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 나와라" 중노위 판정에 경영계가 반대하는 이유

박태우 입력 2021. 10. 17. 19:06 수정 2021. 10. 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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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의 한줄 노동법][박태우의 '한 줄의 노동법'] 2회
지난 6월9일 오전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 ‘원청책임’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붙은 전국택배노동조합 차량이 주차돼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부당노동행위) ①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부당노동행위”라 한다)를 할 수 없다.

3.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와의 단체협약 체결 기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

기업이 비용을 절감할 목적으로 자신들의 핵심 업무조차 ‘외주화’하면서 업종을 따지지 않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양산됐다. ‘서비스’를 사명에 포함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는 가전제품 설치·수리 서비스라는 회사의 핵심적인 업무를 협력업체에 맡겼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을 만들었다. 자신이 근로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사장에게 단체교섭을 요청했지만, 원청이 내려주는 도급비를 받아, 원청이 만들어놓은 업무 매뉴얼대로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전부였던 협력업체 사장들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취지로 일관했다.

원청인 삼성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삼성은 ‘무노조 경영’의 원칙에 따라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과 협력해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다.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협력업체의 단체교섭을 일부러 지연시켰고, 조합원들이 많이 가입된 협력업체를 폐업시켰다. 조합원들에게 ‘노조를 만들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소진 전략’이 삼성 미래전략실의 문건에도 등장했다.

“진짜 사장 나와라.” 교섭장에 앉아 있어야 할 노조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또 한남동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집 앞에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은 노조의 외침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협력업체 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사장’에게 교섭책임 부여한 중노위 판정

이는 삼성전자서비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공·민간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 결정에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진짜 사장 나와라”라고 외쳤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지난 6월 있었다. 씨제이(CJ)대한통운의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은 택배기사가 가입된 전국택배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씨제이대한통운이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정이다. 중노위는 “원·하청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에게 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담케하고, 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거나 게을리(해태) 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본다.

이 판정은 “원청 사용자도 노조법의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 2010년 현대중공업 판례를 인용·확장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건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조합원들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를 ‘위장폐업’시킨 사건이다. 노조는 ‘원청의 위장폐업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중노위에서 인용됐고, 회사가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 대법원까지 사건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중노위 판정 취지대로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하였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다면, 근로계약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노조법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다.

“원청에 권한 있으면 교섭의무 부담해야”

하지만 이 판결을 두고 학계의 해석이 갈렸다. 노조법이 정하는 ‘사용자’의 의무는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해서는 안되는 의무 뿐만 아니라, 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도 있다. 대법원이 원청 사용자에게 전자의 의무만 인정한 것인지, 후자의 의무까지 인정한 것인지가 문제였다.

법원에서도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달리 나오고 있는데, 가장 명시적인 하급심 판단은 2010년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였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소송’의 판결이다. 법원은 항소심(2018년 11월 부산고법, 현재 대법원 심리중)까지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의 ‘사용자'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를 동일한 개념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원청 사용자는 “사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원청 사이에 적어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종속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청노동자가 사실상 원청사업주의 노동자로 볼 정도가 돼야만 원청사업주가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노위 판정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원청 사용자의 범위를 이 판결보다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노위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사업주가 아닌 사업주’(원청)가 부분적이더라도 ‘원사업주 소속 노동자’(하청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지배·결정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이상, 그 권한과 책임에 상응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합당하고, 이는 우리 헌법이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면서 노동조합법에서 노동3권을 구체화하고 이를 침해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는 입법목적과 취지 및 그 내용에도 충실한 해석이다. (중략) 원사업주 이외의 사업주가 원사업주 소속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형성,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소 관리, 작업배치나 업무방법의 기준 설정 등에 대해 일정한 지배력·결정권 등을 보유·행사하는 경우 그 범위 내에서 노동조합법상 부분적인 사용자 책임을 원사업주와 중첩적으로 분담하는 것이 우리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3권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서도 요청된다.” 원청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노동3권의 실질적인 보장이라는 것이다.

