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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표정·목소리까지 강하게..김환희표 에우리디케 만들었죠"

박성준 입력 2021. 10. 1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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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 여주인공 김환희
삶과 죽음 엇갈리는 신화 속 연인
슬픈 운명 아니라 '운명적인 재회'
꼭 하고 싶었던 작품.. 국내 초연
합격 연락받고 길에서 무릎 꿇어
2015년 데뷔, 샛별에서 스타로..
"처음 극장들어설 때 마음 지킬것"
요즘 공연가 흥행 선두는 지난달 초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이다. “뮤지컬이 가진 모든 매력을 보여준다”, “올해 최고의 뮤지컬” 등 격찬이 쏟아진다. 지하세계 제왕 하데스와 그의 부인 페르세포네 이야기에 연인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에 간 음유시인 오르페우스의 전설을 엮었다.

여주인공 에우리디케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김환희는 2015년 데뷔한 샛별. 2018년 화제작 ‘베르나르다 알바’의 셋째딸 아멜리아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빅 피쉬’, ‘브로드웨이42번가’, ‘킹키부츠’ 등의 화제작에서 맡는 배역 비중이 계속 커지더니 ‘포미니츠’에선 격정의 주인공 제니 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에 ‘하데스타운’도 한국 초연이면서 뉴욕 브로드웨이를 벗어난 첫 해외무대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택했다.

“‘하데스타운’이 우리나라에 올 거라는 얘기를 동료에게 들었어요. 진짜로 오디션 공지가 떠서 바로 지원을 했죠. 오디션 후 ‘저희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합격통지를 전화로 받았는데 그 순간 너무 좋아서 길가인데 무릎을 꿇었어요. 너무 (출연을) 바랐던 작품이고 바랐던 역할이어서 꿈만 같았죠.”

‘하데스타운’ 출연 소망은 진짜다. 지난해 5월 인터뷰에서 김환희는 언젠가 해보고 싶은 배역으로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미스사이공’의 킴과 함께 에우리디케를 꼽았다. “이렇게 빨리 소원을 이룰지는 정말 몰랐죠. 그때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하데스타운’ 앨범을 계속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막연하게 ‘언젠가는 한국에도 올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던 거죠.”

극장가가 큰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 시대에 ‘하데스타운’ 흥행 호조는 ‘관객은 좋은 작품을 알아본다’는 말 그대로다. 국내 초연으로 낯선 작품인데도 큰 호응을 얻는 이유에 대해 김환희는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고전 신화 이야기이지만 지금 현재 우리 현실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지고 지금 세상에서도 공존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관객이 함께 호응하고 사랑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분 부분 연습할 때는 안 풀리는 것도 많고 의문도 많았는데 전체를 처음 본 순간 믿음이 확실히 생겼어요.”

신화 속 에우리디케는 오로지 오르페우스의 아내라는 설정뿐이다. 저승으로 간 이유도 유괴설과 독사에 물렸다는 전승이 공존한다. 여성이 주요 제작진인 ‘하데스타운’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지하세계로 가는 길을 택한 강인한 여성으로 에우리디케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김환희는 “신화에선 ‘천부적 음악재능을 지닌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는데 에우리디케가 죽자 저승으로 구하러 갔다’가 전부인데, 고통스러운 현실세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에우리디케에게 힘을 준 것 같다”며 “연출(박소영 협력연출)은 계속해서 에우리디케의 강인함과 목적성에 대해 강조한다”고 말했다.

“제 목소리가 자칫하면 그냥 예쁘기만 하고 여리기만 할 수 있는 목소린데 그럴 때마다 ‘환희야. 너 그러면 안 돼. 너무 약해 보여. 에우리디케는 그렇지 않아. 항상 어딘가에 맞서야 하고 저항해야 돼. 세상을 이겨내야 해’라고 당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고 걸음걸이, 표정, 목소리부터 강하게 하려고 했어요.”
자아는 희미해지나 생활은 보장받는 하데스타운의 삶은 현실 속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 김환희는 “하데스타운에선 개인은 이름도 없고 고개도 못 드는데 사실 우리 사는 모든 조직이 그런 면이 있잖은가”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곧장 자유로운 배우생활을 시작한 이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묻자 “회사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을 만나면 성격적으로 항상 상대방한테 맞추는 편인데 그러다 제가 없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난 뭐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들고 외로워진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하데스타운으로 간 에우리디케의 선택에 대해서도 또래 여성으로서 공감한다. “내 옆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무대 위에 섰을 때 하루하루 기분이 다른데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더 에우리디케 역에 집착하게 돼요. 지상에서 외롭고 처참하기 때문에 ‘저 밑에 있는 하데스타운이 이 현실세계의 지옥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이 지하에 간다고 생각해요. 오르페우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있죠. 하지만 이 삶에 대한 미움과 허망함이 더 커요.”
삶과 죽음으로 엇갈리는 슬픈 연인의 운명으로 끝나는 신화와 달리 ‘하데스타운’은 계절의 순환처럼 다시 되풀이되는 연인들의 사랑이야기 속에 희망을 담으며 끝난다. 재즈바에서 오르페우스와 다시 부닥치는 첫 만남의 순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아예 모르는 사이처럼 응시했는데 요즘은 ‘어 저사람?!’인 거죠. 이상하면서 미묘한 기운으로 다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운명을 시작하는 거죠.”

뮤지컬 배우로서 김환희는 또래 배우 중 가장 앞서 달려나가는 모양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의전당, 샤롯데씨어터, 그리고 지금 LG아트센터 순으로 김환희가 최근 올랐던 무대가 공연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 증거다. “그럴수록 저는 저 자신에게 얘기해요. ‘그냥 장소는 장소일 뿐이다. 더욱 진솔하고 진실하게 연기를 하고 관객을 만나자’고. 처음 극장에 들어설 때 그 마음을 가지자고 항상 속으로 되뇌어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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