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시선2035] MZ가 왜 그럴까

정진호 입력 2021. 10. 18. 00:23 수정 2021. 10. 18. 06:21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며칠 전 책을 정리하다가 찾은 톨스토이의 회고록엔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같은 뜻의 영어 원문인 ‘Boys be ambitious’는 어릴 적 흔한 문구였지만,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옛 책을 정리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말을 다시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해당 번역본은 2009년 출판됐다. 책의 원제는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젊은 시절』이다. 야망 비슷한 단어조차 없지만 번역본에 ‘야망을 가져라’고 쓰일 정도로 이 문구는 유행했다. 한때는 분명 그랬다. 초등학생 단골 장래 희망이었던 대통령·과학자는 지난해 교육부 희망직업 조사 결과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공무원은 20위를 차지했다. 중학생 희망직업에선 공무원이 6위였다.

2000년대 태어난 아이에게 야망이 쪼그라드는 공통 유전적 특성이 나타난다는 연구는 없다. 초·중학생의 꿈이 야망보다 현실에 더 가까워진 데는 그 부모나 주변 어른의 영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보이’와 ‘걸’의 세대가 달라졌다기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의미다. 꿈꾸고 노력한다고 이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MZ세대를 타깃으로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재현한 미디어 체험전을 관람객들이 즐기고 있다. [중앙포토]

MZ세대 분석이 연일 미디어에 등장한다. 그 선구자격인 『90년대생이 온다』에서 임홍택 작가는 “동시 출생 집단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에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고 했다. 이어지는 ‘MZ는 워라밸을 중시한다’ ‘MZ는 계산적, 현실적이다’ 등 세대론에 시대는 통제되는 변인이 아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20년 터울을 한 세대로 묶어 MZ라고 부르는 것 또한 세대라기보다 시대의 특성이라는 방증이 된다.

세대론은 일상의 대화 소재로도 침투했다. 30대 초반의 기자에게 한 검찰 간부는 “지방 검찰청에 갔는데 오후 6시 조금 넘으니까 청사에 불이 다 꺼지더라. 나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라고 했다. 한 기획재정부 간부는 “요즘은 열심히 일하면 눈치를 주는 분위기다.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검찰·경찰·기재부 등에서 “MZ세대는 그렇다며?”로 시작한 대화는 “요즘 애들은 우리 때만큼의 열정이 없다”로 끝난다. 보이지 않는 내일에 오늘을 희생할 사람은 ‘586’에도 거의 없을 텐데 변화의 원인을 세대에서 찾는다. MZ로 불리는 이들은 뭐라 말할까.

“개인 시간을 버리고 열심히 일한 선배들이 올라가지 못하더라. 현재를 포기해가며 그 길을 따라갈 이유가 없다.”(35세 A검사)

“20년 전엔 10명 중 9명이 장관을 목표로 했다는데 나는 일단 서기관 승진이라도 하면 좋겠다.”(38세 B사무관)

“기적처럼 임원이 된다고 해도 사회적 지위는 바뀌지 않는다. 직장은 부업, 부동산을 주업으로 해야 서울에 집 한 채라도 마련할 수 있다.”(30세 대기업 C대리)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