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없어져야" 尹 계산인가 실언인가..보수 정통 논란 확산

현일훈 2021. 10. 1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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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계산된 정치적 발언일까, 아니면 '1일 1사고'를 하나 더 추가한 걸까.

13일 제주도를 방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내 경쟁자들의 공격을 비판하면서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맞다"고 한 걸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는 지난 8일 2차 예비경선 후 “크고 작은 실수는 전적으로 제 부족함 때문”이라며 정권교체를 위한 원팀을 강조했던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만약 계산된 발언이라면 “보수 지지층에게 보수 개혁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당심(黨心) 비중이 50%로 높아진 본경선 룰을 감안한 의도적 발언이란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발언 다음날인 14일 국민의힘 경기도당 당직자들을 만나 “민주당이 병들어서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인데, 맞서 싸워야 될 야당도 과거 잘못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도 투쟁성을 많이 잃지 않았나. 그래서 제가 ‘정말 이럴 거면 문 닫아야 한다’고 말씀 드린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도 “대선 재수생인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오랜 기간 당을 이끌었다”며 “보수 위기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는 동시에 당 개혁의 새바람으로 윤석열을 각인시키기 위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도당위원회에서 열리는 '경기도당 주요당직자 간담회'에 참석, 당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전 총장은 이어 경기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선 “나는 무도한 정권에 외롭게 싸우며 핍박 받았다. 정치 선배들이 ‘당에 들어오라’고 해서 왔더니, 그때부터 상대 진영이 만든 프레임을 가져다 ‘비리가 많아서 어렵다’고 공격한다. 이건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도 힘을 합쳐야 않겠나,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고 인내하자”고 했다.

전날 논란의 발언이 나온 장소가 캠프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이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윤 전 총장 측은 “열성 지지자를 만난 자리에서 더 강한 톤으로 발언한 것일 뿐이다. 일각에서 의심하는 재창당 플랜 같은 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이런 줄 알고 입당을 늦추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없으면 당이 경선 치르기에 맥이 빠지고, 정권교체도 안 되는 것처럼 해서 데려오더니, 그때부터 계속 때려만 대면 윤 전 총장 입장에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며 “윤 전 총장도 너무 순진하기만 한데 정치를 알아야 한다. 내가 4월 재보선 직후 말없이 당을 떠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엔 "윤 전 총장이 말 실수를 해 놓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경쟁 후보와 캠프의 공세에 불만이 많던 차에 지지자를 만나자 쌓였던 불만이 그대로 폭발했다는 시각이다. 오랫동안 국민의힘에 몸 담았던 인사는 "감정 조절에 실패해 놓고 뒤늦게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라며 정치인 윤석열의 자질까지 거론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KBS 제주방송국에서 대선 경선 후보자 합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논란은 일회성 공방을 넘어 보수 정통성을 둘러싼 큰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내엔 윤 전 총장을 ‘외부인’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한데다 특히 그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지휘했다는 점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윤 전 총장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이번 논란을 계기로 폭발할 가능성도 부인키 어렵다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이 윤 전 총장을 두고 “당에 온 지 석 달된 사람. 문재인 대통령과 한편이 돼 보수궤멸한 선봉장이지만 나는 이 당을 26년간 지켜온 사람”이라고 부각한 것이나, 유승민 전 의원이 “문재인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한 덕분에 벼락출세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전 총장 측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 일부 후보들이 당과 보수의 주인인 것처럼 말씀하시며 거센 내부 공격을 하는데, 지난 2년간 마치 ‘1인 야당’ 역할을 하며 투쟁했던 것은 윤 전 총장”이라고 반박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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