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다, 조국 그렇게 셀 줄.." 윤석열 결정적 순간 셋 [조은산이 말한다]

김태호 2021. 10. 14. 1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국민의힘 경선주자 4人의 3가지 결정적 순간들

「 지난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 4명이 결정됐습니다. 중앙일보는 논객 '조은산'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아, 국민의힘 경선 주자들의 오늘을 있게 한 3가지 결정적 순간을 살펴봅니다.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순으로 싣습니다.

지난 12일 중앙일보 상암사옥을 찾은 논객 '조은산'은 국민의힘 경선주자 윤석열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왜 회자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직함 생략)을 대선 주자로 만든 첫 번째 결정적 순간은 8년 전인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입니다.

이날 댓글수사 팀장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은 국정 감사장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직속 상관들을 앞에 앉혀두고 “검사장님을 모시고 사건을 계속 끌고 가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수사 외압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하고)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폭탄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또 그는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등 오늘날 윤석열 하면 회자되는 말들을 남겼습니다.

2013년 10월 21일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은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법조계에서 윤석열은 ‘요직을 두루 거친 잘 나가는 특수통 검사’, ‘수사 잘하는 검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국정 감사 발언은 ‘검사 윤석열’을 전 국민에게 알린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습니다. 윤석열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정작 윤석열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거 같습니다. 지난 7월 저(조은산)를 만났을 때 윤석열은 “왜 이 말이 그렇게 회자했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수사하는 검사로서 답답함을 토로했던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면서.
쓴소리의 대가였을까요. 그는 얼마 뒤 ‘항명’, ‘재산신고 누락’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윤석열은 약 2년간 대전고검과 대구고검을 전전하며 검사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절치부심하던 중 윤석열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16년 최순실(본명·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습니다.

#2 보수의 ‘심장’에 다시 칼을 겨누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검단장은 윤석열을 수사팀장으로 불렀습니다. 윤석열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를 주도했습니다. 특검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은 2017년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20일 만입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특검수사팀. 윤석열은 수사팀장을 맡았다

두 달 뒤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며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당선 열흘 만에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습니다. 다섯 기수를 건너뛴 파격 인사였죠. 당시 청와대는 “(윤석열이)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와 공소 유지를 위한 적임자”라고 인사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검찰은 국정농단 수사를 비롯해 국정원 특활비 상납 수사를 벌여 이명박 전 대통령을 뇌물혐의로 구속했습니다.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낸 수사를 주도한 윤석열은 ‘보수의 역적’, ‘진보의 영웅’이란 엇갈린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 홍준표는 최근 이런 윤석열을 두고 “보수 궤멸의 원흉”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도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지난 7월 대구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 수사에 섭섭한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송구한 부분”이라고 했죠. 얼마 뒤엔 “(특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다”라고도 했습니다. 윤석열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윤석열은 “공소 유지를 해야 하는 검사 입장에선 피의자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이건, 일반 형사범이건 인간적인 유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검사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입장도 비슷했습니다. 2017년 10월 국감에서 한 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재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윤석열은 사석에서 그 의원에게 “고인을 굳이 재수사를 할 필요가 있나. 노무현을 좋아하는 국민이 많은데, 그 심정을 헤아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답니다. 박근혜도 그렇고 노무현도 그렇고. 윤석열은 그저 검사로서 피의자에게 느낀 일종의 연민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3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라”
윤석열의 거침없는 수사에 화답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혔습니다. 서울지검장 임명 두 달 만이죠.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이란 드라마 주연으로 윤석열을 낙점하며 그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세로 수사하라”고 주문했습니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지 두 달 만이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주문을 충실히 따른 걸까요. 윤석열은 검찰총장이 되자마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윤석열은 조 전 장관을 비롯해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 자녀 입시비리의혹, 사모펀드 불법투자 의혹, 조국 동생이 연루된 웅동학원 채용비리 의혹 등을 전 방위적으로 수사했습니다. 윤석열은 어떤 생각으로 조국 수사를 했을까요.

윤석열은 “조국 수사는 정의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고, 상식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수사에 부당한 압력이 들어올 때 정의가 힘을 발휘한다”라고 했습니다. “정권 핵심을 수사한 건데 두렵지 않았냐”고 제가 물으니 윤석열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검사가 수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그러나 그건 몰랐다. 조국이 그렇게 셀 줄은”
상황이 꼬일 대로 꼬였지만,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윤석열도 계속 수사했죠. 장관 임명 16일 만에 사상 초유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은 ‘조국수호’, ‘조국사퇴’로 두 동강 났습니다. 조국은 장관 임명 3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수사를 이어나갔습니다.

2019년 9월 검찰은 사상 초유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결국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조국사태’는 ‘추윤갈등’으로 ‘시즌 2’를 맞이했습니다. 장관이 된 추미애는 검찰 인사와 수사지휘권으로 윤석열의 힘을 뺐죠. “검찰총장이 제(법무부 장관) 명을 거역했다”는 추미애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윤석열 사이에 갈등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에 추 전 장관은 검찰총장 직무정지와 정직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 ‘윤석열’이란 이름이 나왔습니다. 얼마 뒤 윤석열은 현직 검찰총장으론 이례적으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통령은 ‘정국 혼란’을 사과했습니다. 추 전 장관도 장관에서 물러났죠. 그러나 여권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으로 윤석열의 검찰을 더욱 압박했습니다. 결국 윤석열도 검찰총장에서 물러났고, 지난 6월,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윤석열의 대권도전은 스스로 개척한 길이 아닙니다. 물론 권력의 압박을 온몸으로 맞섰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권력의 반작용으로 정치판에 왔다는 건, 그의 한계라면 한계입니다.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검증도 덜 됐습니다. ‘처가리스크’와 ‘고발 사주’ 논란을 비롯해 각종 실언과 ‘왕(王)자’, 천공 스승 논란도 바꿔 말하면, 검증이 덜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그가 비정치인 출신 반기문과 안철수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란 우려도 그래서 나옵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윤석열이 검찰총장 출신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