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에 사흘 담근 하모니카 불던 김현식..무대서 침 켁켁"

입력 2021. 10. 16. 00:25 수정 2021. 10.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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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3〉요절한 후배 가수 3명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재하·김광석·김현식. 공교롭게도 모두 요절했다. 조영남씨가 뽑은 후배 가수 3인방이다. [중앙포토]
지난주 나는 ‘뉴 방탄노인단’을 꾸며 3중창을 해보자, 뉴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조용필의 ‘바운스’, 나훈아의 ‘테스형!’, 그리고 조영남의 ‘장터’를 합쳐 세상이 깜짝 놀랄 뉴 오징어 게임을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조영남의 ‘장터’는 바로 내 히트곡 ‘화개장터’를 말하는 거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중앙SUNDAY 독자 제위께 나의 원천적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받으려는 거다. 생각해 보시라. 내가 말도 안 되게 격이 떨어지는 ‘화개장터’를 감히 ‘바운스’나 ‘테스형!’한테 갖다 댔으니 아무리 필자 맘대로 쓴다 해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이점 나는 크게 반성하고 속죄하는 바이다. 다시는 이런 짓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드린다. 그 점에 대해 나의 ‘장터’ 망언으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책임은 필자인 내가 몽땅 지겠다. 연재를 중단하라면 즉각 중단하겠다(나는 중단 요구가 불길처럼 일어날까 봐 엄청 겁난다). 내가 왜 이런 구차한 얘기를 늘어놨느냐. 이유가 있다. 요즘 정치인들 특히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자기의 뻔한 잘못을 시인도 안 하고 사죄도 안 하는 게 화가 나서 나 같은 사람이라도 샘플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식으로 써놨다. 내 잘못과 실수를 늘어놓았다. 글쎄 원, 효과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말이 대선 장도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현식, 술에 취한 채 무대에 오르기도

어쨌거나 나는 최근 2회에 걸쳐 평소 입 다물고 있었던 음악 얘기까지 했다. 내 70평생에 가장 화려했던 이름 없는 트리오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에 관한 음악 얘기를 했고, 이어서 내 안방에 걸려 있던 기묘(?)한 사진 한장에 관한 얘기까지 썼다. 조용필 나훈아 조영남이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관한 얘기였다. 그렇게 쓰다 보니 매우 자연스럽게 내 후배들에 관한 얘기도 써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 지금부터 나는 내 맘대로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 그리고 조용필 나훈아 조영남에 탄력을 받아 또 3명의 내 후배에 관한 얘기를 쓰겠다. 그럼 과연 그토록 수없이 많은 후배 가수 중에 누굴 3명으로 추릴 것이냐. 어떤 방법으로 가려낼 것이냐. 오디션을 볼 거냐. 투표방식을 할 거냐. 문제가 있다. 그렇게 신중하게 선정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다. 그냥 나 혼자 대충 뽑는 방식이다.

자!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벌써 결과가 나왔다. 발표하겠다. 행여 내 선정방식에 불만이 있다면 할 수 없다. 내 안목의 짧음과 음악 감식의 한계를 탓해야 할 것이다. 하여튼 내 깐엔 고민고민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발표하기 전인데 내 눈앞엔 기라성 같은 다른 후배 가수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음악이나 미술 행위에 등수를 매긴다는 것, 예술을 수학적인 잣대로 몇점 몇점, 일등 이등을 뽑는다는 것, 이건 정말 제정신 가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걸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중앙SUNDAY의 연재를 위해 특정 목적으로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 그리고 지난번에 조용필 나훈아 조영남에 이어 후배 가수 세 명을 어거지로 선정했으니 널리 양해 바란다. 순서 같은 건 없다.

비틀스의 유명한 ‘애비로드’ 앨범 재킷을 배경으로 얼굴 사진을 합성했다. 왼쪽부터 유재하·김광석·김현식과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그냥 먼저 뽑힌 가수는 ‘내 사랑 내 곁에’를 힘겹게(?) 부른 김현식이다. 누가 믿겠는가. 나는 김현식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활동해서 그렇게 됐겠지만 별 정보도 없다. 내 후배 이장희의, 오래전에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 이승희와 함께 노래했다는 것과 전유성이가 관여돼 있다는 정보가 고작이다. 즉시 유성이한테 전활 걸었다.

“야! 니가 김현식 가수 만들었니?”

떠듬거리며 유성이가 말했다.

“말도 안 돼. 그게 아니고 어디서 노랠 들었는데 잘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한테 소개를 해줬어. 그런데 금방 유명해지더라구.”

이어서 나는 마침 옆에 있던 최근 나한테 신곡을 만들어 노랠 부르게 만든 유명한 ‘내 나이가 어때서’의 작곡자 정기수한테도 물었다.

“너 김현식 노래도 만들어준 적 있니?”

“그런 적은 없어요. 옛날 대학로 쪽에선가 김현식이가 친구 김동환 쇼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본 적이 있는데 무대에 등장할 때 이미 술에 잔뜩 취해 비틀비틀 간신히 올라와 노랠 하는데 그가 말하길 소주에 삼일이나 담가뒀던 하모니카라며 그걸 부는데 제대로 소리가 안 나니까 무대에서 켁켁 침을 내뱉더라구. 뒤에 있는 여자 관객들이 어머! 어머! 하며 걱정하던 모습이 기억날 뿐이야. 나중에 유명해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있지? 그거 제대로 된 노래가 아냐. 그거 그때 동아기획 김영 사장이 현식이 몸 상태가 음악녹음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했던 연습 테이프를 나중에 조립해서 발표한 거야. 그게 대박을 친 거지.”

