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 디지털세, 끝난 게 아니다[스토리텔링경제]

신재희 2021. 10. 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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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시행 목표도 딜레이될 가능성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
지난 8일(현지시간) 공개된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안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평가다. 경제협력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nclusive Framework)가 공개한 최종 합의문을 보면, 디지털세 필라1(매출발생국 과세권 배분)과 필라2(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등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2012년 6월 OECD 주도로 BEPS(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논의를 처음 시작하고, 2018년 12월 필라1·2 개념을 처음 확정한 뒤 긴 시간 끝에 나온 값진 성과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아직 쟁점 사안이 수두룩하다. 목표 시행 시점인 2023년까지 거쳐야 할 과정도 ‘첩첩산중’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쟁점에서 합의가 지연되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할 경우 2023년 시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국가 간 ‘각론 다툼’ 치열

일단 필라1 초과이익 배분비율(25%) 및 필라2 최저한세율(15%) 등 이견이 컸던 쟁점 사항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은 맞다. 그러나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쟁점이 좁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각 국가들의 치열한 수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갖는 쟁점은 필라1에서 중간투입재와 최종매출액 간 연관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 ‘세이프 하버’는 어느 수준에서 결정할 것인지다. 모두 국내 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필라1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어마운트A(Amount A)’는 일정 규모 이상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초과이익에 대한 일부 과세권을 시장소재국에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재화·서비스는 최종적으로 사용·소비되는 시장소재국에 매출을 귀속하면 되는데, 문제는 반도체 등 중간투입재다.

어느 휴대전화에 어느 회사의 반도체가 들어가가는지, 해당 휴대전화가 어느 국가에서 최종적으로 팔렸는지 등은 모두 기업 기밀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 재화는 배송지 등 최종 소비자 정보로, 스트리밍 서비스는 IP 주소 등을 통해 최종 소비지국을 파악할 수 있는데 중간재는 최종매출액과의 연관성을 어떻게 봐야 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이프 하버는 기업이 시장소재국에 이미 상당한 초과 이익을 배분하고 있는 경우 적용하는 제도다. 이미 시장소재국에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디지털세가 추가로 부과되면 이중과세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경우 어마운트A를 줄여줘야 되는 건 맞는데, 이를 어떤 식으로 설계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가 끝난 뒤 “디지털세는 남은 쟁점에 따라 과세 규모가 증감한다”며 “앞으로 1년간 세부적 기준 논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별 단독과세 문제가 첨예한 이슈다. 합의문에는 각 국가가 시행 중인 기존 디지털서비스세(DST) 등 유사 과세는 폐지하고, 향후에도 도입하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합의 시점과 실제 디지털세 시행(2023년) 사이에 있는 공백 기간이다.

이미 유사 과세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 인도 등은 최대한 유사과세 철폐 시기를 늦추려고 할 게 자명하다. 당장 과세를 중단하면 기존 세수가 펑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각 국가들의 유사과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역시 내년 초 도출될 필라1 다자간 협약에서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2023년 시행, 예정대로 가능할까?

디지털세가 2023년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남은 쟁점도 깔끔하게 정리돼야 할 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의 자체적인 입법 절차도 끝나야 한다. 불과 1년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140개국이 2023년까지 국내 입법 및 제도화 등 모든 절차를 마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해당 합의안은 각국 행정부들이 함께 마련한 것일 뿐, 각 국가별 입법부와 관련 이해관계자의 설득을 모두 거쳐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마다 입법 환경이 다른 점도 변수다. 가령 미국은 디지털세 비준을 위해 의회 상원에서 최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통과가 쉽지 않을 거란 의견이 나온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 각국 국내 입법 및 제도화에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실제 디지털세 논의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이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다는 것에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합의안에도 결국 ‘최대한 노력한다’(fully commitment)는 수준의 문구가 담겼다.

문제는 국경을 넘나들며 부과되는 디지털세 특성상, 140개국의 시행 속도를 비슷하게 맞출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일 A국가는 디지털세를 시행하고, B국가는 시행을 안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B국가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A국가에 낸 세금을 본국에서 공제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중과세 문제에 휩싸일 수 있다.

일부 국가의 입법 준비가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디지털세 시행을 시작할 것인지 여부, 몇 개 이상 국가가 준비되면 시행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할 것인지 등도 쟁점 사항이다. 만일 다수 국가가 준비가 안 됐을 경우, 제도 시행 시작 시점이 아예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한국도 디지털세 시행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일단 정부는 학계 등 전문가 집단의 조언과 기업의 입장을 두루 살피는 한편, 별도 연구용역을 맡기는 것도 검토 중이다. 후속 세법 개정 작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 국제조세 체계와 개념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라며 “당장 법인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국조법 등 복수의 세법과 연결돼 있다. 세법 개정을 할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OECD가 마련할 필라1·필라2의 ‘모델 규정’을 각국 세법 체계에 맞게 다듬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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