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味)가 담긴 술을 내는 미담양조장

입력 2021. 10. 17. 06:01 수정 2021. 10. 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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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을 통해 맺은 전통주와의 인연

[막걸리 열전]

“효모들이 만들어 준 술맛은 참 멋있어요.”

홍천 제곡리에 있는 미담양조장의 조미담 대표는 자신이 빚을 술을 이야기할 때 저런 표현을 썼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땀과 손으로 술을 만들고는 불현듯 효모가 술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의 정성을 유일하게 알아차리는 이는 다름 아닌 술’이라며 술의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그의 술 사랑론은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다음은 푸른 하늘을 품은 정겨운 양조장에서 조 대표와 나눈 그와 술과의 무용담이다.

△조미담 미담양조장 대표.



1600년대 말이나 17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酒方文)’에는 28종의 술, 46가지 음식 등 모두 74가지 조리법과 가공법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여러 술 가운데 ‘석탄주(惜呑酒)’가 실려 있다.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사실 이 석탄주에는 아름다운 향과 맛 때문에 사라짐이 애석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조 대표는 15여 년 전 전통주에 입문하며 석탄주를 재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날 미담양조장의 대표 술은 이를 기반으로 한 석탄주와 미담생탁주다.

전통주의 시작 
과거 조 대표는 서울 시내 대학가에서 주점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젊은이들 대부분이 기분 좋은 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면 다들 다음날 숙취로 고생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외국 술과 달리 우리 막걸리는 마시고 난 후 왜 이렇게 숙취가 심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많이도 받았던 터라 본인도 그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의문을 품었고 훗날 우연한 계기로 전통주를 배우면서 그 원인이 미숙수와 인공 감미료 등 여러 가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통방식인 석탄주를 기반으로 만든 미담생탁주.



그 후 그는 진짜 우리 술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시중에 있는 민속주라는 것은 진짜 우리 술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실상 우리 술은 명맥이 끊어진 상태니까요. 그전에는 집집마다 술 담그는 비법이 다 있었어요. 그걸 일제가 밀주 단속을 핑계 삼아 없애 버린 거죠. 결국 단속을 피해 몰래, 빨리 만들려고 첨가물을 넣은 게 시중에 알려진 술이 된 거죠.”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여러 고문에는 전통주의 기록이 남아 있었고 그 문헌을 지표 삼아 이렇게 전통주 살리기에 조 대표도 동참하고 있다. “사실 고서에 남은 레시피는 물 몇 동이, 한 국자 등 양이 제각각이어서 전문가가 도량했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어요. 저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나만의 레시피, 나만의 석탄주를 만들어 온 거죠. 집집마다 고유의 술이 있었듯이 미담에는 미담의 술이 있는 거죠. 그 대신 직접 만들어 정성을 다해야 하는 기본 정신에는 어긋남이 없죠”. 

술을 향한 남다른 애정
인터뷰 당일에도 술을 빚었다던 조 대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쌀을 빻고 고두밥을 짓는 것 이외에는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다는 조 대표. 심지어 무거운 쌀과 술 독을 움직이고 다루는 일도 혼자 해내고 있었다. 왜 이토록 거친 일을 오롯이 홀로 하느냐고 묻자 조 대표는 술 빚는 일은 본디 혼자 해야 한다며 말을 이어 갔다.

△누룩을 빚는 일부터 양조 과정 모두 조미담 대표의 손을 거친다.



“술이 집사를 알아보거든요. 예민하고 섬세한 그 과정을 누구 손에 맡길 수 있겠어요. 쌀을 씻고 옹기를 소독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설렁설렁 할 수가 없어요. 저 역시 15년 넘게 술을 빚어도 행여 무슨 일이라도 날까 노심초사인데 누구의 손을 빌려 술을 빚겠어요. 그러니 제가 다독여 줘야 효모가, 술이 잘 익어요. 그러면 새콤, 달콤, 쌉싸래함, 구수함, 떫은맛이 고루 나는 술이 완성되는 거죠.”

술이 익어 가는 장독을 바라보며 연신 눈인사를 보내는 조 대표를 보면서 그가 술에 보내는 극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때때로 자신이 빚은 술에 자식 같은 마음이 들어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는 그. 그래서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 술을 나누기 위해 자리를 구상 중이다.

미담양조장의 차기 프로젝트
미담양조장의 차기 프로젝트는 바로 ‘전통 주막’이다. 소담스러운 초가의 멋이 깃든 미담양조장에는 술을 빚는 양조장 이외에 별채가 하나 더 있다. 이곳은 ‘미담 우리 술 학교’라는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장소이자 조 대표의 다음 꿈이 담긴 장소, 전통 주막이다.

△홍천 제곡리에 위치한 미담양조장.



“해외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어요. 한국에도 그에 못지않은 술이 있는데 왜 우리에겐 저런 문화가 없을까 속상했죠. 한식 문화가 성장해야 전통주 문화도 활발해진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래서 제가 가진 솜씨를 발휘해 제대로 된 전통 주막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여건상 활발하게 운영하지 못하지만 홍천 특유의 식재료를 이용해 맛과 멋 풍요로움이 깃든 주막을 한껏 꾸려 보고 싶다고 한다. “술은 음식이고 그것이 곧 문화”라는 조 대표와 전통주 인연의 시작과 다음에 주막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며 어쩌면 그가 전통주에 보내는 극진한 애정과 예찬 등 모든 것이 그와 술의 필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손유미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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