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돈 없어서 양육비 못 줘' 메시지에 깨진 믿음.."양육하지 않는 게 편한 세상" 한탄

김동환 2021. 10. 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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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배우자의 양육비미지급에 무너진 마지막 믿음..법원의 감치명령도 무용지물 / 출국금지 등 신청 예정이지만 효과는 '글쎄..' / "양육하지 않는 사람이 편한 세상, 책임 잘 지키길"
 
‘백년가약(百年佳約)’의 소중한 뜻은 결혼 생활 수년 만에 깨져 버렸지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을 향한 책임감마저 저버릴 줄은 몰랐다. ‘돈이 없어서 이제는 양육비를 못 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전 배우자가 보내오기 전까지는.

매달 2회 ‘면접교섭권’과 월 50만원의 양육비를 전 배우자에게 받는다는 법원 판결로 마침표가 찍히면서 아이들과 그 사람의 공식적인 부모 관계는 끝났지만, ‘어른’으로서의 관심마저 끊어버릴 줄은 몰랐다. 수차례에 걸친 법원의 공시 송달이 ‘폐문부재(문이 잠겨있고 사람은 없다는 의미)’니 ‘수취인불명’ 등의 이유로 무위에 그쳤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지난 15일 세계일보와 만난 A씨는 “양육비미지급 문제를 놓고 아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 나가는 전 배우자를 보니 정말 답답했다”고 흘러간 날들을 떠올렸다. 이어 “그 사람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일정 급여를 받는 것으로 조사되면 압류라도 할 수 있는데 도통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13일,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비공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된 것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혼소송 끝에 두 자녀의 양육권을 가져온 A씨는 전 배우자 B씨에게서 아이들이 만 18세가 될 때까지 1인당 매달 50만원(월 100만원)의 양육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꾸준히 돈을 보내기에 법원 판결도 잘 지키고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B씨에게 남았다고 여겼던 A씨의 믿음은 1년 가까이 흘렀을 무렵, ‘돈이 없으니 이제는 못 주겠다’며 날아온 B씨의 메시지에 깨져버렸다. 더 이상 양육비는 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법원이 지난달 B씨의 ‘7일 감치(구치소 등에 구속)’ 판결을 내렸지만 딱히 달라진 것도 없다. 그의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는 탓이다. 재판부의 감치 판결 후 명령 집행까지 6개월의 유효기간이 주어지는데, 이 안에 당사자 주소를 파악하지 못해 명령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없던 일’이 된다고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 의무를 이행할 때까지 30일 이내에서 감치를 명할 수 있다는 ‘가사소송법’ 제68조도 종잇장의 글자에 불과한 셈이다.

A씨는 조만간 B씨의 운전면허정지와 출국금지, 신상정보 공개를 여성가족부에 신청할 계획이다. 이는 각각 1억원이 넘는 양육비를 주지 않은 두 아버지에게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치를 최근 내린 일과 비슷한 얘기다. 해당 양육권자의 출국금지 등 신청이 여가부를 거쳐 법무부를 통해 나온 결과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은 ‘여성가족부는 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이의 출국금지 등 요청을 법무부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와 관련해 A씨는 “감치 판결 후 바로 출국금지 등을 신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출국금지 등 조치가 양육비미지급의 근본 해결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국금지 기한은 6개월에 불과해 마음만 먹으면 버티는 게 가능하고, 운전면허정지도 운전을 생계수단으로 하는 이에 대해서는 예외로 두는 등의 맹점 때문이다. 신상공개도 정작 사진은 포함되지 않아 하나 마나 한 조치라고 지적한다.

A씨가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양육비 지급명령 신청을 계속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앞서 수개월 치의 양육비 지급명령을 신청한 그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흐르는 기간에 해당하는 ‘또 다른 미지급 양육비’에 대해서도 같은 지급명령을 신청해야 한다고 한다.

2019년 1~10월에 받지 못한 양육비의 지급명령을 그해 11월에 신청해 이듬해 6월 결과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2019년 1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받지 못한 양육비의 지급명령도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상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여성가족부. 뉴시스
 
미지급자의 출국금지 요건 중 하나로 ‘채무액 5000만원 이상’을 규정한 양육비이행법 시행령이 A씨 피부에 느껴질 리도 없다. 그는 “미지급액이 그만큼 쌓이는 동안 양육가정의 고통은 누가 달랠 거냐”“5000만원까지 미지급액이 누적돼도 상관없다는 뜻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양육비의 미지급 총액이 아니라 받지 못한 기간을 출국금지 조치 등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이 모든 게 ‘탁상공론’의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자녀 양육을 위해 사회생활을 끊다시피 한 그는 “양육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편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육비미지급이 ‘아동학대’라는 일각의 지적에도 동의했다. A씨는 “아이를 낳았으면 사랑과 책임감으로 키워야 한다”며 “(이혼 후) 자기만의 권리를 주장하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피가 섞인 만큼, 양육비지급이라는 책임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A씨는 두 자녀가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자라게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제가 양육비미지급에 따른 피해를 얘기한다고 당장 사회가 더 좋아지거나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양육비 관련 단체 분들이나,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께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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