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분열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민주주의 위협할 수도

입력 2021. 10. 18. 00:18 수정 2021. 10. 1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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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디지털 플랫폼 중독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의 섬뜩한 경고다. 심층 탐사 보도를 통해 필리핀 두테르테 독재 체제의 무법과 탈법을 폭로해 왔던 레사는 페이스북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페이스북은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조작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몰두하는 등 편향성을 띤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등 SNS, 알고리즘에 따라 특정 행위를 반복하게 해
인간의 디지털 자아를 ‘좋아요’ 등 ‘디지털 마약’에 중독시켜
우리 편 이야기는 자주 들려주고 다른 목소리들은 배제시켜
소셜미디어 의존증 심각해지면 민주주의를 잃을 수도 있어

프랜시스 하우건 전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역시 미국 의회 증언에서 “(페이스북은) 아이들에게 직접 해를 끼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플랫폼”이라고 폭로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애초부터 정보의 편향성이나 왜곡된 사실을 가리지 않고 개인 성향에 맞춤한 정보만 반복해서 보여주고, 자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모아 줌으로써 특정 신념과 편견을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만이 아니다. 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틱톡·네이버·카카오톡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알고리즘에 맞추어 특정 행위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중독시켜 자기 플랫폼에 대한 의존과 남용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 따르면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자주 소통하면 인간 사고는 극단에 빠지고, ‘내 생각’과 ‘내 편’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소셜미디어 접속 않으면 불안·초조

우리의 디지털 자아는 ‘좋아요’와 ‘하트’로 표현되는 ‘디지털 마약’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애덤 알터 뉴욕주립대 교수는 인간이 알코올·담배·약물 같은 물질에만 중독되는 게 아니라 자기 행위에도 중독된다고 말한다. 도박과 똑같이 소셜미디어도 일정 기간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초조 등 금단현상을 일으키며, 하루 몇 차례 주목받지 못하면 우울해지는 자존감 중독에 빠뜨린다.

파블로프가 종소리만 들리면 침 흘리게 개를 길들였듯, 소셜미디어는 잦은 만족을 통해 인간을 플랫폼에 종속시킨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소셜 쇼핑업체는 추천에 ‘즉시’ 반응하도록 우리를 몰아가고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SNS는 ‘좋아요’나 ‘하트’를 갈구하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더 나아가 플랫폼 알고리즘은 인간 마음을 제멋대로 변형한다.

인간 마음은 강철과 벽돌로 이루어진 견고한 성채라기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주 형태를 바꾸는 유체에 더 가깝다. 마음의 생물학적 기초인 뇌의 연결망은 다른 신체 기관 및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끝없이 변형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 상호작용을 누적해 의미와 방향을 갖춘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것이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변하는 현실에 맞추어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와 비슷하다. 『이야기의 탄생』에서 윌 스토는 인간 마음이 자기 이야기를 꾸미는 경향을 ‘작화증’이라고 불렀다.

SNS, 분노와 혐오의 놀이 부추겨

우리는 자신의 나쁜 점은 감추고 좋은 점은 부각해 더 멋있는 자신을 빚어낸다. 그런데 대면 세계에서는 자아를 가짜로 지어내기가 어렵다. 표정·몸짓·어조 등이 진실을 드러내고, 주변의 사람이나 환경이 수시로 그 실체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에서 우리는 자아를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우리가 ‘보정’해서 내세우는 자아 말고 타인들은 우리에 대해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SNS는 자아의 과장과 조작을 극단적으로 부추긴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지아 톨렌티노는『트릭미러』에서 SNS가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로 정의된 세계”라고 주장한다. 자아를 과시하고 부풀려 ‘좋아요’나 ‘하트’를 구걸하지 않으면 아무 주목도 못 얻는 세계란 뜻이다. SNS는 하루에 몇 번 이상 타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자기가 사라지는 듯한 디지털 우울증을 일으킨다. SNS를 즐길수록 우리 자아는 사실보다 의견에 집중하고, 분노와 혐오의 놀이를 즐기도록 변해 간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상식보다 파격이, 중도보다 극단이 주목의 선도가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SNS는 요술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SNS는 실제 자아와 디지털 자아를 분리해서 ‘꾸며진 나’가 ‘현실의 나’를 대체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SNS는 인간을 꾸미기 좋아하는 허언증 환자로 변형한다. 표상된 이미지와 실제의 자아가 다른 디지털 성형이 갈수록 유행한다. 이러한 불일치가 지속되면 결국 화면 속 자아가 현실의 자아를 덮여쓰는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가족·연인 앞에서도 스마트폰에 빠져

