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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인간 대포통장]

입력 2021. 10.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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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포통장 〈1부 - 만들어진 공범〉 ②
길거리 CCTV에 잡힌 대면편취 장면. 노란색 상의를 입은 여성(현금 수금책 피의자)이 스마트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내 한 남성(피해자)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여성에게 접근한다. 이후 이 남성은 가방에서 돈봉투를 꺼내 여성에게 건넨 뒤 사라졌다. 이들이 조우한 시간은 12초였다. [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 대면편취, 기만의 ‘삼각구조’

#1. 2020년 4월 14일

주부 정현옥(61·가명) 씨는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KB국민은행 김이호 과장입니다. 코로나 관련해서 저금리 상품이 새로 나왔습니다. 연 2.2% 금리에 최대 3500만원까지 대환대출 가능 하십니다.”

솔깃한 제안을 정 씨는 덥썩 물었다. 국민은행 직원은 신용조회를 운운하며 문자로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겠으니 설치하고 기본정보를 입력하라고 안내했다. 정 씨는 그대로 따라했다.

다시 김이호 과장이 전화를 해왔다. “조회했더니 하나은행에 대출이 있으시네요. 일단 1000만원을 상환해서 신용도를 높여야 우대조건으로 대출 이용 가능 하세요. 저희 직원 보낼테니 상환금 보내시면 저희가 빠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2. 2020년 4월 16일

[Web발신] (광고) 일자리가 없어 고민이신가요? △△△에서 힘든 시기 함께 할 외근직 수습(임시) 직원을 모집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송지민(35·가명) 씨의 스마트폰에 이런 문자가 찍혔다. 코로나19로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새 일자리를 찾던 와중이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머니(60)를 혼자 돌보는 그에겐 새 일자리가 시급했다.

연락하자 ‘김대성 실장’이라고 소개한 이가 “대부업체 대출 건을 처리하는 업무다. 고객님에게 돈 받아서 무통장 입금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송 씨는 “당사자가 아닌 제가 왜 (입금을) 해줘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우리 고객들이 신불자가 많아서 계좌 이용이 어렵고, 이렇게 무통장 입금을 하면 세금도 안 내기 때문”이라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 5일, 오전 10시~오후 6시 근무하면 일당 10~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묻는 송 씨에게 김 실장은 “일단 한 달 임시직으로 일해보고 잘 되면 전환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임시직 직원이 됐다.

#3. 2020년 4월 21일

서울 XX구 □□길로 가면 고객님 나와 계실거예요. 1000만원 수령하시면 됩니다.

이날 아침 9시. 송지민 씨는 채용된 이후 처음으로 업무를 받았다. 지시대로 이동한 곳은 대형 쇼핑센터 앞이었다. 행인이 많았지만 김 실장이 인상착의를 설명해준 덕에 고객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바로 정현옥 씨였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정 씨도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대뜸 전화기를 건넸다. 상대방은 “송지민 씨 맞죠? 잘 처리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돌려주자 정 씨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쉽게 쓰고, 언제든 버린다
보이스피싱 주류 수법으로 떠오른 대면편취는 총책이 피해자와 피의자를 마치 조종하는 구조로 작동된다. [권해원 디자이너]

송지민 씨의 사례는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면편취’ 스타일 보이스피싱의 매커니즘을 보여준다. 그는 헤럴드경제가 지난 8~9월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현금 수거책 피의자 14명 가운데 한 명이다. 송 씨를 포함한 8명은 현재 관련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4명은 경찰, 검찰 수사 중. 나머지는 형 집행을 완료한 상태다.

취재팀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 일자리를 접했고 실제로 일을 했는지 정리했다. 그러면서 대면편취 보이스피싱의 작동하는 ‘삼각구조’를 확인했다.

2019년까지 3244건에 그쳤다가, 지난해 들어선 1만5111건으로 폭증한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한 축엔 이른바 심부름꾼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해자를 만나서 돈을 받은 뒤 계좌로 입금하는 역할을 해야해서다. 그걸 보이스피싱 조직의 내부사정을 아는 인물에게 맡길 순 없다. 경찰에 붙잡히더라도 조직 본체엔 손상을 주지 않을 ‘도마뱀 꼬리’가 필요하다. 때문에 일반인 수요가 생긴다.

박현근 변호사는 “세상물정 모르는 20대를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무제한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수거책은 말 그대로 쓰다가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도구에 그친다. 새 인력은 국내에서 끊임없이 공급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취재팀과 만난 송지민 씨가 자신이 받았던 가짜 구인공고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누구나 아는 사이트라 믿었는데

취재팀이 만난 14명의 사례자들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되기 직전에 공통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 가운데 7명은 알바몬, 알바천국, 벼룩시장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권 회수’ 혹은 ‘채권 추심’ 아르바이트라는 안내를 보고 구인공고에 접근했다. ‘법률사무소 외근직 아르바이트’, ‘부동산경매업무’ 같은 제목이 달린 구인공고를 보고 엮이게 된 이들도 있다. 최근엔 중개사무소 외근직이라는 허울로 “고객들이 다운계약서를 써서 계약금을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구직자를 유인한다.

이 밖에 ▷네이버 밴드(2명) ▷네이버 카페(1명) ▷온라인 구인 광고(3명) ▷온라인 게임(1명) 등을 통해서 일자리 정보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

송대인 씨가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했던 구인공고. '채권회수 업무'는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수금하는 일이었다.

취재팀이 만난 송대인(38·가명) 씨는 지난해 한 지역언론이 운영하는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주)○○파이낸스 명의의 구인공고를 봤다. 거기엔 경매물건조사 또는 채권회수업무를 맡게 된다고 돼 있었다. 송 씨는 인사담당자라는 이와 연락하면서 경매물건조사 업무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건 당장 일거리가 없어서 일단 채권회수 업무를 해보시라”고 권했다.

송 씨는 “돌이켜 보면 경매물건조사라는 건 미끼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누구나 알고 믿는 사이트에 합법적 알바를 가장해 보이스피싱 전달책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총책’이 조종하는 연극
[권해원 디자이너]

일자리를 미끼로 평범한 시민들을 전달책으로 섭외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한 편에선 피해자를 물색한다. 삼각구조를 완성하는 다른 축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상징적인 사례인 검사, 금융감독원 사칭은 줄었다. 대신 은행, 카드사 등을 빙자해 대출상품을 안내하는 방식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돈 필요한 사람이 많이지면서 피해자가 늘었다.

이병찬 변호사는 “작년, 올해 벌어진 사건의 90%는 코로나 긴급대출, 저금리 대환대출 등을 운운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현금을 건네받기로 한 사람(수거책)과 피해자는 대면하지만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피의자에게 각기 다른 거짓정보를 주면서 롤(역할)을 부여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들이 약속된 장소에서 실제로 만났을 때 불필요한 소통을 하지 않도록 애쓴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피해자를 통화로 계속 붙잡고 있는 식이다. “우리 직원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취재팀이 만난 피의자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하자마자 돈이 든 가방을 건네줬어요. 그분은 계속 통화 중이어서 다른 말은 못했어요.”

“담당자가 ‘고객이 통화 중인 상태로 만나기 때문에 인사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화 할 시간조차 없어요. 피해자는 통화는 하고 있는 상태고 저도 통화 중이죠. 서로 OOO맞으세요? 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끝이에요.”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나 수백~수천 만원의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 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단 죄를 묻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102명의 보이스피싱 공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15명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범죄자로 연루되기까지의 배경, 어떻게 일했고 붙잡혔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 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인간 대포통장’ 기획은 15일부터 3부에 걸쳐 보도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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