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금융실명제 정착시킨 YS정부 경제통
이경식(사진)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은 총재 등을 역임한 이 전 총재는 금융실명제 정착과 금융 감독 체제 개편에 기여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한복판에서 온갖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1933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이 전 총재는 57년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한은 조사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경제기획원 기획국장과 체신부 차관,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거쳤다. 관직을 잠시 떠난 뒤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과 대우자동차 사장,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민정부 출범 후 93년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뒤 95~98년 한은 총재로 재임했다.
문민정부 초대 부총리로 한은 입행 동기였던 김명호 당시 한은 총재와 함께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했다. 한은의 은행 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원에 보내는 대신,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추진했다. 한은 총재 마지막 해인 98년 초 은행감독원을 한국은행에서 떼어내 금융감독원에 통합시키고 한은의 예산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국은행법이 바뀌었다.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의 주체가 되는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힘센 기관인 은행감독원이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한동안 한은 조직 내부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한은 노조의 반발 탓에 한은 내부에 걸리지 못한 이 전 총재의 초상화는 퇴임 후 3년 10개월이 지나서야 역대 총재의 초상화와 나란히 자리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97년 12월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와 함께 IMF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했다. 이후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수리하지 않았다. 99년 국회 ‘IMF 환란 원인 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특위’가 연 경제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총재는 “한보 사태 직후인 97년 1월 말 외환위기 가능성을 처음 감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11시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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