2015년 2월 희망연대노조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옆 20여m 높이의 광고탑 위에 올라 원청의 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노조법의 ‘사용자’ 범위 확대돼야”

지난 16일 서울대 법학연구소·서울대노동법연구회·한국노동법학회가 공동주최한 ‘2021년, 단체교섭’ 공동학술대회에서는 중노위 판정을 지지하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승욱 이화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사용자’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가 다르다”는 견해에 대해 “우리 법체계에서 단체교섭 제도는 부당노동행위 제도와 적극적으로 연동돼 기능하기 때문에, 두 사용자 개념을 달리 파악하는 것은 노조법 체계의 정합성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단체협약의 내용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원청사업주가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할 수 없다’는 경영계 쪽 논리도 반박했다. “그렇게 파악한다면, 산업별 단체교섭·협약은 우리 법체계에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노조법 역시 근로계약관계가 전제되지 않는 ‘사용자단체’와의 단체교섭과 협약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이 “노동3권의 폭넓은 보장”을 위해 노조법의 노동자 범위를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만큼, 노조법의 사용자 개념도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헌법상 단체교섭권 보장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향상’에 있는데, 간접고용·특수고용·플랫폼노동 등 다양화하는 노무제공형태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업주가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고 있다”며 “자신의 사업장에서 혹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다면 노동법의 ‘사용자’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교섭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노조는 같은 교섭의제에 대해 원사업주(하청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도 있고 제3자(원청사용자)에게 요구할 수도 있으며, 양자 모두에게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사업주 이외의 사업주가 원사업주와 함께 사용자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원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 제3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 될 수 없으므로 별도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중노위 판정에 반대하는 경영계에서 ‘하청 노조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원청 노조와도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냐’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2014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지하는 교수·학술4단체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삼성전자에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인정과 단체교섭에 나설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처음부터 ‘진짜 사장’이 교섭에 나섰다면

다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으로 돌아와본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를 인정했고,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때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노조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지만, 삼성이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경총-협력업체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단체교섭을 고의로 해태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했다.

만약 ‘진짜 사장’ 삼성에 이번 중노위 판정 취지처럼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노조를 만들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소진전략’은 원청 사용자는 단체교섭 의무가 없다는 논리와 지극히 맞닿아 있다. 삼성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했다면, 경영계와 보수언론이 비난하는 ‘극단적인’ 투쟁도 없었을 것이고,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범법자’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 조합원 두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진짜 사장’ 삼성이 노조와 교섭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업체 사장들이 교섭권한을 위임한 경총이 노조와 교섭했지만, 삼성의 교섭권한을 진짜 위임 받은 것은 ‘김 사장’이라 불린, 경찰청 외근노정팀장 김아무개 전 경정이었다. ‘김 사장’은 삼성에게 뇌물을 받고, 삼성의 지시를 받아 단체교섭의 핵심적인 내용을 노조 관계자와 소통해가며 결정했다. ‘삼성쪽 교섭담당자’가 누구인지를 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몰랐다는 점에서 이를 ‘블라인드 교섭’이라 불렀다.

정보통신기술 등의 발전으로 노무를 제공한 노동자와 계약을 맺는 이들이 ‘진짜 사장’이 아닌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받는 보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라 고객과 플랫폼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정보기술 기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협력업체 사장들은 채용을 대행하거나 보수를 정산해 지급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이들이 교섭해야 할 상대방은 누가 돼야 할까?

아울러, 경총을 비롯한 이른바 ‘경영계’에도 묻고 싶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삼성이 경찰에 뇌물을 줘가며 ‘블라인드 교섭’을 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차피 본인들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 간접고용을 통해 많은 이익을 누리면서, 교섭장에 안나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창한 법리를 들어 중노위 판정을 비판하지만, 실제론 단체교섭하기 싫어 간접고용했는데, 단체교섭하라고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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