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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베트남인 엄마, 한국어 못한다고 양육권 박탈 안 돼"

최나실 입력 2021. 10. 17. 15:35 수정 2021. 10. 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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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던 외국인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아이의 언어 습득이 우려된다'는 점에 대해선 "한국은 공교육이 확립돼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며 "외국인 부모의 한국어 소통 능력이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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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베트남 부부 이혼소송서 딸 양육권 쟁점
하급심은 "친모 한국어 능력 부족" 문제 삼아
대법 "언어는 공교육 통해서도 습득 가능해
부모와의 친밀감, 경제 여건 등도 고려해야"
게티이미지뱅크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던 외국인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혼 때 자녀 양육자를 정할 때 한국어 구사 능력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간 친밀도, 경제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 여성 A씨와 한국 남성 B씨 간의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에서 남편 B씨를 양육자로 지정한 원심을 깨고 “다시 살펴보라”면서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2015년 9월 혼인 신고를 한 뒤 자녀 두 명을 낳았다. A씨는 남편과 지속적으로 불화를 겪자 2018년 8월 두 살배기 큰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남편과 별거했다. 이듬해 부부는 서로를 상대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두 사람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큰딸의 친권자와 양육자를 남편인 B씨로 지정했다. A씨의 한국어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거주지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A씨가 일하는 동안 딸을 대신 봐주는 베트남인 친정어머니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아, 아이의 언어 습득이나 향후 유치원 및 학교생활 적응이 우려된다고도 봤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이미 큰딸을 잘 키우고 있던 A씨의 양육권을 박탈하려면 “현재의 양육 상태가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방해가 되어, 상대방을 양육자로 지정하는 게 아이에게 더 낫다는 게 명백”해야 하는데,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실제로 그런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별거 이후에 직장을 얻어 월 200만 원 정도 고정 수입이 있고, 월세로 살고 있지만 집을 구해 어머니 도움을 받아서 딸을 문제없이 키워 오고 있었다. 반면 B씨는 본인 명의로 된 아파트는 있지만 뚜렷한 직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B씨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소송 과정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두 사람 중 어느 쪽의 경제 여건이 낫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셈이다.

대법원은 '아이의 언어 습득이 우려된다'는 점에 대해선 “한국은 공교육이 확립돼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며 “외국인 부모의 한국어 소통 능력이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가 한국에 오자마자 잇단 두 차례의 출산으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 향후 사회생활을 하며 한국어 실력이 향상될 여지도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양육자 지정에서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와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한국인 부모의 문화를 알고 배우는 것 못지않게 외국인 부모의 문화를 알 기회도 필요하다는 취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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