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종신직' 대법관 임기 제한 시도에 "반대한다"

김태훈 2021. 10. 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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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절대우위 대법원에 진보진영 불만 '팽배'
"종신직 폐지하고 대법관 임기 18년으로 제한"
바이든,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 가능성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재시간) 코네티컷주 민생 탐방을 마치고 워싱턴 백악관으로 복귀하기 위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직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나누고 있다. 윈저록스=AP연합뉴스
미국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보수 색채가 너무 짙어진 연방대법원을 견제하기 위해 현재 종신직인 대법관의 임기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관 임기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그 또한 보수 절대우위 구도의 대법원에 불만을 느끼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법관 임기제 도입 같은 사법개혁 조치를 섣불리 취했다가 되레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코네티컷주(州)로 민생 탐방을 떠나기 위해 백악관에서 전용 헬기 ‘마린원’에 탑승하기 직전 출입기자들과 짧은 일문일답을 나눴다. 한 기자가 “연방대법원의 임기 제한을 지지하느냐”고 묻자 바이든 대통령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아니다(No)”라고 답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정원 9명 중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 진보 성향이 3명으로 보수 절대우위 구도다. 중도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종종 보수에서 벗어나 진보 쪽에 서긴 하지만 그래도 5대4로 보수가 무조건 이기는 구조다. 최근 여성의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 텍사스주 법률을 둘러싼 사건에서 대법관 5대4 의견으로 텍사스주 손을 들어준 결정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대법관을 비롯한 모든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직이다. 자연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3명의 보수 대법관은 앞으로 20∼30년간 더 재직할 전망이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 입장에서 현 상황은 절망 그 자체다. 그래서 사법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놓은 것이 바로 법관 종신직 폐지 및 임기제 도입이다. 대법관의 경우 임기를 18년가량으로 제한함으로써 그 이상은 대법원에 재직할 수 없게 하자는 취지다. 겉으로는 ‘사법부가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더 잘 번영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은 고령의 보수 대법관들을 빨리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진보 법률가들을 앉힘으로써 현 대법원의 보수 절대우위 구도를 깨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원장·대법관들. 9명 중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6명이 보수 성향이라 ‘보수 절대우위 구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바이든 대통령 또한 현 대법원의 보수 편향에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해 온 만큼 사법개혁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다. 다만 같은 민주당 소속의 선배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의 전례가 바이든 대통령을 주저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공황기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이른바 ‘뉴딜’ 정책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지배하던 1930년대의 대법원이 뉴딜 정책을 자본주의 원칙에 반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로 간주해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행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경기부양책이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무효화할 때마다 프랭클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프랭클린은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나선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운 고령의 대법관이 한 명 생길 때마다 대법원의 정원을 그만큼 늘려 새 인물을 대법관에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9명으로 한정된 대법관 정원을 확대함으로써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는 젊은 진보 법률가들을 대법원에 밀어넣어 아예 대법원의 ‘체질’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조차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조 전문가들은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랭클린의 최대 과오가 바로 사법부 재편 시도”라며 “대법관 임기제 도입을 추진하면 프랭클린 때와 같은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한데, 역사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 바이든으로선 그런 상황이 몹시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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