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독립50대] 50대, 노화 세포가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

장순심 2021. 10. 1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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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추락하는 기분이더라도.. 의미 있고 충만한 삶으로 채우고 싶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불과 3, 4년 전까지 이어진 직장 생활에서 나는 동년배의 교사보다는 딸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교사들과 어울렸다. 나이와 관계없이 동교과나 동학년 교사들과 자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을 함께했다. 그들 입장에서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모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난 젊은 사람들과 제법 잘 어울렸고 그들은 나의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멈칫거리는 지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갓 서른에 접어든 교사가 작년과 달리 올해는 하루가 다르게 나이듦이 느껴진다고 했을 때, 마흔 초반의 교사가 아이들과 갭이 크게 느껴져 가르치는 것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을 때, 마흔 후반인 또 다른 동료가 노안이 찾아오는지 가끔 침침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책과 거리를 두게 된다며 과장된 행동을 보일 때, 나는 실소했고 당황스러웠고 뜨끔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십 중반의 나를 주장하지 않았다. 나이를 느낄 만한 변화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모두 털어놓았다면 그들은 나의 나이듦을 새삼 느끼고 경로 우대하기 바빴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내 나이를 신경 쓸까 싶어 굳이 말로 꺼내지 않고 잘 감췄다. 

매일 새로운 50대 몸의 변화
 
 50대의 노화와 그로 인한 질환들을 접하면 마치 생이 추락하는 것 같다.
ⓒ elements.envato
 
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교직 일을 시작한 터라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나이로 인한 민폐는 절대로 끼치지 않겠노라고. 그런 결심과 노력 때문이었는지 젊은 교사들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들의 빠른 업무처리 속도, 그러면서도 느긋한 여유와 당당함,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막역한 소통까지 그 모두를 받아들였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들과의 시간에서 나는 자존심을 위해 자의식을 버렸다. 

나이를 초월한 소통이 익숙해진 탓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나는 젊은 세대와 하나의 그룹으로 엮이는 일이 많았다. 글쓰기 모임도 그랬고 독서토론 모임도 그랬다. 북 큐레이션 모임에서도 이제 막 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젊은 엄마들과 한 조가 되었고, 지역 기자단 모임에서도 20대가 대다수인데 나홀로 50대였다.

모임의 목적에 부합한 화제에 특별히 나이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 않으니 가끔은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도 노년을 고민한다는 사실도, 아이들은 훌쩍 컸고 남은 시간을 나로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이를 언급하지 않으면 모두가 동등했고 그런 것이 좋았다.

최근 갑자기 컴퓨터 글씨가 두드러지게 작아졌다. 선명했던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보이다 말다 했기에 이번에도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며칠을 눈을 깜빡이고 비비며 버티다 결국 내 상태를 인정해야 했고 컴퓨터 화면의 글자 크기를 2퍼센트 키웠다. 

진작 간단하게 글자 크기를 키우면 될 것을 뭐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누군가 타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글자의 크기를 무작정 키우지 않는 것은 아직은 괜찮다는 자각이었다. 어차피 교정 시력이니 안경이나 렌즈를 통해 이전에도 조절해왔고, 그렇게 해서라도 남들과 같은 글자의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었는데 지독한 근시에 노안, 최근엔 난시까지 심해진 것이다.

그런 내 상태를 마음으로 인정해야 했다.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키우니 눈이 시원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은 더는 개의치 말자고 생각했다. 주어진 노화에 마음을 허락하면 몸이 따라가고 몸이 따라가면 행동도 따라갈까 봐, 그리하여 나이가 지배하는 상황이 만들어질까 경계했던 것인데 이젠 각각의 단계를 구분해 보기로 했다. 노년의 습관은 불허하지만, 노화로 인한 몸의 변화는 조금은 너그럽게 수용하자고. 

50대 후반, 몸의 변화는 매일 새롭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묵직하다. 그러나 내 증상을 가족에게 하소연하듯 일일이 풀어놓지는 않는다. 깊이 생각하고 조용히 병원을 다녀오고 혼자서 수습하는 쪽을 선택한다.

모든 병이 가볍지 않지만 50대의 노화와 그로 인한 질환들을 접하면 마치 생이 추락하는 것 같다. 증상을 인지하는 순간 병은 이미 심각하고 가족에게 말하는 순간부터 곧 드러누워야 된다.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서 수습할 수밖에 없다. 

지나고 나니 40대 때의 몸의 변화에 대한 충격은 일정 부분 가족을 향했던 것 같다. 이만큼 힘들게 살고 있다는 하소연이나 투정의 의미 같은. 40대의 노화가 열정적으로 바삐 살아온 삶에 대한 약간의 자기 과시 비슷한 것이었다면 50대의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오십이라는 숫자에 깜짝 놀라 정색하며 나이를 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육십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는 나이를 셈하는 것도 노화도 더는 거부할 수 없다. 가끔 마음이 용납하지 않는 꼰대 기질도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 정말 꼰대 같다는 확인 사살이 들어오면 좌절한다. 젊은 세대와 거친 충돌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노년이 가능할까 진지하게 탐색 중이다.

계속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노화를 인정하지만, 동네방네 공표하며 주저앉을 수 없다.
ⓒ elements.envato
 
'사람의 몸은 약 3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인체의 세포는 매일 활발하게 죽어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된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초당 38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세포를 교체'하지만 '전체 세포의 0.5%를 구성하는 뇌신경세포와 눈 수정체 세포는 일생동안 교체되지 않는다(사이언스 타임스, 2021.01.26.)'는 기사에서 보듯 나의 눈은 되돌리기 어렵고 노화는 삶을 지배하려고 한다.

100세 시대를 외치지만 회생 불능의 몸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감성은 청춘의 때보다 더 예민한 것 같은데. 몸과 마음의 괴리 앞에서 매일 타협을 한다. 인생 후반의 삶을 계획하는 것은 매일 생성되는 세포만큼의 자잘한 변화를 감지하고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이 나이 정도 되면 모든 것을 다 완성하고 인생을 즐길 때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러나 완성을 말하기엔 남은 생이 아직 길다. 이어지는 삶에서 나이듦의 기술은 절실하다. '현타'의 연장선상에서,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직은 부모로서 책임이 남아 있고 이제 단 한 분뿐인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정신적, 물질적 책임도 가볍지 않다. 해야 할 일은 여전하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맞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노화를 인정하지만, 동네방네 공표하며 주저앉을 수 없는 이유다.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41세의 '파이어족(Financial Inden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이 나왔다. 빠른 은퇴, 이미 금전적 독립을 이루었다는 부부는 55세에 지급되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수령하기 직전까지 12년은 그동안 모은 5억 원으로 생활하고, 65세 이후에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으로 큰돈 들이지 않고 산책이나 소소한 삶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부럽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파이어족'이라는 용어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나의 40대는 출산과 육아 이후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와 다름없었다. 조기 은퇴나 이후의 노년은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기회나 조건이 주어졌다고 해도 느긋한 삶을 열망하고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은, 마틴 셀리그만이 <긍정 심리학>에서 말한 것처럼 "단순히 약점을 보완하는 데 온 일생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잔잔한 삶은 나의 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날마다 몸의 노화를 마주하지만, 세련되지는 않더라도 치열한 삶에 난 여전히 설렌다.

《 group 》 두번째독립50대 : http://omn.kr/group/fifty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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