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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작가 '5억' 그림에 정치인 몰렸다..이상한 전시의 실체

이유정 입력 2021. 10. 17. 05:01 수정 2021. 10. 1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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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차남 헌터 바이든이 한 대학 농구 경기에 참석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78)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51)이 돌연 예술가로 변신하면서 미 대통령 가족 사업의 이해충돌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CNN에 따르면 헌터는 이달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의 밀크 스튜디오에서 비공개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난 7월 그의 작품을 판매하는 조르주 베르제 갤러리가 예고했던 두 건의 가을 전시회 가운데 첫번째 행사로, ‘작가 헌터’의 데뷔 무대였다. 200여 명이 초대된 이번 전시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한다.


전시회 나타난 대선 캠프 인사


그런데 이 자리에 에릭 가세티(50) LA 시장 등 정계 인사들까지 참석한 게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가세티는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인도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한 인사로, 상원의 청문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2020년 바이든의 대선 캠프에 몸 담았던 인연이 있다. 단 가세티 측은 CNN에 “전시회에는 참석했지만 작품 구매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전시회에선 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민주당 소속)의 특별고문으로 재직 중인 마이클 튜브스(31) 전 스톡턴 시장도 헌터와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메일은 비공개 행사의 내부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며 “이날 전시회에는 가세티를 포함한 정치인, 전직 프로 복서, 예술ㆍ음악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영상에는 헌터가 밝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을 맞이 하는 장면이 담겼다.

헌터의 개인 전시회에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논란은 '작품 판매'로 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 판매가 현직 대통령 아들을 통한 간접적인 정치 기부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워싱턴D.C.의 비영리기구 정부감시프로젝트(POGO)의 다니엘 브라이언은 성명을 통해 “이번 전시회는 ‘헌터 자신도, 백악관도 누가 그의 작품을 샀는지 알지 못 하게 하겠다’는 백악관의 기존 주장을 약화시켰다”며 “누가 헌터의 그림에 관심이 있는지 온 우주가 알게 됐으며, 누가 대통령의 아들을 통해 백악관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51)의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미국 뉴욕의 조르주 베르제 갤러리. 갤러리는 지난 7월 헌터의 작품 15점에 대해 7만 5000달러(약 8800만원)~50만 달러(약 5억 9000만원)로 가격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홈페이지 캡처]

“대통령에 보이려 작품 구입할 수도”


현지 언론들은 헌터의 활동이 대통령의 공무 수행과 가족들의 개인 사업 간에 이해충돌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 시사 월간지 디 아틀란틱은 지난 달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며 ”구매자는 대통령에게 호의를 보여주기 위해 헌터의 예술품을 구입함으로써 백악관을 ‘윤리적 문제의 지뢰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백악관은 7월 헌터의 활동이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갤러리로 하여금 작품 구매자를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하게 하는 윤리 협약을 맺도록 했다고 밝혔다. 앤드루 베이츠 미 백악관 부대변인이 워싱턴포스트(WP)에 “구매자에 대한 기밀 유지로 절차적 윤리성을 보장할 것”이라며 “대통령은 그의 가족에 대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윤리적 기준을 수립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도 임기 초반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정부 사업이나 외교 정책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공직을 이용해 딸과 사위 등의 가족 사업에서 전방위 이익을 얻었다”고 비판했던 바이든 정부는 헌터의 미술품 판매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타게 됐다.


헌터 작품 최고 5억원 예상


헌터는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지 않았고, 갤러리에선 그의 직업을 ‘변호사’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 가격은 한 점당 7만 5000달러(약 8800만원)~50만 달러(약 5억 9000만원)로 예상되고 있다. 갤러리가 이번 여름 그의 작품 15점에 대해 밝힌 예상 가격이다.

헌터는 이 무렵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내 미술품 가격이 얼마에 책정되고, 실제로 얼마에 팔렸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며 “나는 만약에 그게 10달러 쯤에 팔리면 아마 놀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팟캐스트는 헌터를 “첫 개인전이 시작되기 몇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작가 헌터’에 대한 평가는 다소 냉소적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예술 평론가 세바스찬 스미는 CNN에 “일부는 기술적으로 인상적이지만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커피숍에서도 당신은 어떤 예술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겠지만 작가와 (개인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는 한 그 그림에 1000달러(약 118만원) 이상 쓰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통령 아들이 아니었으면 높은 가격이 책정됐겠느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있는 것이다.

헌터의 작품 판매를 맡고 있는 조르주 베르제 갤러리를 특수를 맞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15년 뉴욕 소호에 오픈한 신생 갤러리지만, 현직 대통령 아들의 작품을 중개하게 되면서 6년 만에 전세계의 관심을 받는 위치에 올랐다.

올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백악관 경내의 마린원 헬기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임기 중 판매 막거나 이력 추적해야”


전문가들은 백악관의 윤리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윤리 담당 수석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 로스쿨 교수는 “아버지 임기 동안은 미술품 판매를 막거나, 구매자를 추적해 그림을 회수하는 등의 다른 접근법을 취했어야 했다”며 “차선책으로 그림을 누가 구매하는지를 공개하고 그를 행정부에서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가세티 LA시장처럼) 전시회장에 나타나는 대사 지명자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헌터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형 보 바이든 마저 2015년 뇌암으로 사망한 뒤 헌터는 마약 중독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는 등 방황했다. 지난 대선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헌터가 이사로 재직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았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불거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아들을 옹호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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