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에 40명 구매대기"..티켓값 30만원에도 2030 꽂혔다

이한나 입력 2021. 10. 14. 17:51 수정 2021. 10. 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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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투자 급증..국내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현장
미술품, 취등록세·보유세 없고
생존작가 작품은 양도세도 면제
작년 키아프 못열고 해외도 막혀
보복소비 올해 행사로 몰려들어
전시장 곳곳 고가작품들 '완판'
돈 있어도 구매 못해 발동동
일각선 "묻지마 투자 과열 우려"

◆ 팽창하는 미술시장 ◆

1세대 수집가들이 독일 디갤러리에서 작품 설명을 듣는 모습. [이충우 기자]
"문 열자마자 뛰어왔는데 작품이 팔렸다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 13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개막 직후 가나아트 전시 부스에서는 한 40대 남성이 큐레이터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팝아트 작가 김선우 '도도새' 연작을 사려고 오랜 시간 대기줄을 서고 입장하자마자 달려왔는데 작품이 이미 팔렸다는 소식에 강하게 항의해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화랑 부스 곳곳에서 VVIP 티켓을 사서 뛰어왔는데도 작품을 살 수 없었다며 항의하는 수집가들과 갈등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 변호사 수집가도 "정상화 작품을 사려고 왔는데 벌써 다 팔렸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젊은 관람객들과 외국인이 미술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한 화랑 큐레이터는 "올해 처음으로 VVIP제도를 시작했는데 기존에 자주 보던 수집가분들이 아니라 낯선 분들이 많이 나타났다"며 "온라인으로 작품을 선공개해 미리 감상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다수 작품이 이미 판매되는 바람에 현장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젊은 관람객들과 외국인이 미술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초보 수집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키아프 전시장 도면에서 어떤 입구, 어떤 경로로 가야 특정 작가의 전속 갤러리를 최단 시간에 갈 수 있다는 안내문까지 올라올 정도로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컬린이(컬렉터+어린이)'란 별칭으로 통하는 초보 수집가들은 "30만원이나 주고 VVIP 티켓을 사서 오래 대기하다 들어왔는데 선판매된 것이 정상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내년에 세계 3대 아트페어인 영국 프리즈와 공동 개최를 앞두고 올해 단독으로 열린 키아프에서 최근 명품과 함께 '보복 소비' 대상으로 떠오른 미술품 투자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는 17일까지 코엑스 A, B홀에서 열리는 제20회 키아프에는 전 세계 10개국 170여 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국외 정상급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아트바젤 홍콩을 연상시킬 정도로 '눈 호강'을 했다는 평가도 줄을 이었다.올해 최고가 출품작은 국제갤러리가 전시중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추상화(1985년작)인 '랜드스케이프 위드 레드 스카이'로 무려 140억원이 넘는다.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1943년작)도 480만달러(58억원)에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독일 유명 갤러리 스프루스 마거스의 이지영 디렉터는 "유럽에서도 막 주목받기 시작해 경매시장은 물론 아시아에서 소개된 적도 없는 젊은 작가들을 한국 수집가들이 바로 알아보고 작품을 구매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본사도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은 한국 수집가들을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처음 키아프에 참여한 독일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는 개막 전에 이미 전시작 절반을 팔아 화제를 모았다. 첫날 폐장 시간인 저녁 9시까지 20~40대 젊은 수집가들이 작품 구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힙합 음악 스타일과 닮은 그림들이 가득한 갤러리스탠 부스 벽면은 개막 후 1시간도 채 안돼 판매를 알리는 '빨간 스티커'로 가득 찼다. 한 작품에는 40명 넘게 대기자가 붙었다는 전언이다. 김태현 갤러리스탠 대표는 "본인에게 익숙한 광고 장면이나 소비문화를 활용한 동년배 작가들 위주로 일종의 팬덤 문화가 형성돼 한정판 스니커즈 사듯 빨리 결정한다"며 "평소 고객들 관심도를 파악해 부스의 3배 규모 작품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날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과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등 기존 수집가들도 독일 디갤러리 등에서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엘케 모어 디갤러리 이사는 "개장 30분도 안 돼서 1억5000만원이 넘는 칼 헤닝 페더슨 작품이 팔릴 줄 몰랐다"며 빨간 스티커가 붙은 자리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배우 이병헌·이민정 부부, 가수 이승기, 배우 황신혜·류준열, 방송인 노홍철 등 연예계 인사들도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미술품 시장 열기는 MZ세대로 저변이 확대되고,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플랫폼 활성화 등과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MZ세대는 취미에 집착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성향이 강하다.

미술시장의 새로운 큰손으로 등장한 MZ세대는 직업군도 기업가,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금융·IT(정보통신) 업계 고액 연봉자, 공무원, 평범한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이례적인 미술 열풍에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이해도 없는 '무조건 투자'는 작가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2007년 호황기 때 비싸게 팔렸던 젊은 작가 작품이 금융위기 이후 급락해 회복되지 않았던 전례도 있어 너무 과열되는 분위기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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