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70년 뒤에야 사죄 받았다..인류 구한 '불멸의 세포' 비밀
생전 동의 없이 추출돼 연구 무단 사용
뒤늦게 WHO 상 수여, 공개 반성·사죄
1951년 2월, 미국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병원. 한 흑인 여성이 아랫배 통증을 호소하며 산부인과를 찾았다. 자궁경부암이었다. 8개월 뒤 그는 3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헬라 세포’라는 이름으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70년 전 ‘불멸의 세포’를 기증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에게 ‘WHO 사무총장 상’을 사후 수여했다고 밝혔다. 그가 남긴 암세포가 의학 및 생명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기리기 위해서다. 동의 없이 랙스의 세포를 각종 연구에 사용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도 담았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늦게나마 랙스의 공헌을 기리게 됐다”며 “과거 과학계가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인종 평등을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노력으로 의학 분야에서 보이지 않게 공헌한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의 공로를 인정하는 기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19 백신 연구에도 기여한 ‘불멸의 세포’
랙스는 죽었지만, 그는 인류 최초의 ‘인간 세포주’를 남겼다. 세포주는 인체 밖에서도 무한 복제되는 죽지 않는 세포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세포로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해야 하는 의학·생명과학 분야에서 필수적이다. 단 인간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랙스의 자궁 경부에서 채취한 암세포는 달랐다. 실험실에서 살아남더니 하루 두 배씩 증식했고, 세계 첫 인간 세포주가 됐다. 학계는 이 세포주를 렉스의 이름 첫음절을 따 ‘헬라 세포’로 불렀다.
헬라 세포의 탄생은 의학계의 판도를 바꿨다. 소아마비 백신·항암치료제·에이즈 치료제·시험관아기 등 7만5000건 이상의 연구에 사용되며 현대 의학의 초석이 됐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많은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다.
세포 주인은 몰랐던 인류 공헌
이래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건 그로부터 20년 뒤였다. 의학·과학 연구에서 기증자의 동의 절차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헬라 세포의 주인이 ‘흑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랙스의 의사가 무시됐던 건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결과라는 비판이었다. 이같은 지적은 2010년 출간된『헬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과 오프라 윈프리 주연의 HBO 영화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포로 돈 벌고, 보상은 ‘0’
과학계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의 없이 채취한 세포와 개인 정보를 이제 거둬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다. 세포주가 만들어진 과정이 비윤리적이었으니, 지금이라도 사용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세포주를 이용해 이익을 본 적 없다고 주장하지만, 가족들은 앞으로 법적 소송을 통해 헬라 세포의 지적 재산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5일 생명공학기업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을 상대로 소송을 내며 첫걸음을 뗐다. 가족은 이 회사가 헬라 세포로 번 수익을 모두 재단에 환원하고, 재단 측 허가 없는 헬라세포 사용을 영구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단 측은 “랙스에 대한 착취는 흑인들이 겪어온 불행한 투쟁의 상징”이라며 “보상은커녕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흑인의 고통이 의학적 진보를 불러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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