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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사진만 찍지 말고 음미하라" 세계 최고 요리사의 조언 [인터뷰]

이소아 입력 2021. 10. 18. 06:00 수정 2021. 10. 1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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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셰프(요리사)로 평가받는 피에르 가니에르. 십대 시절 아버지가 하는 식당에서 요리를 시작해 프랑스 리옹 근처 생테티엔(Saint Etienne) 지방에 자신의 식당을 열고 최고의 레스토랑을 뜻하는 미슐랭 스타 3개를 획득했다. 사진 피에르 가니에르

“요리는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로 평가할 수 없다. 그 안에 담긴 요리사의 애정을 읽어야 한다.”

백발의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71)에게 요리는 마치 자식처럼 사랑스럽고 정성을 다하게 되고, 뭔가 더 해주고 싶은 열정을 샘솟게 하는 존재다.

그는 ‘그랑셰프(Grand Chef, 위대한 요리사)’로 불린다. 지난 2015년 미슐랭 스타 2~3개를 받은 전 세계 내로라하는 요리사 512명이 ‘최고의 셰프(요리사)’로 지목했을 정도다. 15세 소년 시절부터 시작한 요리 인생 55년. 고향인 프랑스를 비롯해 런던·도쿄·상하이·두바이 등 세계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을 열었다.

한국엔 서울 중구 롯데호텔 35층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있다. 지난 2008년 10월 문을 연 뒤 13년째 묵묵히 프랑스 정찬의 정수를 선보인다. 코로나19 확산 직전까지 매년 두번씩 서울을 방문했다는 피에르 가니에르를 서면으로 만나봤다.

Q : 코로나로 고급 식당을 찾는 사람이 줄지 않았나.
A : “우리 레스토랑은 비즈니스 식사보다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가족모임 등 개인들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성을 담은 요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다시 레스토랑을 찾고 있다. 특히 아들·딸 같은 젊은 고객들이 많이 늘어 이분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 중이다.”

1950년생인 피에르 가니에르는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사진 피에르 가니에르 인스타그램 캡처

Q : 여전히 낯선데 프랑스 요리의 특징은.
A : “한국 요리의 양념처럼 프랑스 요리에도 여러 가지 맛의 소스가 쓰인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소스에 손맛이 어우러지는 게 핵심이랄까. 또 굽고 데우고 찌고 은근하게 익히는 거의 모든 열 조리법을 사용한다.”
그의 말처럼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로맨틱한 프러포즈 명소로 꼽힌다. 남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석은 몇 개월 전에 예약해야 할 만큼 인기다. 이곳에서 청혼한 뒤 결혼기념일마다 찾아오는 부부도 많다고 한다. 2018년 가격대와 메뉴를 다양화한 뒤엔 젊은 손님도 크게 늘었다.

서울 중구 롯데호텔 35층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중앙 홀 모습. 2008년 문을 열었고 2017~2018년 리뉴얼 기간 동안 피에르 가니에르가 한국을 방문해 메뉴 재단장과 직원 교육 등을 담당했다. 사진 롯데호텔

Q : 서울 레스토랑에 만족하는지.
A : “가장 좋은 점은 직원들이 하나같이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란 점이다. 롯데호텔 자체가 고급 호텔인 만큼 요리는 물론 서비스·인테리어·티스푼 하나까지 손님을 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 편하다. 총주방장을 비롯해 페이스트리(디저트) 셰프, 소믈리에(와인) 등이 모두 10년씩 함께했다. 레스토랑이 잘 되려면 직원들의 대화와 교감이 필수다.”

서울 중구 롯데호텔 35층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의 별실 '모파상' 모습. 인테리어 역시 피에르 가니에르 건축설계팀과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사진 롯데호텔

실제 가니에르는 코로나 시국에서도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울 레스토랑의 메뉴가 바뀔 때마다 요리법을 받아 프랑스에서 직접 만들어 본 뒤 소감과 의견, 조언을 전달한다. 또 국내 요리사들과 한국의 식재료를 쓴 요리법을 연구해 오미자와 인삼 등을 프랑스 현지에서 활용하고 있다.

Q : 그동안 한국 식문화의 변화를 느끼나.
A : “10년 전만해도 음식을 맛보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젠 프랑스, 뉴욕 못지않게 미식 관광국이 됐고 훌륭한 레스토랑도 많아졌다. 한국인은 호기심이 많고 늘 뭔가를 시도하려 한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젊은 세대가 늘어난 덕에 새로운 음식과 와인을 찾는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식재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피에르 가니에르. 그는

Q : 코로나 이후 미식 트렌드가 있다면.
A : “요즘은 적게 먹더라도 질 좋은 음식을 먹는 게 트렌드다. 예를 들어 세계 각지에서 굴·가리비·조개·성게 등 해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영국 등 앵글로색슨 국가에선 채식주의 트렌드가 강하지만 프랑스에선 여전히 고기 메뉴가 인기다.”
피에르 가니에르에겐 ‘요리계의 피카소’ ‘주방의 철학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정작 본인은 “피카소보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며 머쓱해 하지만 프랑스 요리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재료와 요리법에 반한 손님들이 붙여준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셰프(요리사)로 평가받는 피에르 가니에르. 그는

Q :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요리와 한국 요리는.
A : “송아지 고기에 진한 화이트소스를 넣고 조리한 ‘블랑케트 드 보(blanquette de veau)’라는 스튜 요리인데 밥을 곁들여 먹곤 한다. 한국에선 당연히 비빔밥이다. 신선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한 그릇으로 완전한 한 끼가 된다니 환상적이다. 김치를 좋아해서 소스나 곁들이는 음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고기·오미자·인삼·조개류는 특히 품질이 뛰어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수개월 동안 문을 닫은 뒤 재개관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Q : 미식 분야도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A : “요즘 젊은 고객들은 맛이나 미식 경험보다는 SNS(소셜 미디어)에 올릴 예쁜 음식 사진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프랑스 요리도 80년대만 해도 맛에 중점을 뒀는데, 점점 색이나 모양이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두 가지 모두 훌륭해야 하지만, 개인적으론 비주얼 부분 외에도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요리인지 관심을 가지고 음미했으면 좋겠다.”

Q : 간편식과 혼밥이 늘면서 레스토랑의 입지가 줄지 않을까.
A : “트렌드는 분명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외출한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고, 레스토랑은 사회적 연결을 만들기에 가치가 있다. 사람은 혼자 살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대가 변해도 이런 경험은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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