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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 뿌리는 장보고·임상옥..한국전쟁후 전세계서 맹활약 [스페셜 리포트]

정승환 입력 2021. 10. 17. 16:54 수정 2021. 10. 1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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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 매경과 함께한 세계한상대회 발자취 ◆

한상(韓商)은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 재외동포를 일컫는다.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 혈통을 갖고 있는 기업인들이다. 최근엔 글로벌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영인으로까지 한상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한상대회는 전 세계 한상 기업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2002년 시작됐는데, 한상의 뿌리는 멀리 신라시대 장보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상왕 장보고는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해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일본~당나라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을 주도했다. 그는 신라뿐 아니라 일본과 당에 살고 있던 재외 신라인들과 교류했으며, 일본 하카타와 당의 적산포에 무역 거점을 확보했다.

조선 후기엔 무역상 임상옥이 있었다. 그는 조선과 청나라 국경 지역에서 인삼 무역권을 독점하며, 무역 수완을 발휘했다. 무역에서 얻은 이익 일부는 굶주린 백성과 수재민을 구제하는 일에 쓰였다. 조선판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이었던 셈이다.

북미 지역 한상의 뿌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 12월 22일 일본우선회사의 겐카이마루호에 미국행 이민자들이 올라탔다. 이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을 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 와이오밍, 콜로라도 등으로까지 진출했다.

6·25전쟁 후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증했다. 입양, 유학, 이민 등으로 미국 땅을 밟는 한국인들이 늘었고, 이들은 현지에서 상공업 등에 종사했다. 유럽 지역으로의 이민도 늘어났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1만9000명이 넘는 광산 근로자와 간호사를 독일에 파견했고, 여기에 유학생과 기업 주재원들이 늘어나면서 유럽 지역에도 한인 사회가 형성됐다. 현지에 정착한 이들과 2세들은 상당수가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 한상들의 선조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했던 한인들이다. 1916년까지 1만명 이내였던 재일동포는 1920년 4만여 명에 달했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되면서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일본 내외에서 노동에 동원됐다. 재일 한인은 1944년 193만명까지 증가했고, 해방 후 약 140만명이 모국으로 귀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 후 귀국하지 못한 동포들은 일본에 남아 재일동포 사회와 한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등 일본 한상들은 1980년대 초 신한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신용협동조합 '대판흥은(大阪興銀)'을 창립해 성공한 한상이다.

[정승환 재계·ESG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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