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동에서 파견 나온 경찰?" 이제 '형광색 조끼'부터 찾는다

김진 기자 2021. 10. 1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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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화경찰' 양정열 서울 종로경찰서 정보관
대화경찰제, 고강도 거리두기 속 3년.."이해 높아지고 내적 활성화"
양정열 종로경찰서 정보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0.1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수도권 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한창이던 지난 9월15일, 청와대 일대의 집회·시위 현장 관리를 담당하는 '대화경찰' 양정열 서울 종로경찰서 정보관(53·경위)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해 섬진강 범람으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 주민 20여명이 정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상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두기 4단계에 따라 1인 시위만 가능했지만 구례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 차례 전화통화에도 "잠깐만 하고 나오겠다"는 주민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양 경위가 종로구 청운효자동 앞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 한참을 설득한 끝에서야 '현수막 차례상'을 펼친 1인 시위로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주최 측과의 소통으로 집회·시위를 안전하게 관리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대화경찰제가 고강도 거리두기 단계 속에서 만 3년을 맞았다. 스웨덴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대화경찰제'로 2018년 8월부터 시범 기간을 거쳐 10월 정식 도입됐다.

현재 청와대 일대를 담당하는 양 경위는 지난 15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수도권에서 1인 시위만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상경하시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불만도 있는데, 전례없는 감염병 상황에서 건강권을 우선하는 시민들의 인식 덕에 도입 3년을 맞아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시행 기간은 짧지만 대화경찰은 정보과 직원들 중에서도 연륜이 쌓인 베테랑들이다. 소통 능력뿐 아니라 정보력, 정확한 순간판단력 등이 요구돼 다년의 경험을 양분 삼아 피는 '꽃'에 비유될 정도다. 서울 400여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400여명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활동 중이다.

양 경위 역시 정보관 경력만 10여년에 이른다. 그럼에도 수도권에 4단계 거리두기가 적용된 지난 7월 이후 3개월은 매일 새로운 도전이었다. 연중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는 청와대 일대의 경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처럼 '대통령 관저 주변 100m 이내'에 포함되지 않아 평상시 집회·시위가 가능했던 곳까지 제한에 놓이며 전국에서 찾아온 개인·단체들의 항의가 하루에도 여러 번 빗발쳤다.

양 경위는 "일을 오래했다고 해서 생기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는 것 같다"며 "최대한 들어드리고, 최대한 설득해서 안정시킨 뒤 별일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라고 했다.

내달 예상되는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과 관련해서는 "많은 분들이 (집회·시위를 통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텐데, 집회로 감염병이 확산된다는 비난의 소지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참석자분들이 방역수칙은 최대한으로, 위법사항은 최소한으로 해주셔서 기본권과 건강권 모두 문제없이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대화경찰제가 시범 도입된 지난 2018년 8월15일 광화문집회 현장. 2018.8.15/뉴스1 DB © News1 유승관 기자

대화경찰제가 시행되기 한참 전부터 정보관으로 활동한 양 경위는 "현장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도입 초기 '대화경찰이 뭐냐' '(일산) 대화동에서 파견 나왔냐'고 묻던 주최 측이 이제는 멀리서도 대화경찰의 형광색 조끼를 찾는다는 것이다. 경찰과 주최 측의 치열한 현장 협의가 필요한 사안일수록 그 존재감도 커졌다.

양 경위는 "예전에는 (주최 측이) 경찰이 필요할 때 현장에서 112신고를 하기도 했었는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조끼를 입고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이해도가 높아졌다"며 "제도가 더욱 활성화돼서 대화경찰을 찾는 집회·시위 현장 어디에서나 우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부적인 변화로는 경찰청 정보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전문화 교육을 꼽았다. 양 경위는 "갈등관리나 책임대화경찰 등 여러 교육을 이수하면서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수적 보강보다 현장에서 얼마나 갈등을 해결하는지를 중심으로 내적 활성화가 이뤄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대화경찰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2019년 말을 언급했다.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 선택을 내린 고(故) 문중원 기수 유족들의 광화문 일대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때다.

양 경위는 "크고 작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이자 아버지, 인간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감정은 이듬해 봄을 앞두고 이뤄진 철거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오래 가슴에 고였다. 이는 심리적·감정적 소모가 불가피한 대화경찰이 감정노동자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양 경위는 "그래도 '들어줘서 고맙다',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 힘이 된다"며 "처음에는 '당신 누구냐' 하던 사람도 갈 때가 되면 '수고하라'고 하신다"고 했다. 이어 "개인이 아닌 경찰, 정보관, 특히 대화경찰이란 신분이기에 더욱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며 "저희가 아니면 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근무 중인 양정열 종로경찰서 정보관. 2021.10.1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soho090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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