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 결실"..현대일렉트릭, 역대 최고 회사채 성적표 받다

2021. 10.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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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업익 727억원 '흑자 전환'·ESG 채권 발행으로 회사채 흥행

[마켓 인사이트]

현대일렉트릭 울산 온산제련소에 위치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센터. 출처: 현대일렉트릭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이하 현대일렉트릭)이 회사채 시장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1년 전만 해도 불안정한 사업 구조와 재무 구조를 보여 투자 기피 현상이 나타났지만 강도 높은 구조 조정으로 신용도를 개선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인식을 바꿨다. 또한 지난해 안정화 단계에 돌아선 실적은 당분간 탄탄하게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인식 전환에 큰 몫을 했다.

‘A’급 신용도 한계에도 성공적인 회사채 발행

현대일렉트릭은 올해 10월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썼다. 3년 만기 500억원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대표 주간사 회사를 세 곳이나 선정했다. 한국투자증권·KB증권·하이투자증권 등 회사채 발행에 강점이 있는 증권사만 골랐다.

수천억원 단위의 회사채를 발행할 때도 세 곳의 대표 주간사 회사를 선정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현대일렉트릭이 회사채 발행 흥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세 곳의 주간사 회사를 선정한 배경에는 현대일렉트릭이 1년 전 채무 상환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75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목표로 진행했는데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수요는 80억원에 그쳤다. 목표 수량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회사채 발행 금리 등 재무적 전략을 떠나 현대일렉트릭의 사업 전망 등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비우호적 인식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여서 더 충격이 컸다.

현대일렉트릭의 당시 신용 등급은 현재와 동일한 ‘A-’였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국내외 설비 투자가 침체되고 미국의 고관세 부과 등으로 불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되자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은 2019년 현대일렉트릭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실적 변동성 확대로 영업 수익성도 크게 나빠지자 기존 신용 등급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신용 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이 높은 현대일렉트릭의 회사채에 기관투자가들이 선뜻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1년 전 회사채 발행 참패의 기억을 제외하더라도 올해 10월 회사채 발행 시장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 들어 기준금리 인상을 본격화했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유통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투자 매력도가 낮아진다. 또 올해는 연말을 앞두고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서둘러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바람에 투자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더욱이 현대일렉트릭의 회사채 신용 등급이 여전히 ‘A-’인 점도 부담 요인이다. ‘A’급이긴 하지만 ‘A’급의 최하단에 자리하고 있어 ‘BBB’급 최상단과 한 단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A’급 회사채에 비해 투자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단, 뚜껑을 열어보니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현대일렉트릭의 회사채 수요 예측(사전 청약)에 총 1100억원의 투자 주문이 몰렸다. 목표한 물량의 두 배가 넘는 자금이 접수됐다. 이를 통해 발행 금리도 현대일렉트릭의 신용 등급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A’급 회사채들이 목표한 물량만큼 투자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현대일렉트릭의 이번 사전 청약은 상당한 성과”라며 “시장 평판이 1년 새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완화된 재무 부담에 ‘부정적’ 꼬리표 떼다

현대일렉트릭의 선전에는 투자 시장에 부각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트렌드를 잘 반영한 영향이 컸다. 이번 회사채는 ESG 채권으로 구성됐다. 발행 금액의 상당 부분을 녹색 채권으로, 나머지는 사회적 채권으로 꾸렸다. 조달 자금을 태양광 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 전력 설비 구축을 위한 기자재 조달에 쓰기로 했다. 또 동반성장 협약 보증을 위한 기금 출연과 동반성장펀드에 예치할 예정이다.

기관투자가들이 자체적으로 ESG 투자 비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대일렉트릭 회사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점도 한몫했다.

이와 함께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털어낸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은 올해 6월 그간 현대일렉트릭이 달고 있던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은 지난해 이후 영업 수익성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보유 자산과 종속 회사 매각으로 차입 부담이 완화됐다고 판단했다. ‘안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받았다는 것은 일단 신용 등급 강등 위기에선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기관투자가들도 투자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이게 됐다.

현대일렉트릭은 2018~2019년 계속된 적자로 재무 상태가 크게 흔들렸다. 잇단 악재로 영업 손실이 계속되고 비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이어지면서 유·무형 자산 손상차손과 미국 관세 관련 충당금 설정 등 비경상적 비용 부담도 발생했다. 유상 증자와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자구안을 단행했지만 재무 안정성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순손실을 이겨내고 지난해 이후 외형을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중이다. 2019년 이후 조선 업황이 살아나고 있는 데다 지난해부터 한국전력공사 계열의 설비 투자 확대가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중동 관련 납품이 지연되고 한국 석유화학업계의 배전반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한전의 실적 회복에 따른 점진적인 발주 증대로 외형 성장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영업 수익성도 안정화되고 있다. 구조 조정이 마무리되고 비경상 비용이 축소된 덕분이다. 선별적 수주로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72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대일렉트릭은 연결 기준으로 2018년 1006억원, 2019년 156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5.5%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2.5%였고 2019년에는 마이너스 8.8%였다.

채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우발 채무 현실화 등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있기는 하지만 우수한 내수 시장 지위에 기반한 사업 경쟁력과 국내외 수요 회복세를 볼 때 현재 수준의 영업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일렉트릭은 경영 개선 과정에서 선수금 비율을 높이고 운전 자본 관리를 강화하면서 순차입금도 빠르게 줄이고 있다. 2018년만 해도 순차입금이 5153억원이었는데 올해 6월에는 1931억원으로 줄었다.

김동혁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부채 비율 등 표면적인 재무 지표 개선은 크지 않지만 순차입금 감소 규모를 고려하면 재무 부담이 크게 완화됐다”며 “투자 규모가 과거에 비해 줄어 재무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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