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같은데.. 성별 소득격차 왜 벌어지나

권이선 2021. 10. 1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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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학진학률 높아져도, 성적 뛰어나도
男女 임금 10년 시간 지나면 상당한 차이
원인은 '육아'.. 여성 커리어에 부정적 영향
사회 만연한 '탐욕스러운 일' 문화도 한몫
직장 내 벌어지는 성별 소득격차 깊이 추적
유연한 노동·사회적 돌봄 지원 등 해법 제안
하버드 경제학과 여성 최초의 종신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성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 유연성이 있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판을 살피는 모습. 고양=연합뉴스
커리어 그리고 가정/클라우디아 골딘/김승진 옮김/생각의힘/2만2000원

“침대 정리하고, 시장 보고, 소파 덮개 갈고, 아이들과 피넛 버터 샌드위치 먹고,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에 아이들 데려다주고, 밤이면 남편 옆에 누울 때 나는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게 다 인가?”

1963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베티 프리단(1921~2006)은 대학을 나온 여성들이 전업 맘이 되어 느끼는 좌절을 묘사하면서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들이 취업 전선에서 겪는 ‘이름 없는 문제’는 성차별, 젠더 편견, 유리 천장, 마미 트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프리단의 언급 후 6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에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달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소득은 남성 소득 대비 76%에 불과했다. 여성이 시간제 노동자로 일할 가능성도 남성에 비해 2배가량 더 높았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져도, 학업 성적이 뛰어나도, 입사성적이 좋아도, 남녀 간 격차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이 사회에 여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성의 실적이 여성보다 실제 월등하기 때문일까.
클라우디아 골딘/김승진 옮김/생각의힘/2만2000원
하버드 경제학과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종신 교수에 오른 클라우디아 골딘이 쓴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별 소득 격차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서다. 저자는 100여 년간 미국의 대졸 여성들을 다섯 세대로 나누어 성별 소득격차를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대출 업무와 세일즈는 여성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고용하지 않는다’와 같은 노골적인 성차별은 미국 직장 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선택하는 직업 차이, 즉 ‘직종 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때문이라는 해석을 한다. 예컨대 남성은 의사를, 여성은 의사보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간호사를 선택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 인구 총조사 목록에 있는 500개 직종을 살펴보면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 격차의 3분의 2는 ‘직종 간’ 요인이 아니라 ‘직종 안’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령 여성이 남성과 같은 수만큼 의사가 된다고 해도 현재의 소득 격차 중 3분의 1 정도밖에 없애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 졸업 후 남녀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한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남녀의 임금 수준이 상당히 비슷하고, 성별 소득 격차가 있더라도 전공이나 취업 분야의 차이로 대부분 설명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0년 정도가 지나면 상당한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 변화의 주요 요인은 아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성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녀 간 소득 격차는 커리어 격차의 결과이고, 커리어 격차는 부부간 공평성이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커리어상 중요한 도약이 판가름 나기 전에 아이를 낳게 되는데, 아이는 종종 커리어를 갉아먹는다. 그렇다고 아이 낳는 것을 그 뒤로 미루면 이번에는 커리어가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이 타이밍은 잔인하다.”

여기에 미국 사회에 만연한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 문화도 남녀 간 임금 격차를 부채질한다. 미국 사회는 시간 외 근무,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저녁 시간과 늦은 밤에도 일에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이뤄졌다. 예컨대 1.5배의 일을 하면 소득은 각종 수당 등이 더해지며 2배로 뛴다.

이에 따라 각 가정은 경제적 혜택을 최대화하기 위해 남녀 역할을 분담한다. 남편은 일에 더 집중하고, 아내는 아이를 돌보며 유연 근무를 선택한다. 남녀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진정한 원인이다. “남성은 가정도 갖고 커리어의 속도도 낼 수 있는데, 그것은 여성이 커리어의 속도를 늦추고 가정일을 챙기기 때문이다. 둘 다 무언가를 잃는다. 남성은 가족과의 시간을 버려야 하고, 여성은 커리어를 버려야 한다.”

저자는 더 높은 수준의 성평등을 이루고, 성별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에만 주어지던 보상을 줄이고, 시간 유연성이 있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 시스템이 재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돌봄 제공자들이 우리 경제에 더 생산적인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돌봄을 지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저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재택근무의 경험은 앞으로 유연한 노동으로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한다. 재택근무가 생산성과 비용적 측면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재택근무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유연성을 갖기 위해 노동자가 감수해야 했던 비용이 줄어들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노동 구조를 고쳐 나가면서 지난 한 세기의 여정이 전진해 온 길에 우리 몫의 길을 닦아야 한다. 나의 학생과 그 밖의 많은 여성이 커리어도 가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말이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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