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중국읽기] 중국 부동산 20년의 불패 신화는 끝났다

유상철 입력 2021. 10. 18. 00:27 수정 2021. 10. 1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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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20년간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 한 부동산
혁신 창업 등에 자리 내주고 더는 중국 정부 지원 받지 못해
중국 당국은 빚에 의존해 사업 확장해온 부동산에 칼 들어
금융 위기 피하기 위한 것으로 강한 업체만 남게 할 방침

채권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중국의 초대형 부동산 업체 ‘헝다(恒大)’의 위기가 지난달 말 시작된 이래 한 달 가까이 되지만 아직도 그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단 일각에서 우려했던 ‘제2의 리먼 사태’로까지는 악화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헝다의 덩치 자체가 큰 데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중국의 한 부동산 업체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헝다 사태가 무얼 뜻하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영국 BBC 중문판이 내놓은 ‘중국 부동산이 발전 20년 만에 대시대(大時代)의 막을 내렸다’는 분석 보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부동산은 1998년부터 20년간 중국 경제를 이끄는 엔진 역할을 해 왔으나 개발업체의 과도한 부채 경영으로 금융위기를 촉발할 위험이 커지자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949년 대륙이 공산화한 이후 모든 땅을 국가가 소유한 중국에서 부동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98년부터다. 이전까지 도시 주민이 살 집은 직장 등 단위(單位)에서 분배했다. 이른바 복리분방(福利分房)이다. 한데 97년 가을부터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친다. 우리도 당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의 뼈아픈 경험을 했다. 중국은 이때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으며 버텼다. 그 결과 대외무역 상황이 나빠졌다. 78년 개혁개방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던 중국 경제가 한 자릿수 성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98년 3월 총리로 취임한 주룽지(朱鎔基)가 꺼내 든 비장의 카드가 바로 부동산이었다.
복리분방 시대를 끝내고 집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주택상품화 시대를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동산 업종은 산업 사슬이 길어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건자재와 화공, 철강 등이 두루 호황을 맞으며 이후 부동산 업종은 중국 내수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때 중국의 적지 않은 부동산 업체가 홍콩의 부동산 판매 모델을 따라 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엄청난 자금을 빌려 땅을 산 뒤 바로 분양을 시작해 몇 달 안에 빌린 돈의 여러 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회수하고, 이 자금에다 돈을 또 빌려 다시 땅을 사는 데 사용하는 방식이다.

쉬자인 회장이 이끄는 중국 부동산업체 헝다는 2017년 “주머니마다 돈이 꽉 찼다”며 최고의 해를 보냈으나 그로부터 4년 만에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헝다의 상하이 본사. [AP=연합뉴스]

부동산 가격 폭등과 토지 수용 과정에서의 강제 철거 등과 같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지방 정부는 땅을 대거 팔아 곳간을 채우고 일반 주민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증식에 재미를 붙였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국면이 벌어졌다. 이렇게 부동산 호시절이 10년을 이어갈 즈음 중국 부동산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호재가 터졌다.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금융위기 충격으로 중국의 수출입이 두 자릿수 성장에서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주룽지의 바통을 이어받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꺼낸 카드 역시 부동산 진작이었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취득세를 내리고 인지세 등은 잠시 면제하기로 했다. 또 중국 중앙은행은 부동산을 거래할 때의 대출이자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중국 부동산 업계가 다시 자극을 받으면서 중국은 무난히 리먼 사태가 빚은 위기를 넘긴다. 중국의 부동산 특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08년의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이 약발을 다할 즈음인 2016년 중국에 재개발 바람이 분다. 도시의 오래된 낡고 작은 구역에 대한 정비 작업이 그것이다. 중국 정부는 집이 철거되는 주민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이 돈으로 집을 사게 한다. ‘붕개화폐화(棚改貨幣化)’라고 한다. 이 조치는 성냥을 긋고 기름을 부은 격으로 중국 부동산 시장을 폭발적으로 달아오르게 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이 건설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 [AP=연합뉴스]

