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화천대유 김만배 구속영장 기각..'대장동 로비' 수사 빨간불

이효상 기자 2021. 10. 14. 23: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일부를 로비에 사용한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14일 기각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가 구속을 피하면서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이 추가 물증 확보 없이 정영학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록에 지나치게 기대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문성관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김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큰 반면에,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은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5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750억원의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 등으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4년부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 관여해 공사에 수천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도 있다.

검찰은 이날 심사에서 김씨의 혐의 사실과 구속 필요성을 설명했다. 천화동인 5호의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과 자술서,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한 정민용 변호사의 자술서 등이 근거 자료로 제시됐다. 해당 녹취록 등에는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몫으로 700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검찰은 이를 토대로 김씨가 건넨 뇌물 액수를 750억원으로 특정해 영장에 기재했다. 돈을 주고 받기로 했다는 약속만으로도 법리상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약속된 700억원 중 5억원이 실제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됐고, 50억원은 무소속 곽상도 의원의 아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됐다고 보고 있다.

김씨 측은 심사에서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700억원 약정설’은 “돈을 주기로 약속한 적이 없다”고 했고, 곽 의원 아들의 퇴직금이 뇌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사업 구조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이해 부족 상태에서 성급하게 배임으로 단정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김씨의 뇌물공여 등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 비춰보면 인신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심사에서 검찰은 김씨의 범죄사실에 대해 기존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 당초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현금 1억원과 수표 4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날은 현금으로만 5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그간 김씨 측은 현금 1억원은 모르는 일이고 수표 4억원은 유 전 본부장이 아니라 천화동인 4호의 소유주 남욱 변호사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해왔다. 동시에 정 회계사가 녹음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수표로 전달했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녹취록이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김씨 측의 주장은 수사과정에서 일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이 최근 확보한 남 변호사의 회계장부에는 남 변호사가 김씨에게 수표 4억원을 받아 사무실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이 담겼다. 이에 검찰도 이날 심사에서 뇌물죄 범죄사실을 수정한 것이다. 정 회계사의 녹취록 이외에 뇌물공여를 뒷받침할 물증을 검찰이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검찰은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취 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하려다 재판장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파일의 증거 능력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재판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김씨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대장동 로비 의혹 수사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김씨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뛰어든 민간사업자 세력과 정·관계 인사들의 연결고리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로비 의혹 모두에서 ‘키맨’으로 꼽힌다. 김씨는 700억원 약정 의혹 이외에 법조계 인사들과 성남지역 정계 인사들에 도합 350억원의 뇌물을 건넨 의혹도 받고 있다. 로비 의혹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 회계사의 녹취록과 관련자들의 자금 흐름 파악, 김씨의 진술을 교차 대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김씨가 구속을 피하면서 수사도 차질을 빚게 됐다. 수사의 단초가 된 정 회계사 녹취록의 신빙성도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민간사업자에 이익을 몰아주고 공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의 골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수사팀을 20명 규모까지 확대하고도 인신 구속 단계의 혐의 소명에도 실패하면서 검찰의 수사력과 수사 의지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한 발 늦은 수사 착수, 유 전 본부장 휴대전화 압수수색 실패 등으로 수사 의지를 의심받은 바 있다.

김씨 변호인 측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자숙하고 자중하고 겸손한 자세로 수사에 임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