 된 경위에 관해서도 살펴봤다.

조씨는 평창 올림픽 직전인 2017년 12월 7일 텔레그램으로 "내가 원한다면 시즌·비시즌 따지지 말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심 선수는 "제 몸을 포기하면 올림픽 때 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거절했다. 이에 조씨는 "그럼 그렇게 해 봐. 나도 공정하게 해볼 테니"라고 협박했다.

조씨는 2018년 1월 16일 훈련 중 심 선수를 무차별 폭행했고, 견디지 못한 심 선수는 선수촌을 빠져나와 조씨를 상습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조씨 측은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같은 해 12월에서야 뒤늦게 심 선수가 성범죄 피해 사실을 추가로 고소했다며 그 경위에 의구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민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심 선수가 성범죄 피해 내용이 대중에 알려질 가능성을 우려해 주저하다가 나중에 추가 고소를 결심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고소 경위라고 판단했다.

이밖에 법원은 조씨가 심 선수의 휴대전화를 검열하는 등 감시하고,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컴퓨터로 확인하고 있었다는 등의 여러 증인의 증언, 심 선수가 2015∼2016년께 '성희롱 성추행 (중략) 이중인격 인격장애…난 못 버텨'라고 쓴 메모 등 관련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죄 판결을 했다.

1심인 수원지법은 지난 1월 조씨에게 징역 10년 6월을, 2심인 수원고법은 지난달 형량을 높여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심석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건 피해자인 심 선수는 최근 국가대표 동료를 비하하고, 평창올림픽 경기 도중 고의로 최민정 선수와 충돌을 시도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국가대표팀에서 분리 조처됐다.

이번 논란은 조씨 측이 지난 7월 2심 법원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 내용이 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심 선수는 "미성숙한 태도와 언행으로 인해 많은 분께 실망과 상처를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고의 충돌과 관련해서는 "의도적으로 넘어진 것처럼 서술한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은 심 선수의 최근 논란 문자를 근거로 조씨의 성범죄 사건 판결 또한 잘못 내려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선고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의 고소가 다른 선수와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으나, 해당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는 제출한 바 없다"며 "피해자가 무고했다면 선수 생명은 물론이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감수하며 고소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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