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21

연인도 인연도 남김없이

김규남 기자 입력 2021. 10. 19. 11:08 수정 2021. 10.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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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2020년 1월부터 609일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1216명
영등포 경인로 9명, 엇비슷하게 가난했고 아팠지만 서로를 몰랐던 단절된 삶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전경.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쪽방 주민들과 관리인, 쪽방 주소는 모두 가명입니다.

①'서로에게도 투명인간이었던 투명인간들'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063.html

이탁영과 심대석 내내 아팠던 사람들

음주는 쪽방촌 ‘풍경’의 하나다. 쪽방 주민이나 노숙인들이 홀로 혹은 두세 명씩 모여 빵과 과자 등 부실한 안주를 놓고, 막걸리나 소주를 마신다. 쪽방촌 투명인간들은 아파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셔서 아팠다.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노숙인 자활시설을 전전하던 이탁영(53)은 16년쯤 전에 영등포 쪽방촌에 들어왔다. 이후 그는 내내 아팠다. 아니, 아파서 쪽방에서 정주하는 삶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탁영은 췌장염, 위염, 당뇨, 뇌전증을 앓았다. 4개과 진료로 인해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이 수십 알이었다. 꼬박꼬박 챙겨먹기가 힘들었다. 어지러워 잘 넘어졌다. 췌장 통증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거나 패치를 부착해야 했다. 아파서 누워 있는 날이 많다보니 둔부에 욕창이 생겼다. 궤양이 심했다.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았다.

육체의 괴로움과 홀로 사는 삶의 외로움 탓이었을까. 평소 말이 거의 없는 이탁영은 술을 많이 마셨다. “한번 마시면 며칠을 몰아서 연거푸 마시는 폭주형이었다.” 매일 쪽방을 가가호호 돌며 주민들의 안부를 챙기는 김형옥(51) 영등포쪽방상담소 소장의 말이다. 김 소장과 신인숙(56)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은 매일 쪽방 순찰을 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탁영은 고독사할 뻔했다. ‘고독사’란 홀로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을 뜻한다. 2020년 6월 어느 날 저녁 8시께, 이탁영은 자신의 방에 모로 누운 채 홀로 숨을 거뒀다. 급성뇌출혈로 인한 병사였다. 다음날 오후 3시께 간호사 신인숙이 안부 확인차 방문해 그의 죽음을 발견했다. ‘고독생’을 살다 갔지만, 그래도 ‘고독사’는 아니었던 마지막이었다.

이탁영의 쪽방에서 50m쯤 떨어진 경인로1 쪽방 건물 서쪽 입구 첫 번째 방에 살았던 심대석(69)도 매일 술을 마셨다. 그는 지적장애인 장미진(30대 후반 추정)과 동거했다. 1인 가구가 대부분인 쪽방촌에서 보기 드문 2인 가구였다. 쪽방 크기도 보통은 3.3㎡(1평) 정도로 작은데, 심대석은 10㎡(3평)에 싱크대까지 있는 ‘넓은’ 방에서 생활했다.

심대석과 장미진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함께 지내다 1년 전쯤 영등포 쪽방으로 들어왔다. 장미진이 지적장애인이라 돌봄이 필요했지만, 심대석은 매일 술만 마셨고 허리 등 몸이 많이 아팠다. 돌봄이 필요한 장미진이 오히려 심대석을 돌봤다. 그러는 사이 방에는 쓰레기가 쌓여갔고,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심대석은 2020년 6월 어느 날 술에 취해 집 앞에서 넘어져 아랫입술에 3㎝가량의 깊은 열상을 입었다. 그는 37.3℃의 미열이 났다. 119 응급차를 불렀지만, 코로나19를 걱정한 병원에선 격리병실이 없다며 그를 거부했다. 환자를 받아준다는 병원을 수소문하느라 치료가 몇 시간 늦춰졌다. 영등포쪽방상담소 간호사 신인숙은 “코로나19 이후에는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미열이 있으면, 병원마다 ‘응급실에 격리병상이 비어 있지 않다’며 받아주지 않는 일이 잦다. 서울에서 병원을 찾지 못해 경기도로 넘어가는 경우까지 있다”고 말했다.

윤진형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무료급식

팬데믹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대석과 같은 경인로1 쪽방 건물 동쪽 입구에서 살았던 윤진형(87)은 쪽방촌의 무료급식 ‘주요 고객’이었다. 고령인데다 몸이 아파 직접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광야교회(개신교 운영)와 토마스의집(가톨릭 운영), 두 곳의 무료급식소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각각 500명 내외의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방역 지침에 따라 도시락이나 간식으로 전환됐고, 수량도 대폭 줄었다.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 가운데 무료로 끼니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영등포 쪽방을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 코로나19 재난이 투명인간들에게는 삶의 자리를 흔드는 위기로 다가온 것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 한아무개(40)씨는 코로나19 이후 “어르신들 건강과 신체 기능이 악화된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사회복지사 전아무개(34)씨는 “거리두기 지침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새롭게 발굴하는 활동이 위축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고령에 몸이 아픈 노약자라 윤진형은 소수에게만 제공되는 도시락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17년 동안 윤진형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관리인 하태열(77)이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식사를 받아다줬다. 하태열은 자신보다 10살 연상이고, 몸가짐도 말쑥하고 방도 깨끗이 사용하던 윤진형을 살뜰히 챙겼다. 월세도 주변보다 저렴하게 18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하태열은 윤진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윤진형이 영등포 쪽방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가족은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상대에게 자존심이 있으니까, 그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내가 먼저 물어볼 수는 없어. 전혀.” 이건 쪽방살이의 불문율이다. 함께 술을 마시며 교류하는 일부 주민을 제외하고, 쪽방 사람들은 서로 얼굴은 잘 알아도, 과거는 잘 알지 못한다. 투명인간들끼리도 역시 서로에게 투명인간인 셈이다.

