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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돌보다 손 못쓰는데 "산재 아니다"..산재 연구결과도 무시

김기찬 입력 2021. 10. 15. 10:18 수정 2021. 10. 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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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노위, 근로복지공단 산재 판정 질타
공단, 질병 인과관계 연구 결과도 무시
산재 판정의 비과학적 심사 과정 뭇매
잘못된 산재 판정으로 근로자만 고통
눈물 닦는 간호사 연합뉴스

간호사 A씨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손가락과 척추 등에 무리가 가해져 손가락을 쓸 수 없는 등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퇴사했다. 그리고 산재승인 신청을 했다. 하지만 최초 산재신청을 심사한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기각했다. "팀장은 그렇게 업무량이 과중하지 않아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어이없는 해석을 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 본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자 병원 측이 합의를 하자고 나왔다. 이 병원은 그동안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산재로 인정되면 한꺼번에 산재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등 부담을 져야 한다. 하지만 A씨는 거부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 본부도 산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질병과 관련, 산업안전공단 산하 연구소에서는 "관련 질병이 간호사에게 생길 수 있는 산업재해"라는 연구결과를 수차례 내놨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질병의 인과관계까지 부정한 셈이다. 결국 A씨는 고용노동부 산하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으로 갈 예정이다. 산재 신청을 하고 1년이 넘게 지났지만 A씨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A씨처럼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산재 판정으로 고통받는 근로자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가 아니라고 판정한 뒤 재심과 행정소송을 통해 산재로 인정된 경우가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3년 동안 1만건에 육박한다"고 질타했다.

이 기간 동안 근로복지공단 지사의 결정에 불복해 공단 본사에서 다시 심사를 청구해 심사한 건수가 3만6977건이었다. 이 가운데 지사의 결정이 공단 본부에서 번복돼 산재로 인정되는 등 기존 결정이 취소된 게 15.7%인 5811건에 달했다.
또 공단 본부의 재심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다시 심사를 신청한 건수는 올 8월 말까지 2만1413건이었다. 이중 결과가 뒤바뀐 건수는 2017건(14%)이나 됐다.

행정소송으로 간 경우도 많았다. 법원의 판단을 구한 건수가 1만126건에 달했다. 이중 기존 결정이 취소된 건수가 1233건이나 됐다.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산재 판정으로 고통을 겪은 근로자의 산재 신청 건수가 무려 9061건이었다. 전체 불복 신청 건수의30%가량이 근로복지공단의 판정과 딴판이었던 셈이다.

윤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정 기준과 잣대가 비과학적"이라며 "결국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만 시간과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하게 돼 이중 삼중의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산재 근로자의 피해가 없도록 산업안전과 관련된 연구논문을 DB화해서 적용하는 등 과학적 인과관계를 제대로 따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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