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제일 쉬웠어요

엄지원 기자 2021. 10. 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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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은 차라리 쉬웠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벚꽃 대선을 거칠 때 사회부를 막 벗어나 정치부에 발을 디딘 6~7년차 기자였지만 정치의 흐름을 내다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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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탄핵 정국’은 차라리 쉬웠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벚꽃 대선을 거칠 때 사회부를 막 벗어나 정치부에 발을 디딘 6~7년차 기자였지만 정치의 흐름을 내다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소로운 말이지만, 그땐 민심도 곧잘 읽혔습니다. ‘출구는 탄핵밖에 없다’ ‘지금은 죽었다 깨어나도 개헌 안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해보곤 했습니다. ‘정무 감각이 좀 있나?’ 했는데, 돌아보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또렷했던 시간이요.

지난호 표지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더불어민주당)를 둘러싼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이 얽힌 ‘고발 사주 의혹’이 5개월 뒤 대선까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보면서 줄곧 그 5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시계 제로’라는 말은 대통령을 탄핵해 내쫓고 초유의 조기 대선을 치렀던 때보다 요즘 같은 때에 맞춤합니다. 어느 당이 대선에서 이길까, 누가 대선 후보가 될까 같은 질문은 사치입니다. 주요 대선 후보 중 누가 더 수상한가, 어디까지 보고받았을까, 어디까지 드러날까. 그런 질문들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니까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지 않고선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라면 ○○는 어떻게 됩니까?

-만약 ~라면 본선이 무르익은 때라도 선수가 교체됩니까?

-만약 검찰이 ~한다면 대중이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한다면, 그 결과는요?

취재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인터뷰죠. 특히 ‘가정에는 답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정치판에서는 신사협정 비슷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들 마음속 시나리오야 가지고 있지만 틀리면 좀 민망하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누가 봐도 ‘시계 제로’ 아닙니까.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0월11~13일 전국 성인 10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를 보면, 이 지사는 윤 전 총장과의 일대일 가상대결에선 39%(이재명) 대 35%(윤석열)였지만 또 다른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과의 양자대결에선 37%(이재명) 대 40%(홍준표)로 나타났습니다. 9월6~8일 동일한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는 46% 대 32%로 오차범위 바깥에서 이 지사가 홍 의원을 가볍게 따돌렸는데요.

그러니 뜬금없는 질문에도 늘 낭창한 ‘톤 앤드 매너’로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주던 취재원조차 “그건 탐사보도와 수사의 영역”이라는 말을 거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다지 예민할 것 없는 코멘트를 하면서도 ‘통화는 할 수 있지만 이름은 싣지 말라’고 한 연구자도 있었습니다. 모든 전망이 흐릿한 가운데서도 하나의 사실에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군부독재 시기를 뺀다면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의 선거’라는 사실이요.

공유지대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양당이 모두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린 이 정국이 앞으로 5개월은 이어지리라는 거요. 어쩌면 대선 이후까지…. 그래서 <한겨레21> 뉴스룸의 미래도 시계 제로가 되었습니다. 만약 <21>이 ‘저희는 게이트보다 더 깊이 있는 뉴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독자님은 ○○하실까요? 아…! ‘가정법’은 역시 누구에게나 별로인 것 같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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