임정수와 장영훈 출구를 찾지 못한 삶

허일남과 같은 쪽방 건물인 경인로3 ‘1호방’에 살았던 임정수(70)도 그런 경우였다. 임정수는 2020년 1월 폐결핵으로 자신의 방에서 홀로 숨졌다. 그는 20년 넘게 영등포 쪽방에서 장기 거주했지만, 누가 얼마 만에 그의 시신을 발견했는지 주변에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마지막 두 달가량을 머물렀던 쪽방의 관리인 변영희(81)도 임정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긴 유품에 대해 변영희는 “옷 몇 가지하고 째깐한(자그마한) 가방 하나였는데, 방 청소한 사람이 싹 갖다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임정수가) 방세를 떼먹었다”고 덧붙였다. 방세를 떼먹은 것은 기억하냐고 물으니, 변영희는 “죽었으니까 방세를 떼먹었지”라고 답했다.

장영훈(59)은 젊은 시절 빚지고 갚지 못하면서,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살았다. 패자부활전이라는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그는 도리 없이 술에 의존했다. 형제들에게 그는 안타까움과 짐스러움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가 돼버렸다. 장영훈의 가족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그와의 삶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된다”며 가족은 말문을 닫았다.

장영훈은 여느 쪽방 주민들과는 다르게 자기 방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는 경인로2 쪽방 건물 관리인 유승자(92)의 옆방에 살았다. “내가 비위가 약하고, 화병이 있어서 더러운 걸 못 봐. 그래서 옆방에 사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장씨는 깨끗하게 살았어. 고집은 좀 셌지만, 청소는 잘했지.”

장영훈은 노숙인 시설에서 성실하게 공공근로를 하며 밥벌이했다. 그러다 2021년 4월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식도암이고 다른 장기에까지 암이 퍼졌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후 일을 그만두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달 뒤 그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 삶을 마감했다.

쪽방 위치도 확인 못한 투명인간들

투명인간들이 모여 사는 50년 넘은 영등포 쪽방촌은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정부와 서울시, 영등포구청이 2020년 1월, 쪽방촌 1만㎡를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고, 공공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건설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영등포구는 현재 3.3㎡ 안팎 크기에 평균 월세 22만원인 쪽방을 16㎡(4.8평) 크기에 보증금 161만원·월세 3만2천원의 저렴하지만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화시킨 뒤에 쪽방 주민들을 재입주시키겠다고 밝혔다. 시기는 2025년께로 예상된다. 이런 기회를 맞지 못한 채, 9명의 투명인간들은 영등포 쪽방촌에서 하나둘 사라져버렸다.

저마다 개별적인 삶을 살았던 투명인간 9명은 모두 경기도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공영장례를 통해 세상과 작별하는 의식을 치렀다. 허일남은 남매들이 저마다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2020년 1월 공영장례식에 허수영은 딸과 함께 참석했다. 딸은 삼촌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허수영은 고인의 유골을 받아 품에 안고 “미안하다”며 펑펑 울었다. 그는 오빠의 유골이 승화원 유택동산에 뿌려지는 동안 한참을 서 있었다.

임정수의 공영장례식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2020년 2월 하순 열렸다. 그는 형제가 있었지만, 연락이 안 돼 자원봉사자들만 참석했다. 고양동 성당 연령회 회원들이 <주 날개 밑>이라는 제목의 찬송가를 불렀다. “고달픈 세상길 가는 동안 나 거기(주 날개 밑)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이탁영의 공영장례는 2020년 7월 열렸다. 연고자는 있지만, 시신을 위임해 그는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심대석의 장례식은 2021년 2월 치러졌다. 윤진형의 장례식은 그 한 달 뒤인 3월 열렸다. 6월 장영훈의 공영장례에는 형제 가족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연고자인 형제는 시신은 위임했지만 고인과 작별의식은 치렀다. 화장된 장영훈의 유골은 승화원 유택동산에 뿌려졌다.

경인로2에 살았던 우한일(68)과 한상호(46), 경인로4 쪽방 주민 이진우(61)는 투명인간들 중에서도 투명인간이었다. 이 3명은 묵었던 쪽방 위치를 포함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우한일은 2021년 4월, 한상호는 2020년 7월, 이진우는 2020년 9월 공영장례식을 치렀다.

글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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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참고 문헌

1. 유재득·심복기, ‘영등포 쪽방촌 거주자의 주거환경 특성에 관한 분석’, 2014년

2. 서울시 복지정책실, ‘2020년 서울시 쪽방촌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2020년 12월 말 기준)

3. 강향숙, ‘알코올중독으로부터 회복 중인 알코올중독자 자녀의 생애 경험’, 한국가족복지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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