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외교적 해법 모색

한겨레 2021. 10.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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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 리팅팅ㅣ중국 베이징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가 15일 첫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양국 관계의 어려운 국면에 대해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 모색이 바람직하다면서 양국의 공동 노력을 제안했고, 기시다 총리는 한국 쪽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현재 한-일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주요 현안으로는 위안부·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양쪽의 핵심 쟁점은 국제법 논쟁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적용 범위에 대한 법적 해석의 차이,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의 효력과 절차적 합법성, 그리고 2019년 일본 수출규제의 자유무역 원칙 위배 여부와 보복성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세밀한 국제법 논쟁을 벌였다. 한-일 관계의 타개 방향에 대해서는 논쟁 봉합을 위해 외교적 지혜를 모아 타협 가능한 절충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적 해법이 국가 간 갈등을 완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교 수단이 역사 화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한계성을 지닌다는 것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 논란들이 남긴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다. 당시 양국 정부는 현실 정치 수요를 위해 합의를 급히 도출했으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등에 대한 기존 입장 차를 근본적으로 좁히지 못했다. 그 결과 소녀상과 합의 자체의 국제법 효력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쟁점화되면서 서로에 대한 여론과 국민감정이 오히려 악화되었고, 기존 갈등의 심각성과 복잡성이 더 커지게 된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통화에서 강조한 것처럼 외교적 해결 모색과 함께 피해자분들의 납득을 얻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래야 양국의 입장 차를 축소하고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을 통한 실질적 갈등 해소가 가능하다.

국제법 논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프레임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아예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그 구성 논리를 해체하거나 이해해보는 것이 양국 간 국민감정 회복에 더 유리할 수 있다. 국제법에 대한 차별화된 해석은 한-일 간의 특수한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다. 또한 양쪽의 시각 차이는 시대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국제법에서 새로운 이념 도입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느냐라는 보편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예컨대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에서 한국 쪽의 주장은 전쟁에서 반인도 행위, 여성 인권 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국제법 분야에 도입되며 주목되기 시작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내법과 국제법 사이의 충돌 현상도 보편성을 가지는 문제다. 최근 사례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과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등을 들 수 있다. 국내적 측면에서 봤을 때 최근 몇년간 한국 각급 법원에서 내린 위안부, 강제징용 관련 판결들은 한-일 간 역사 갈등을 겨냥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기별 한국 국내법 차원에서의 법 감정 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여성 권리, 갑을 관계를 비롯한 사회 공정성 문제 등이 전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면서 여러 차례의 국내법 개정과 입법 활동으로 이어졌고, 상기 판결들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반면 일본 쪽의 주장에도 나름대로의 국내적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외교적 프레임 싸움을 초월하여 상대방 주장의 논리를 해체하다 보면 공감대 형성과 절충안 찾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역사 화해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장기적 과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정치 수요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보다 국가 이익, 피해자 입장, 국제적 보편성과 시대정신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외교적 노력이 당사국 모두에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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