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에 휘둘린 심상정, 그러니 버니 샌더스가 되지 못합니다[박가분이 저격한다]

박가분 입력 2021. 10. 15. 00:01 수정 2021. 10. 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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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의원님, 정의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거가 쉽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그동안 정의당 지지율이 주저앉은 것도 잘 아실 겁니다. 대선후보로 돌아온 당신에게 정의당 추락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년 반 전 당 대표를 내려놓은 사람에게 왜 책임을 묻느냐고 억울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의 과정을 보면 누구나 수긍할 겁니다. 떠날 때는 입당한 지 몇 달 안 된 청년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앉혀놓고, 돌아올 때는 본선 경쟁력을 내세웠습니다. 아프게 떠나지도, 그렇다고 아프게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이 지지자들이 이탈하는 모습을 괴로운 심정으로 봐야 했던 당원들이 당신의 당선을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청년은 왜 진보와 멀어졌습니까


후보님은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습자본주의 사회의 불공정·불평등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진보정당은 청년의 정당이었습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큰 미래세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의당은 어떻습니까. 두 명의 청년 비례의원과 청년 정의당까지 있는데 2030 지지율은 왜 오르지 않을까요. 솔직히 지금 정의당 청년들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만약 당신만 2030 지지를 많이 받는 정치인이라면 충분했을 겁니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가 2020년 1월 18세 청소년 입당식에서 입당 청소년들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지난 촛불 대선국면 때 심상정은 2030, 그중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지지도 꽤 많이 받던 정치인이었습니다. 당시 "청년들이 나만 만나면 부둥켜안고 운다"고 자랑(?)삼아 말했었죠. 그 후 5년, 2030의 지지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왜 오늘의 청년들은 당신과 정의당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은 이 시대 청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평범한 청년’과 소통하지 않으며, 당신의 정치에 ‘평범한 청년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보님은 요사이 2017년 TV 토론회에서 했던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1분 발언을 내세우곤 합니다. 그 말이 당시 감동적으로 회자됐던 건 성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당신의 말은 너무 어렵습니다. 후보 수락 연설문을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대관절 ‘젠더 선진국’은 무엇이며, ‘비인간 생명체의 공존’이란 말은 뭔가요. 어느새 정의당을 잠식한 이런 외계어들을 아르바이트에 쫓기는 평범한 청년들이 이해할까요?

말은 삶을 반영합니다. 평범한 말을 쓰지 않는 정치가 어떻게 평범한 삶을 대변합니까. 당신은 자신의 과거 "외눈박이"라는 발언이 차별적이라며 사과하기도 했지요. 장혜영 의원과 추미애 의원 사이에 끼여 ‘아바타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했습니다. 정의당의 청년 정치인들을 살펴봅시다. 하나같이 어려운 말을 쓰고, 바른말 고운 말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청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청년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의 거칠고 투박한 말은 세상에 대한 분노, 변화에 대한 갈망, 열정의 표현입니다. 그런 이들이 말조심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정당을 자신의 대변자로 느낄까요. 정작 그들에게 지금의 정의당은 청년정당이 아니라 청년들도 극혐하는 ‘젊은 꼰대’의 정당일 뿐입니다.
말만 그렇습니까. 당신과 정의당 정치는 엘리트주의에 찌들어 있습니다. 대중을 가르치려 듭니다. 명절 대목이 되면 정의당 정치인들은 ‘채식 명절’을 권장하더군요. 정작 아르바이트로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들은 명절에 친구들과 만나 냉동 삼겹살을 굽습니다. 강남 부모들이 자기 아들 정자 수 감소를 막겠다고 비싼 친환경 유정란을 사 먹이는 지금의 생태 자본주의 세태 속에서, 서민을 위한다는 정당이 채식을 권하는 한가한 ‘취향의 정치’나 하며 마치 문명의 대전환을 깨달은 선각자인 것처럼 구는 것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자유·욕망 무시하는 공포의 정치