그가 아끼던 후배 가수 유재하가 먼저 죽었을 때 3박 4일 논스톱으로 울었다는 얘기는 그가 마음 착한 심성의 사나이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다.

자! 김현식에 이어 두 번째 당선자(?)는 누군가. 뚜르르르르, 김광석이다. 그동안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느낀 특별한 감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어쩜 노랠 저렇게 평안하게 아무 기교도 없이 잘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또 하나는 김광석이 내가 고등학교 때 다녔던 창신동 소재 동신교회 고등 성가대 직계 후배라는 것이다. 김광석이가 내 직계 성가대 후배! 가슴 뿌듯해진다.

한가지 내가 옳았던 건 나는 가수 지망생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교회 성가대 들어가 음악을 배워라” 했던 게 맞는 말이라는 점이다. 김광석 음악을 평가할 경우 매우 중요한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영혼에 관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교회음악을 통해 배우는 게 딱이라는 얘기다. 김광석의 노래는 한국 어느 다른 가수의 노래보다 반복해서 들어봐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성가를 부르듯 기교 없이 악보대로 부르는 무기교의 창법 때문이다. 이미자의 창법도 비슷하다. 나는 당장 윤형주한테 전화했다.

“야! 김광석이가 우리 동신교회 출신이야?”

“어 맞아. 우리 동신교회 고등 성가대 출신이야. 내 막내 동생과 성가대 함께 했을 거야.”

“니 막내 동생이 너하고 몇 살 차이냐.” “가만 있어 봐, 그게 천구백….”

“야! 시캬! 천구백이구 뭐구 니 막내 동생이 몇 살 아래냐구.”

“가만있어 봐. 형! 내 막내가 그러니까 천구백….”

“야! 내 동생 조영수가 다섯 살 밑이야. 니 막내 동생이 너보다 몇 살 밑이냐구.”

형주한테서 특이한 대답이 나왔다.

“형은 동생이 하나잖아. 나는 동생이 다섯 명이야. 그러니까 따져봐야 돼.”

머리 나쁜 녀석!

결국 따져 보니 김광석이 나의 20년 가까운 후배 성가대 멤버 출신이라는 결론이 났다.

휴! 이젠 한 명 더 남았다. 누구일까. 뚜르르르르! 유재하다. 여러 수십 명을 제치고 올라섰다. 레코드판 딱 한 장만 내고 유명해지고 금방 없어진 가수다. 우선 이름이 멋지다. 유재하! 별 의미 없지만 내가 내 장례식용(?)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노래가 ‘모란동백’이고 이 노래의 작사 작곡가 이름이 이제하다. 이제하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유재하도 김현식처럼 나는 만난 적도 본적도 없다. 하지만 내가 평생 조용필을 부러워했던 건 유재하를 자신의 그룹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뒀다는 거다. 김광석 할 때 “걘 내 고등학교 성가대 후배야” 시샘을 퉁쳤듯이 유재하는 나의 한양대 음대 직계 후배다. 서울음대 이전에 나는 잠시 한양대 음대생이었다. 유재하가 위대한 건 그가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 추종을 불허하는 작곡 편곡의 진짜 실력자라는 것이다. 유일하게 비틀스의 작곡 실력과 맞먹는다. 음악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비틀스는 음대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재하, 레코드판 한 장 내고 유명해져

정말 웃긴다. 내가 꼽은 전설적인 후배 가수 세 명이 모두 나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이다. 김현식은 32살에 요절, 김광석 역시 32살에 자살(?) 방식으로 요절했고 유재하는 25세에 사고로 요절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76세다. 요절은 불가능해졌다. 요절할 수 있다는 보장이 아예 없다. 아티스트는 요절을 해야 근사해진다고 그러는데 나는 너무 늦었다. 내가 혹 나쁜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자연사로 처리될 것이다. 기분이 영 찝찝하다.

기왕 보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보장에 관한 짧은 얘기를 한마디 하겠다. 오래전 친구한테서 들은 얘기다.

옛날 어떤 쪼그만 나라에 나라 사정이 안 좋아 국민이 몽땅 굶어 죽게 생겼다. 국가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설왕설래하다가 어느 각료 하나가 기막힌 대책을 내놓는다. 내용은 이런 거다. “당장 내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라.” 각료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지금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운 판에 웬 뚱딴지같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느냐. 그러자 안건을 낸 각료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치고 못 사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독일이나 일본을 보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졌지만 그 후엔 잘사는 국가가 됐잖느냐.” 좋다 좋다, 각료들은 내일 아침 9시를 기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로 가결한다. 다음 날 아침 전쟁 선포를 발표해야 할 총리가 시간이 됐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황급히 각료 한 명을 총리 집으로 파견했다. 총리 집에 당도하니 총리가 자기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머리맡엔 유서까지 남겨 놓았다.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가 미국한테 꼭 진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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