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동생한테만 아낌없이 주는 엄마, 원망스러워요"

한겨레 2021. 10.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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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차별적 대우 상심한 이 많아
허심탄회한 대화 시도 필요
질투·원망보다 '나'에 집중해야
게티이미지뱅크

Q. 중산층 집안의 두 딸 중 언니인 저는 어릴 때부터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공부도 곧잘 해서 특별한 과외를 받은 것도 아니라서요. 엄마는 늘 ‘너를 키울 때 돈이 거의 안 들었다’며 ‘결혼할 때 한몫 챙겨주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유학을 가지 않았지만 동생은 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해서 학비도 많이 나갔고, 저와 달리 부모님의 경제적인 투자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제가 자라서 결혼할 때 엄마는 서울의 싼 아파트 전세금 정도의 돈을 주면 어떻겠냐 하셨어요. 큰 배려에 감사하며 도움을 받았습니다. 동생이 결혼할 때도 비슷한 제안을 하셨지만 아파트 전셋값은 몇배 차이가 났습니다. 엄마는 외국에서 혼자 공부한 동생이 안쓰럽다며 시시때때로 돈을 주셨어요. 저는 결혼 뒤 몇년 만에 이혼을 했고 위자료 없이 제가 벌어 집을 샀죠. 엄마는 손이 가지 않는 자식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동생에게는 집을 사는 데 보태라며 목돈을 추가로 빌려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동생의 집값이 크게 올라 좋은 가격에 집을 팔게 되었어요. 동생은 빌린 돈을 갚기는커녕 더 비싼 집으로 이사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자산이 느는 것이 제 눈에도 보일 정도예요. 속상하고 억울한데 저 또한 엄마에게 크게 받은 사람이고, 이 속상함을 갖고 계속 엄마 동생과 잘 지내자니 자신이 없습니다. 왠지 억울한 언니

A. 사연자분은 어려서부터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착실한 딸로 살았을 것으로 보여요. 그에 비해 동생분은 부모가 더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 결과적으로 ‘더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 것 같고요. 또한 속상하다, 억울하다는 감정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자분은 경제적인 지원에 대해서 주로 서술을 하셨지만, 어쩌면 부모님의 관심 같은 정서적인 부분도 차별당하고 있다고 느끼셨을 수 있어요. 묵묵히 착실히 잘 지내는 아이라고 해서 서운함이 없는 것이 아닌데, 안타깝게도 어떤 부모는 그것을 놓치기도 하지요. 사실 부모의 차별적인 대우로 인해 상심하고 서운함과 분노를 맘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습니다. 부모도 그저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라서, 매사에 완벽한 결정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부모님의 결정에 대해서 한번은 헤아려볼 필요가 있어요. 물만 줘도 쑥쑥 자라는 화초에는 물만 주고, 처음부터 비실비실하는 화초에 고급 영양제를 꽂아주는 것이 부모님의 방식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요. 두 딸에게 기계적으로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적인 상태에 이르도록 차등을 두어 서포트하는 것이 그분들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면 부모님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알아서 잘하는 큰딸에게 쓰는 돈이 꼭 아까워서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 부분을 깊이 헤아리다 보면 속상한 마음이 좀 가라앉을 것이에요.

그래도 억울하다면, 저라면 한번쯤 허심탄회하게 말을 해보려고 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오히려 관심도 지원도 적은 것 같아서 서운했다고요. 부모님이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제라도 나에게도 이런 지원을 좀 해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볼 수도 있죠. 하지만 속상한 마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신 뒤에 대화를 나눠 보세요. 해묵은 감정적인 숙제가 한꺼번에 올라올 수 있고, 그러면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거든요. 도저히 자신이 없다면, 굳이 ‘잘 지낸다’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마시고, 최소한의 도리만 하며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삼으시고요.

다만 저는 한 가지를 꼭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사연자분은 나 자신의 어떤 면을 주로 바라보고 있나요? 과외를 받지 않고도 공부를 곧잘 하고, 혼자 돈을 벌어 집을 살 만큼 능력 있는 나의 모습을 충분히 봐주고 살고 있으신가요? 동생에 비해 지원도 못 받고, 동생보다 현금도 덜 받고, 지금도 동생보다 재산이 적은 사람으로만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원망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내가 가진 힘과 노력에 대해서 제대로 봐준 적도 없는 것은 아닐까요? 사연자분, 지금까지 충분히 수고하셨고, 충분히 애쓰셨어요. 이제는 비교하고 억울해하는 마음보다, 진심으로 나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그 마음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지요. 나를 진심으로 돌아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억울한 나로 살아가는 것보다, 나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나로 사는 것이 어떨까요?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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