무엇보다 정의당의 정치에는 자유와 욕망이 없습니다. 현실의 청년들은 돈도 잘 벌고 싶고, 여건이 되면 결혼도 하고 싶고, 내 집 마련도 원합니다. 위험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웹 소설을 쓰며 살아도 빈곤과 빚의 악순환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원합니다. 대단한 욕심이 아닌 소박한 바람입니다. 당신은 그런 청년들의 박탈감을 대변하겠다 자처합니다만 그런 당신과 정의당의 정치에는 정작 자유도 욕망도 없습니다. 대신 공포만 있습니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가 2019년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2030 여성을 언급할 때면 당신은 오직 그들의 공포만을 이야기합니다. 귀갓길 성폭력의 위험만을 말합니다. 그들의 일상이 오직 폭력의 피해로만 가득한 것처럼 말합니다. 그 반대편에는 마치 일상이 폭력의 가해로만 가득 찬 사람이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청년을 대변한다는 당신의 말에서 청춘남녀가 서로의 문제를 공감하고 대안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청년을 서로 겁먹게 하고 갈라치는 게 진정 진보다운 겁니까.
오늘날 진보정당은 ‘찐 청년’을 불편해합니다. 노골적 세습사회에 질린 나머지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능력주의만이라도 제대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저들의 욕망을 불편해합니다. 당신과 정의당은 이들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는지요. ‘모두가 개천에서 용이 될 필요 없다’고 말했다가 ‘타고난 천룡인끼리 다 해 먹고 우린 개천에서 살라는 거냐’고 청년에게 비아냥을 샀던 조국 전 장관의 모습과 지금 정의당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 당의 청년 정치인 중에 컵라면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난 구의역 김군의 얼굴을 닮은 이가 누가 있습니까. 정의당이야말로 586 진보 엘리트가 예뻐하는 엘리트 청년만 키우지 않았나요.

그래서 당신과 정의당이 청년에게 다가갈 때는 엄숙주의자가 될 때뿐입니다. 노동 현장에서 참혹하게 희생된 이들 앞에 서서 "참담하다"고 말할 때만 청년이 불려 나옵니다. 살아있고 구체적 욕망을 가진 평범한 청년과 어울리고, 그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넓혀 나가는 정치가 없습니다. 심상정은 20대 시절 노동운동을 위해 구로공단에 간 명문대 여대생이었습니다. 결연한 마음으로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그도 수배 시절에 청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휴일이면 함께 고고장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지요. 정작 지금 정의당에 청년 노동자들과 뒹굴고 노는 문화가 있나요.
오랜만에 당신의 SNS에 들어가 봤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B급 문화를 흉내 낸 ‘짤’들이 넘쳐나더군요. 어떻게 하면 MZ세대 눈에 재밌어 보일까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인스타그램 ‘남친 샷’ 대참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하면 2030과 가까워집니까. 털장갑 하나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버니 샌더스는 살아있는 화석 같은 패션으로 청년들을 웃겼습니다. 언제 버니 할배가 젊은 여성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를 하며 인기를 끌었나요. 또래는 또래가 설득하는 것이고, 어른은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애들 흉내 말고 어른의 역할을 해야


이제 대선 후보가 되셨습니다. 5년 전 투표에 열심이던 청년은 가장 소극적 유권자가 됐습니다. 진보도 보수도 찍기 싫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승리는 이들을 어떻게 투표장에 가게 하는지에 달려 있겠지요. 정치인들은 자주 자신이 지지를 받았던 이유를 망각하곤 합니다.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좋아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십시오. 대단한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 불세출의 정치 '리'론가가 아니라, 삶 자체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엘리트 정치, 계몽정치, 취향의 정치에서 벗어나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과 민중들에게 자유와 평등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십시오. 그들 다수의 지지를 받으십시오. 그래야 당신 말대로 불평등의 한 귀퉁이라도 부수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심상정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진보정치 전체에게도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박가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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