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 케냐 사무소장 "소녀들은 여전히 살기위해 결혼한다"

이민정 입력 2021. 10. 17. 12:00 수정 2021. 10. 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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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노벨평화상 수상 1년
"기아 겪는 인구는 더 늘어"
케냐 난민촌에서 한국산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는 여학생들. 한국은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한국쌀 1만t을 케냐에 지원했다. [세계식량계획(WFP)]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식량이 최고의 백신이다”.

지난해 101번째 노벨평화상은 세계식량계획(WFP)에 돌아갔다. 코로나19 위기 속 WFP 수상은 기아, 양극화와 이를 외면하는 국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식량 위기는 여전하고, 빈곤국의 호소는 계속된다.

지난 16일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로렌 렌디스 WFP 케냐 사무소장은 “10명 중 1명은 매일 굶주리고 있다”고 실태를 알렸다. 렌디스 사무소장은 2011년 제네바 사무소장으로 WFP 활동을 시작해, 중앙아프리카 차드 사무소장, WFP 이탈리아 로마 본부 영양 분야 국장을 거쳤다. 지난해 9월부터 케냐에서 근무하며 동아프리카 기아 문제 해결에 힘쓰고 있다.

로렌 랜디스 세계식량계획(WFP) 케냐 사무소장. [세계식량계획(WFP)]

Q : 지난해 WFP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기아 문제에 관심이 쏠렸다. 세계 기아 문제 진전이 있었나.
A :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아인구는 더 늘었다. 지난 7월 WFP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영양부족 인구는 2019년보다 약 10.4% 증가해 약 8억1000만명으로 집계됐다. 10명 중 1명은 매일 배를 굶주린다는 얘기다. 케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기아인구 240만 명으로, 지난해 대비 3배가 늘었다. 어린이와 여성 및 산모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하다. 어린이 50만 명(5세 미만 어린이 26%), 산모 10만 명은 아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중 4명 중 1명은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기나긴 굶주림에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농장으로 향하고, 여학생들은 가족을 먹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조혼을 택하기도 한다.

Q : 기아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 최근 몇 년 동안 분쟁과 기후위기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 오래도록 분쟁을 겪고 있는 시리아·남수단을 비롯해 최근에는 아프간 식량문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케냐는 ‘가뭄’ 전쟁 중이다. 지난 2년 동안 우기인 3~6월조차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다. 이상기후는 농경사회인 케냐의 식량 위기를 더 심화했다. 예측불가능한 강수량으로 농작물은 메마르거나 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농작물 생산량이 70~90% 감소하며 먹을 것이 사라졌고, 동물들도 먹을 풀과 물이 없어 말라 죽고 있다. 식량 원조에 의존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결국 정부는 지난 9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에티오피아 국경 아코보 마을에서 기르던 가축이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죽어 뼈만 남아있다. [세계식량계획(WFP)]

Q : 코로나19으로 인한 타격도 컸을텐데, 현재 상황은.
(※인구 5500만 명인 케냐의 누적확진자 수는 24만1803명, 사망자는 5210명이다. 하루 130여명의 확진자가 나온다. 케냐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최우선 과제이지만,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A : 신흥국으로 발돋움한 케냐는 수도 나이로비 등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는 도시인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전체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184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동금지령으로 운전사·노점상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대다수가 비정규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다. 수입이 불안정해 매 끼니를 챙기긴 무리다. 이에 WFP는 식량 배급보단 현금 지급 형태로 돕고 있다. 올해 미국과 핀란드의 지원으로 도시지역 거주자 40만 명에게 음식 구매를 위한 현금을 이체했다.

Q : 케냐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의 지원은 어떤가.
매년 한국도 중동·아프리카·아시아 4~6개국에 한국 쌀 5만t을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매년 300만 명이 잠시나마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중 케냐에 101억원 상당의 쌀 1만t이 들어온다. 케냐 지원국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한국에서 보낸 쌀은 난민촌 수십 만명의 어린이에게 보내진다. 덕분에 난민촌 아이들은 쌀밥과 완두콩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케냐의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은 “한국 쌀 덕분에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들이 다른 곡물보다 쌀을 더 좋아한다”며 감사 인사를 부탁했다.

WFP를 통해 한국 쌀 원조를 받고 환하게 웃는 에리트리아 난민 케디아 (2021). [세계식량계획(WFP)]

Q : 한국이 식량원조 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A : WFP는 장기적 관점에서 식량 위기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삶을 바꾸는 회복 탄력성 작업 (WFP's Life-Changing Resilience Work)’다. 한국은 이미 현물 원조 외에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관개시설 구축, 가축 질병 진단을 위한 기술 전수, 스마트팜 지원 등이 그것이다. 또 고구마와 땅콩 등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구황작물 등의 재배를 지원하고 있다. 작물 수확 후, 저장·가공·판로 확보도 지원한다. 2020~2021년 WFP는 케냐 농가 6만4000가구를 도와 농산물 8만6000달러(1억 원)어치 판매에 일조했다. 이 밖에 묘목 심기·수로 확보로 경작지 사막화를 막고, 농가 보험을 통해 흉년에도 식량 원조 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Q : 기후위기로 전례 없는 식량위기가 온다는데, 국제 연대는 더 약해지고 있다. 우리가 식량위기를 외면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A : 눈앞에 닥친 기아를 외면하면 전 세계가 감당해야 할 복구 비용이 매년 몇 배씩 늘어날 것이다. 기후위기가 그 시기를 더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최근 WFP 조사 결과 평균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상승하면 1억89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농업, 어업, 축산업에 의존하는 저소득 국가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데 케냐도 연속적인 가뭄이 예고된 상태다. 가뭄의 장기화는 식량 위기를 부르고, 만성 영양실조 환자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 경우 복구 비용은 3~4배 이상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기아해결을 위한 투자 1달러(1180원)가 미래의 복구 비용 2.8달러(3300원)를 절약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WFP는 애플리케이션 셰어 더 밀(Share the Meal)을 통해 기아 종식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하루 0.8달러(950원)로 어린이 한 명의 하루 세 끼 식사를 도울 수 있다. 기후위기가 불러올 식량 위기를 지금 당장 막을 수는 없지만, 더 큰 피해를 예방할 수는 있다는 점을 기억하길 부탁드린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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