이때 헝다의 위기가 잉태됐다. 쉬자인(許家印) 회장의 판단 미스다. 중국 경제지 차이신(財新)의 보도에 따르면 쉬자인의 탄식이 나온다. “2017년은 헝다가 가장 휘황찬란한 해였다. 주머니마다 돈이 꽉 찼다”. 이때 헝다는 대대적인 확장을 꾀한다. 또다시 돈을 빌려 땅을 산다. 여기에 사업 다각화를 꾀한다며 부동산 외의 업종으로도 진출한다. 중국 언론계의 경제 전문가인 쉬수저(許樹澤)는 당시 중국 부동산 업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요즘 누가 부동산업이 집만 짓는 사업이라고 하나. 우리는 인터넷에도 진출해 플랫폼도 만든다”. 중국 부동산 업계의 큰형님이 하는 이야기란다.
물론 사업 다각화나 빚을 지렛대로 한 투자인 레버리지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쉬자인은 중국 정부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바보가 아니다. 중국 부동산 업종에 대한 리스크를 항상 경계해 왔다. 홍콩중문대 교수 양양(楊楊)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부동산 가격 안정 등 부동산 리스크를 줄이려고 노력해 왔다.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엔 부동산 재고 줄이기에 나서기도 했다. 부동산 업체와 은행의 채무 압력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바로 중국 각 도시가 재개발 사업으로 부동산 활황에 들어가던 2016년 중국 정부는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房住不炒)”는 입장을 정하고 부동산 시장을 조이기 시작한다.

헝다그룹이 개발한 중국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 [AP=연합뉴스]

부동산 구매 제한과 대출 제한 조치를 통해 가격을 엄격하게 관리하며 시장질서 규범화에 돌입한 것이다. 헝다 그룹이 가장 잘 나가던 2017년 쉬자인은 중국 인민은행 총재 저우샤오촨(周小川)이 그 해 발신한 경고를 간과한 게 결정적 실수였다. 저우 총재는 당시 한 연설에서 ‘민스키 모멘트’를 언급했다. 민스키 모멘트는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호황이 끝난 뒤 은행 채무자의 부채상환 능력이 나빠져 채무자가 결국은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 팔아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시점을 말한다. 이는 바로 레버리지에 의존한 중국 부동산 업계의 잔치가 끝날 것이란 경고에 다름 아니었다.
지난 3월에도 경고가 있었다. 중국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 궈수칭(郭樹淸)은 “지난 세기 이래 세계의 130여 차례 금융 위기 중 부동산 관련이 100여 차례였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금융 리스크 방면에서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인 ‘회색 코뿔소’ 중 가장 큰 놈으로 바로 부동산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중국 정부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차입 위험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경우 일단 자산이 가져오는 수입이 이자를 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 결과는 새로운 대출로 과거의 빚을 갚는 ‘폰지 게임(ponzi game)’이 되고 만다. 이때 금융 시스템은 내부가 펄펄 끓는 압력솥과 같아 언제든 뚜껑이 열리면 전면적으로 폭발하고 만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을 선도해온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헝다그룹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위험을 경계하며 서서히 부동산 시장 정비에 들어갔는데 그 조이는 힘이 세진 게 2018년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선 중국의 부동산 감독관리가 과거엔 “한쪽 문을 닫고 한쪽 창은 여는 식”으로 운영되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문과 창을 동시에 여는 것”이었는데 이젠 “문과 창이 모두 꽉 닫혀 질식할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문에 무너지는 건 헝다 하나가 아니다. 지난 7월 이후 이미 100여 개 부동산 업체가 빈사 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과거처럼 부동산 업계의 숨통을 틔워 줄 것 같지는 않다. 금융위기란 더 큰 악재를 막기 위한 부동산 단속 정책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기가 나쁘면 부동산을 띄우던 중국 정부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얼까. 쉬수저는 그 힌트를 2015년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밝힌 정부업무보고(政府工作報告)에서 찾는다. 당시 리 총리는 미래의 중국 경제가 의지해야 할 두 개의 엔진을 꼽았다. 하나는 혁신 창업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재 공급 확대였다고 한다. 정부업무보고에서 부동산 업체를 중견 기업으로 칭하거나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 자극이란 내용은 더는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018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민영기업가 좌담회에 초청된 10명의 기업인 중 부동산 기업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이제는 역할이 끝난 중국 부동산의 위상을 보여준다. 중국 부동산 20년 불패의 신화는 끝이 난 것이다.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 로고. [중국 바이두 캡처]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 부동산 업계는 어떻게 될까. 현재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는 감히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에겐 그저 “우선 오늘을 살고 보자, 미래는 나중에 말하자”는 분위기다. 현재 중국엔 약 5만 개의 크고 작은 부동산 업체가 있다. 중국 당국은 이들이 시장 경쟁의 원리에 따라 강한 자는 살아남고 큰 게 작은 걸 합병하는 방법(優勝劣汰 以大吃小)을 통해 정리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형 개발상 완커(萬科)의 작은 업체 사냥은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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