게다가 ‘보정된 자아’가 실제의 자아보다 멋지므로, 무겁고 귀찮은 대면 관계보다 가볍고 간단한 소셜 관계에 더 신경 쓴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연인이 마주 앉아 연애하는데, 서로한테 집중하지 못한 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풍경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고독에 시달리는 마음은 SNS 대화가 실제 대화보다 진실하게 다가서는 소외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생각이나 정보 교환이 작은 스크린에 맞도록 재구성”되는 세계는 자아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SNS는 온갖 수단으로 우리 반응을 닦달함으로써 인간이 “자기 가치와 정체성을 생각하고 감정을 관리”하면서 “자신을 발견할 시간”을 빼앗는다. SNS의 재촉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기보다 남의 사유를 퍼 나르고, 전후를 살펴서 신중히 말하는 대신 ‘좋아요’와 ‘화나요’ 버튼으로 쫓기듯 감정을 표현하는 데 몰두한다. 숙고하지 않은 감정적 언어의 범람은 진정한 자아를 훼손하고 진실의 언어를 파산시킨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우리 편 이야기는 자주 들려주고 다른 목소리들은 배제한다. 정치의 언어가 여기에 중독되면 생각은 균형을 잃고 적대는 커진다. 최근 우리 사회도 소셜미디어 의존증이 심각하다. 적절한 절제가 없다면 레사의 경고처럼 민주주의를 잃을 수도 있다.

■ 정부가 부추기는 네이버·카카오 중독

「 자본주의는 담배·술·도박 같은 “기쁨을 유발하는 상품이나 행위를 사고파는 산업”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해국 가톨릭의대 교수에 따르면 이런 산업은 인간의 쾌락 본능을 자극해서 뇌의 보상 회로를 병적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쾌락과 함께 질병을 선물하는 셈이다.

중독은 개인 책임이 아니다. 인간 건강을 해치는 오염물질을 엄격히 통제하듯, 중독을 팔 수 없도록 국가가 책임을 지고 사회 환경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대부분 중독 산업에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대가로 이를 합법화했다. 술이나 담배에서 보듯 중독 산업은 매출의 일정 비율을 기금으로 내놓고, 중독 관련 경고 캠페인을 전개하며, 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진다.

알고리즘 중독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다. 온라인 게임, 인터넷 포털, 소셜미디어 관련 산업도 뇌의 쾌락과 충동 조절 메커니즘을 망가뜨림으로써 금단이나 내성을 가져와 의존과 남용을 일으키고, 우울증·주의력결핍 장애 등을 가져온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 킴벌리 영의 선구적 연구 이후, 이는 과학적으로 수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를 고민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시민을 특정 업체의 알고리즘 속에 몰아넣고 있다. 식당 등에 출입할 때도,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때도, 세금과 각종 공과금 통지도 네이버나 카카오 플랫폼을 이용하게 권장한다. 사실상 한국은 플랫폼이 정부를 대신하는 네이버·카카오 국가나 다름없다. 정부가 나서서 사기업의 알고리즘 중독을 유발하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플랫폼의 편리함 없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중독 산업처럼 이들에게 중독 예방 비용 지출 등 엄격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을 더는 늦출 수 없어 보인다. 더욱이 최근엔 이들이 오프라인 사업에 진출하면서 갑질을 일삼고 소비자 피해를 가중하는 등 직접 폐해도 늘고 있지 않은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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