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내려도 놔둬도 항의 쇄도"..딜레마 빠진 文정부

최훈길 2021. 10. 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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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유류세 검토한 바 없다" 했지만 내부 고심
2018년 유류세 인하 때보다 현재 휘발유값 더 비싸
인하하면 탄소중립 엇박자, OECD "유류세 올려야"
물가관리·기후대응 충돌.. 홍남기 20일 입장 밝힐듯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유류세 인하 여부를 놓고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영세 소상공인들과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고려하면 유류세를 인하해야 하지만, 유류세 인하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물가 관리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3년 전 유류세 인하 때보다 현 유가 높아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내부 논의 결과 현재로선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국제유가 및 국내유가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유류세 인하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기재부 입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입장과 대비된다. 앞서 유법민 산업부 자원산업정책국장은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류세 15% 필요성을 제기하자 “기재부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불과 사흘 만에 기재부는 “검토 없다”고 일축한 것이다.

기재부가 이렇게 일축했지만, 내부적으론 고심이 깊은 상황이다. 과거 선례를 보면 유류세 인하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2018년 10월13일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이후 동행기자단과 만나 “유류세 한시 인하”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가능성을 일축해왔다가, 부총리가 깜짝 발표를 했다.

이는 당시 유가 부담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2018년 10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리터(ℓ)당 15.4원 오른 1674.9원이었다. 당시 휘발유 가격은 올해 6월 넷째 주 이후 15주 연속 올랐다. 이 결과 2014년 12월 둘째 주(1685.7원)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같은 추세를 보면, 현재 유가는 이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올해 10월 둘째 주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33.8원 오른 ℓ당 1687.2원을 기록했다. 이는 유류세 한시 인하를 발표한 2018년 10월 당시 유가(ℓ당 1674.9원)보다 높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2018년 10월 다섯째 주 각각 1690.0원, 1495.3원을 기록한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류세를 인하했던 2018년보다 유가는 더 오를 수 있다. 최근 국제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 15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2.28달러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정유사는 2~4주 시차를 두고 가격에 반영한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 전기요금, 휘발유·경윳값, 각종 공과금까지 물가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OECD “韓 대기오염 가장 심각…유류세 올려야”

그럼에도 물가 관리를 총괄하는 기재부가 유류세 인하를 섣불리 못하는 건 탄소중립 정책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대기오염,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상황인데 유류세를 낮춰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게 맞지 않아서다. 특히 이달부터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 확정, 내달초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12월 유엔 제출 등의 일정이 잇따라 예정돼 있다.

해외에서는 오히려 유류세를 인상하라는 입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6월20일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8)’ 핵심 권고안을 통해 “환경세(유류세) 인상”을 권고했다. OECD가 이렇게 권고한 이유는 한국의 대기오염, 온실가스 배출이 심각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OECD는 “한국은 평균 대기 질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로 계속 악화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며 “정책 조치가 실행되지 않으면 (한국은) 2060년까지 조기 사망이 거의 3배 늘어 실외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유류세를 유지하면 물가 부담이 커지고, 유류세를 인하하면 탄소중립에 배치되는 상황을 정부가 어떻게 해소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당시처럼 한시적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낼지, 이번에는 다른 선택지를 택할지가 관심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오는 20~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한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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